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영화 '기생충'을 봤다. 본문

흑림살이 /동화·신화·재생

영화 '기생충'을 봤다.

숲 지기 2020. 1. 27. 10:42

 

 

 

 

기생충을 보러 갔다. 

 

영화관엔 그 직전 상영한 영화가 끝나고 잠시 자리 정돈을 하는 동안

아래 사진에서처럼 붉은 줄을 쳐 놓는다. 

때가 되어 직원이 줄을 거두면 입장을 할 수 있다는 싸인인데 

관람객들은 사진 속의 저 회청색 카펫 계단을 서둘러 뛰어 오른다.  

이 영화관에서는 자리배정을 안 해주니, 먼저 앉는 이가 임자이기 때문이다.

관람권은 평소보다 두배 정도 비싸게 받았는데(10유로 하고 얼마 더) 

나중에 알고 보니 상영시간이 길었다.

 

기다리는 사람들 가운데 혹여 또 다른 한국인이 있을까 해서

본능적으로 두리번거렸지만, 그 몇 백명 중 나 말고는 없었다.

우리말 상영이라 했으니 그래, 나 빼곤 다들 번역문장을 읽어야 겠네, 쪼까 ~ 미안네 하하,

이런 호사를 나 혼자만 누린다고 생각하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상영시간이 임박하자 서서 기다리던 장소는 발을 디디기에도 갑갑할 만큼 좁혀 왔다.

-중략-

 

 

이윽고 영화관 직원이 줄을 걷고, 얼른 계단을 빠르게 올라서 자리를 잡았다.

 

 

 

 

붉은 줄 뒤에 몇백 명의 사람들이 서서 상영시간을 기다리는 중

 

영화는 그 흔한 극장 광고 하나 없이 바로 시작하였다.

한밤중 프로인지라, 마치는 시간을 고려했지 싶다.   

영화는 첫시작부터 (과장에 가까운) 희극적인 요소로 포장을 하였다.

그러나 포장지는 반투명이어서 속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적어도 나는 서울을 아니까.  

-중략-

 

상영하는 동안 옆에 앉은 지인과 나는 단 한마디의 말도 섞지 않았다.

모국어를 맘껏 즐기라는 나에 대한 배려였지 싶다.

웃기는 장면에는 나머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나보다 몇초 뒤에 따라 웃었다.

옆좌석 사람들을 위해 유일하게 했던 나의 배려도 몇초 기다렸다가 폭소해 주는 것이었다.  

 

구비해 갔던 와인병은 따지 않았다.

겨자땅콩은 극장을 나오며 이웃에게 줬다.

영화 어땠냐고 하니 그는 한 문장으로 일갈했다 ,

"대단한 영화예요.

하나의 영화속에 비극 호러 유머 철학.... 다 들어 있잖아요!"

대꾸를 나도 해야 했지만

단지 앉아서 눈 뜨고 귀 열고 감상만 하는 데도 지녔던 감성을 다 탕진했던 터인지라 

말 떼기조차 버거웠다.

동석을 한 몇 백명 가운데 유일하게 화면 속의 계단이며 홍수를 아는 인간이어서가 아니다.

그보다 훨씬 근원적인 것으로 기진맥진해 있었다. 

 

-중략

 

 

..................

 

 

 

 

 

-봉준호 감독과 수 많은 출연배우들, 촬영을 함께 하거나 도운사람들 모두에게 경의를 표한다.

아름다운 밤이다.

-"앞으로 무우냄새'가 계층의 상징이 될 것 같네요"- 영화 함께 본 지인

-"운전기사는 왜 부자남자를 죽였지? 이해가 안돼 ", "응 그건 악취때문일 걸 아마."- 관객들의 수근거림

 

 

 

  • 파란편지2020.01.28 15:22 신고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줄을 쳐놓고 있다가 입장한다는 것, 먼저 앉는 사람이 임자라는 것,
    독일이어서 그런 것이 아닌 건 물론이지만 아직도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정겹고, 우리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것이니, 그것부터 좋구나 싶었습니다.
    영화 이야기도, 숲지기님의 관람 이야기도 비유하고 축약하면 마찬가지입니다.

    답글
    • 숲지기2020.01.28 15:38

      저도 저 영화관 가기를 좋아합니다.
      상업성보다는 명화 위주로 상영을 하는, 주변에 유일한 극장입니다.
      여느 다른 극장과 관객들도 다르고요.

      기생충은 작년말 이미 한차례 개봉했었는데 그때 기회를 놓쳤던 저는
      이번에 온 절호의 2번 기회( 25일은 독일어로, 26일은 한국어로) 를 잡았습니다.
      극장은 그 야밤에도 빈자리가 없었고요,
      관객 반응은 좋았습니다.

  • style esther2020.01.30 15:48 신고

    와인과 겨자에 버무린 땅콩이 기분좋게 계속 생각납니다.
    보통극장의 팝콘과 콜라보다 훨씬 우아하게 느껴져요~

    봉준호감독은 반짝이는 이야기꾼인 것 같아요.
    여기서도 지금 하는데 포스터에 처음엔 '미국 아카데미 노미네이트'라고 ,
    지금은 '수상유력'으로 바뀌어서 절찬상영중입니다^^

    답글
    • 숲지기2020.01.30 23:39

      대단한 감독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덕분에 이 먼 이국에서도 우리나라 말로 영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미 많은 수상을 한 작품인 걸로 아는데,
      세상을 바꾸는 한편의 영화로 더 많은 이들이 봐주길 바랍니다.

      팝콘과 콜라를 영화관에서 마시는군요.
      아마 운전시를 위한 배려 같습니다.
      저는 습관처럼 극장에선 와인 한잔을 거의 마시고 영화를 보나 봅니다.
      그러나 기생충때는 안 마셨습니다.
      술은 당분간 맛이 없어졌습니다.
      안 마시면 들어오는 술들은 창고에 차곡차곡 쌓이겠지요.
      술맛 없는 만큼 세상도 시들합니다.

  • 사슴시녀2020.03.20 05:36 신고

    전 아직도 이영화를 보지 못했답니다. ㅠㅠ
    약2시간을 영화 보는데 쓸 시간이 없을정도로 바쁜진 않은데
    마음의 여유가 아직 없어서 나중에 편하게 즐감 하려고 아끼고 있지요.
    “세상을 바꾸는 한편의 영화로 더많은 이들이 봐주길 바라.......신다는 글에
    더욱 보고 싶네요!^^

    답글
    • 숲지기2020.03.20 23:08

      작금의 계단식 사회상을 저 정도로 직시하고요,
      쉽지 않은 주제를 예술의 장르로 끌어들여 종합 작품으로 드높힌 사람이
      우리 한국 감독이었습니다.
      자부심을 가집니다.
      기회가 되시면 한국어로 꼭 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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