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그리움은 유배 중 본문

수평과 수직 /이 순간

그리움은 유배 중

숲 지기 2018. 2. 12. 09:54

 

1.

밤이 오면, 

푸른빛을 띤 거인 헤라쿨레스가 도시를 주시하고 있다.

누군가 쓰다 만 신화가 이 도시에서 연이어지는 듯

묘한 기운의 안개 휘장이 골목을 드리우고 있다.

이곳에서 며칠을 보내는데 매일밤 잠을 설친다 .

날씨는 눈오다 비오다를 몇번 되풀이하다가 어두워진다.

안개 속을 헤집고서 어제 토요일엔 흰 호르텐지아 화분을 샀다.

순전히 자구책이다, 거인의 도시에서 살아내는 자구책.

 

그 화분이 견공 무무와 첫 인사를 하였다.

은비님께서 고맙게도 무무라는 이름을 지어주신 후부터

누굴 만나든 제 이름 소개부터 하고보는 녀석이다.

숲 마을에서 한 그루 나무 쯤인 줄로만 알다가 

처음으로 이름이라는 걸 얻게 되었으니

그 기쁨이 오죽하랴.

 

 

 

 

 

 

 

2.

객지에서 머무는 동안은 사정상 이메일만 겨우 읽는데,

어제 오늘은 지인들의 메일이 스펨만큼 왔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겨울올림픽 때문이지 싶다.

대견하고 자랑스러워서 여기저기 광고를 해도 모자랄 판이지만,

고맙게도 지인들이 먼저 연락을 해온 것.

 

3번째 파트너와 행복하다며 총천연색 사연을 써온 친구도 있고,

익히 알고는 지내지만 메일을 쓰긴 처음이라며 머뭇거리는 이도 있었다. 

우리나라 발, 겨울올림픽 개막식에 남북한 팀을 본 감동으로 자기네 동서독 시절을 회상하기도 하고,

이러저러한 언급없이 안부 한 문장 쓰고 지 자랑만 주구장천 쓴 친구도 있다.

니 버릇 개 안 주었구나 하하

 

편지들에는 나를 생각했다거나 또 그리웠다고 쓴 문장은 눈 씻고 봐도 없다.

그러나 친절한 나는 미루어 짐작한다. 그대들이 나를 몹시도 그리워 했구나,

편지를 쓰지 않으면 손가락에 부스럼이 돋을 만큼 ㅋ.

 

 

 

Image result for Schnee Wilhelmshöhe

 

 

내 손가락엔 부스럼이 돋았다 알겠나 친구들.

시냇물처럼 흐르던 그리운 것들이

암벽을 만난 어느 날 이후

방향을 분실했다.

고로 나의 그리움은 유배 중.

 

 

 

3.

진눈개비가 그친 뒤 밤 산책을 나서니

찬기운에 꽁꽁 언 별 한무더기도 골목 어귀에서 따라 나선다.

별을 향해 잠시 고개를 들었을 뿐인데 미끌~휘청~,

간신히 중심을 잡고 보니, 와~~ 사방이 빙판이다!

나선 길을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

눈사람처럼 디록디룩 껴입은 게 아까워서다.

 

얕은 언덕 내리막길을 지나 중심가 쪽으로 향한다.

씩씩하게 걸으려 하지만 보폭은 좁고 가랑이는 엉거주춤 넓어지고,

균형을 잡느라 양팔까지 휘젓는다.

물방개 꼴이라니.

 

괴테거리까지 내려가니 양볼은 얼고 목줄기엔 땀까지 흥건하다.

평소엔 번화가이지만, 빙판길이 되니 오가는 차도 없고

물방개 몸짓의 이상한 여자 하나 거리를 휘저을 뿐이다. 

 

이태리 식당 다빈치 앞까지 가서 귀갓길로 방향을 선회했다.

겨우 2km를 걸었을까, 알프스라도 정복한 듯 발목과 넙적다리가 얼얼.

귀갓길에선 카셀 산상의 헤라쿨레스 푸른 불빛의 가호를 받았다.

건물에 가려져 보였다 안 보였다 했지만,

그는 거인이어서

빙판길에서 분투하던 콩만한 나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바래다 주었다.

거인씨 고마워요.

 

 

(참고.

헤라쿨레스와 카셀에 관해 이전에도 쓴 적이 있었네요)

http://blog.daum.net/immersommer?t__nil_login=admin&showadmin=0

  • joachim2018.02.12 11:14 신고

    Hi, ohne Malaria zurueckgekehrt, wieder begeistert von Uganda und seinen freundlichen Leuten. Seit 3 Wochen rauche ich nicht mehr und das tut mir gut. Aber meine LWS macht mir immer wieder Aerger mit den Bandscheibenvorfaellen und der Spinalkanalstenose, deshalb war ich heute zur ambulanten orthopaedischen Untersuchung

    답글
  • joachim2018.02.12 11:16 신고

    ES war sehr schoen dort, haben eine kleine Privatschule finanziell unterstuetzt und 70 englische Jugendbuecher mitgebracht als Grundstock fuer eine Leihbibliothek. Armes Land, aber doch oder trotzdem glueckliche Leute.

    답글
    • 숲지기2018.02.13 00:40

      In Uganda als Chirurg, willst du dort praktizieren?

    • joachim2018.02.14 02:31 신고

      Wann kommst du zurueck?
      ........Ja koennte ich mir das gut vorstellen, in Uganda als Chirurg zu arbeiten.

  • eunbee2018.02.13 16:26 신고

    하얀호르텐지아에게 자기소개를 하고있는
    무무의 순하고 다정한 모습이 그려집니다.^^

    잠을 설치는 낯선 도시의 밤이 정다운 친구들의
    메일로 다소 수선스러워졌네요.
    관심이 그리움이고 그리움이 사랑입니다.
    스스로 지래짐작으로 유배시키지 마세요.ㅎ ㅎ

    고국의 겨울 대운동회
    이역 친구들의 관심이 흐뭇하네요.
    숲지기님은 사랑받고 있다는 증표.*^&^*

    답글
    • 숲지기2018.02.14 01:41

      늦은 귀가를 하였습니다.
      댓글을 쓰다가 꼴깍 졸았습니다.
      날씨는 영하로 다시 떨어졌지만
      저는 봄을 미리 느낍니다 춘곤증으로요 ㅎ

      사실은 사람들로부터는 사랑을 받고 있지 못합니다요.물론 확신도 있습니다.
      그나마 숲이 있어 다행입니다.
      믿는 구석이 숲마당 구석이예요 ㅎㅎ
      격려말씀, 고맙습니다 은비님.

      숲집 마당에 겨울새들을 위해서 모이를 매달아줄 거예요.
      눈이 그치지 않으니,
      어쩌면 작은새들은 굶고 있을 거예요.

  • 최생각2018.02.14 04:24 신고

    새해 福 많이 받으시고 올한해도 행운과 평안기 가득하기 기원하겠습니다.
    행복한 설 연휴 보내시기바랍니다

    답글
  • 노루2018.02.14 08:12 신고

    빙판이 된 괴테 거리를 "물방개 몸짓을 하고" 걷고 있는
    여인, 이 아름다운 콩트의 주인공을 한 번에 다 못 만나
    보고 두 번은 더 여기 들러야겠어요. (PC를 사용하고
    있는 도서관이 토요일까진 휴무라네요.)

    시냇물처럼 흘러든 그리움이 흑림의 어느 호수에서
    이 밤, 별빛 아래 반짝이고 있을까요.

    답글
    • 숲지기2018.02.14 12:31

      PC사용을 할 수 있는 도서관, 낯설지 않습니다.
      집중하여야 할 때 저도 상용을 하니까요.
      PC로부터 토요일까지 휴가를 얻으신 거네요, 그 동안에 어떤 독서를 하실지
      벌써부터 궁금합니다.

      샘물과 갈증에 대해 줄곧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 언어가 제 속에서 객체와 주체로서 늘 교류했지 싶고요.
      지금도 목이 몹시 마릅니다만.....

      제 속의 흑림은, 떠나있을 때 더 흑림스러워집니다.
      깊은 숲의 나무들의 언어를 더 잘 듣는 것 같고요.

  • William2018.02.14 16:51 신고

    겨울에 밤 산책이라..
    빙판길에 아무도 없는 밤길을..
    무엇이 그리움을 넘치게 하는지 짐작은 하지만..
    다행히 아무 탈 없이 힘드신 산책을 하셨으니
    유배중이라고도 생각되는 블친님의 생각에 공감합니다.
    강녕하시고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십시요..

    답글
    • 숲지기2018.02.14 21:56

      30년 만에 고국땅을 밟으셨던 윌리엄님에 비하면 저는 겨우 11년밖에 안 되었습니다. 제 경우는 그 11년이 고스란히 귀양살이 같을 때가 있습니다.건강하시고, 새해에 소원하시는 바 다 이루십시오.

  • eunbee2018.02.19 09:21 신고

    오전엔 파리행을 위한 이런저런 준비로 종종거리다가
    한가한 오후가 되어, 소개해주신 에센바흐의 트로메라이를
    옛시절 클래식튀튀를 입고 슬픈흰새가 되어 춤추던 때를 회상하며
    제 꿈에 겨워 감상했어요. 랑랑과 연탄 하신 드뷔시도 반갑게
    감상했구요. 두 거장이 연주하는 드뷔시의 '작은 모음곡'도 매우 아름다워요.

    아름다운 오후를 만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답글
    • 숲지기2018.02.19 10:06

      은비님께서 함께 들어주시니 고맙습니다.
      그는 랑랑을 눈높이로 이끌며 또한 발굴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사람에게 '발굴'이라는 단어를 적용하는 것이 마땅한지 모릅니다만.
      눈빛이 겸손하고 편안한 사람입니다. 지휘자라서 귀가 좋아야 하지만 단원들의 매 악기음을 듣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너무 잰틀해서 외적인 카리스마는 부족한 듯 합니다만. 장단점이 있겠지요.

      빠리에 오시면 목소리라도 꼭 들려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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