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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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과 수직 /이슈·외부 글

기린/박상순

숲 지기 2018. 9. 13. 06:38

 

 

 

 

/박상순

 

밤의 바닷가에 앉아 양말을 신는다.기린이 달려오는 것 같다.벗어놓은 웃옷을 걸친다.아직도 기린이 달려오는 것 같다.기린이 아닐지도 모른다,하지만 기다란 목이 바다에서 올라와 밤의 모래밭을 달려 내게로 다가오는 것 같다.육지 쪽으로는 환단 불빛이 아직 빛나고 가끔씩 웅성거리며 몇 무리의 사람들이 지나가지만 검푸른 물 속에서 기린이 나와, 내게로 내게로 달려오는 것 같다. 잘못된 생각일지도 모른다. 잘못 된. 그런데도 자꾸 기린이 달려온다. 양말 때문일까. 한쪽 양말을 벗어본다. 그래도 자꾸 기린이 달려오는 것 같다. 나머지 한쪽의 양말도 벗는다. 기린. 어깨에 걸친 웃옷을 다시 벗는다. 기린. 물에서 나온 기린이 모래밭을 건너 내게로 온다. 나뭇잎 같은 별들이 떨어져 기린의 목을 스친다. 달빛이 그물이 되어 기린에게 내려온다. 갑자기 형광등 공장이 보인다. 형광등 공장이 불탄다. 기린이 또 달려온다. 기린. 달빛 그물을 뚫고 기린이 달려온다. 내 앞에. 기린. 눈앞에는 갑자기 형광등 공장이 보이고 형광등 공장이 불타고. 또 달려온다 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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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이미지 중 다만 하나를 빌어 썼을 뿐, 시 속의 '기린'은 우리가 흔히 아는 기린이 아니다. 마치 모노드라마를 보듯 시를 숨가쁘게 뒤따를 때 매 장면 변화에 대표언어 '기린'이 이정표처럼 등장한다............하긴 이런 말도 쓸 필요가 없다 이 시에서는, 나열된 문장을 따라 좇으면 된다.시를 필사하며 이번 만큼 여러 번 잘못 쓴 적도 드물었다. 일전에 교장선생님 댁에서 시인의 시들을 읽고 적잖게 놀랐 었다.  마음 먹고 인터넷을 뒤져 같은 분의 시 한편을 찾아서 올린다.'기린'은 발표된지 10년이 훨씬 지났지 싶다.

  • 김영래2018.09.12 23:41 신고

    새로운 아침이 밝앗습니다
    오늘도 기분 좋은 출발하시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리시는
    보람차고 흐뭇한 날 되세요
    수고 하신 덕분에 잘 보고
    감사하는 마음 전합니다 ~~~~~~~~~*

    답글
  • eunbee2018.09.13 01:35 신고

    시인들은,
    시작을 공부하시는 분들은
    시를 필사 하시나 보아요.
    소설 습작을 위해서도 기존 소설을
    베껴쓰기 하시나 보던데요. 오호라~^^

    답글
    • eunbee2018.09.13 01:39 신고

      저는 요즘 '파리의 아파트'라는 소설 읽고 있어요.
      프랑스 젊은 인기작가 기욤 뮈소 꺼.^^
      아주 잼나요.ㅎㅎ
      번역을 물흐르듯...ㅋ 양영란이란 불문학전공자,
      같은 작가의 책을 다수 번역한 효과도 있을듯해요.

    • 숲지기2018.09.13 21:22

      쓰면서 읽어야 제대로 읽는 듯한
      저만의 시 독서법입니다. 소설처럼 길다면 물론 어렵겠지요.

      은비님이 하시는 건 무엇이든 호기심이 발동합니다.
      책 다 읽으신 후 독후감 써 주시리라
      기대합니다요.

      저는 오늘 시칠리아섬에서 벌어졌던 로마시대 최초의 노예항쟁기를 읽었습니다.
      7만 여 노예들이 모든 것을 걸고 7년 여간 싸웠고, 결국 제압을 당한 후 처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 알 수 없는 사용자2018.09.13 08:36 신고

    안녕하세요 숲지기님
    올려주신 포스팅 많은
    도움 되어 갑니다
    날씨는 흐리지만
    상쾌한 공기가 느껴지는 날이네요
    오늘은 어제보다 더
    즐겁고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답글
  • 늘 봉2018.09.14 04:11 신고

    산골마을 울 밖 어딘가에서는 대추가 익어가고
    잎새에 몸 숨겨 세월잡고 늙어버린 호박의 자태에
    쥔여자 혀 내밀어 놀래는 아름다운 이 가을에,

    안녕하세요?
    노 시인의 집에도 가을바람 파고들어
    맨발을 간지렵혀줍니다.

    이 결실의 계절이
    우리네 영혼의 골 수에도 양약이 되어
    풍성함을 안겨주면 좋겠습니다.

    찾아뵈올 수 있음에 늘 감사드리며
    가내의 평화를 빕니다.

    시인 늘봉드림

    답글
  • 파란편지2018.09.22 15:25 신고

    이 시인의 시를 읽게 된 이후로는 다른 시들이 곧잘 시시하게 보였습니다.
    그건 사실이나 진실은 아닐 것입니다.
    다른 시들도 얼마든지 좋은 시들일 것입니다.
    심지어 동네 주부들 모임에서 열고 있는 시화전의 그 여고생 같은 시들도 얼마든지 감동을 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박상순 시인의 저 기린은 꿈에 본 장면 같은, 무의식의 세계 같은,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갖가지 색깔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을 가지고 읽었습니다.

    동물원에서 본 기린, 슬프지만 나로서는 어떻게 도와줄 길도 없었던 그 기린을, 먼 곳으로 돌아와서 다시 그려보는 듯 다시 읽고 다시 읽게 됩니다.
    시인이 그려주는 그림은 추상화든 구상화든 화가들의 그림과는 또 다른 그림이라는 걸 저 시인이 기린을 등장시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글자가 작은데도 눈을 들이대고 읽습니다.^^
    시 아래에 언뜻 제 그림자도 지나가고 있어서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답글
    • 숲지기2018.09.22 20:53

      어찌 아셨지요,
      저도 여고때 교정 시화전에 뭘 걸었었는데
      그걸 생각하면 얼굴이 빨갛게 달아 오릅니다.
      이웃 남고생들이 여고 교문으로 들어설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했었고요.

      박상순 시인의 시, 참 경이롭습니다.
      이 분의 시를 읽으니 다른 시들이 평면으로 보입니다. 물론 각이 있고 곡선도 있지만요.
      오 잠시만요, 글자가 이렇게 작다니요 ㅋ
      오 죄송합니다 일단 글자부터 키우고 댓글 쓰겠습니다.

    • 숲지기2018.09.22 21:11

      앞부분엔 '기린이 달려 오는 것 같다'고 했지만
      후반부에서는 '기린이 내게로 온다/달려온다'로 바꿔 쓰고 있습니다.
      문맥으로는 아주 다른 두 관점을 잇는 게 무엇인지 제가 놓치고 있는지,
      시인에게는 중요하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습니다.
      '~ 오는 것 같다'와 '~온다'의 차이에 저는 집착을 하게 됩니다.

      '기린 생각을 안 해야지',
      그러면 '기린 생각 만' 하게 됩니다.

    • 파란편지2018.09.23 01:51 신고

      달려오는 것 같았다가 마침내 달려오고 있었겠지요?
      기린 생각을 하셔도 좋을 것 같은데요?
      기린이 달려오는 그 모습이 멋지고 아름다울 것 같아서요.

    • 숲지기2018.09.23 19:15

      시인은 기린을, 기린이 달려오는 장면을, 마치 장신구처럼 달고 삽니다.
      "노이로제" 와 "문학"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합니다.

    • 파란편지2018.09.24 04:44 신고

      읽은 것을 블로그에 올리는 일은 무슨 의무 같은 것이 되었고
      그러면서도 이 일 없으면 무슨 재미있는 일이 또 있을까 싶어
      생각으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었지만
      독서도 그렇습니다.
      가기 전에, 눈이 망가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읽어야지 하고 있으므로
      저는 책을 읽는 이 일이 "구원"이 아닐까 생각하며 지냅니다.

    • 숲지기2018.09.25 00:41

      읽은 것을 나눠주심에 늘 감사히 생각합니다.
      저처럼 책을 안 읽거나, 읽어도 달팽이 속도로만 읽는 사람에게
      교장선생님의 독후감은 큰 도움이 됩니다.
      부디 건강하셔서 책 많이 읽으시고 많이 많이 나눠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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