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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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림살이 /동화·신화·재생

누구에라도 미리 묻지 않는다면

숲 지기 2019. 7. 25. 01:25

 

 

 

 

 

누구에라도 미리 묻지 않는다면

/문태준

 

나는 스케치북에 새를 그리고 있네

나는 긴 나뭇가지를 그려넣어 새를 앚히고 싶네

수다스런 덤불을 스케치북 속으로 옮겨 심고 싶네

그러나 새는 훨씬 활동적이어서 높은 하늘을 더 사랑할지 모르지

새의 의중을 물어보기로 했네

새의 답변을 기다려보기로 했네

나는 새의 언어로 새에게 자세히 물어

새의 뜻대로 배경을 만들어가기로 했네

새에게 미리 묻지 않는다면

새는 완성된 그림을 바꿔달라고

스케치북 속에서 첫울음을 울기 시작하겠지

 

 

 

 

 

 

 

 

....................

 

*새를 위한, 새가 필요한 그림을 그리려 한다.
활동적인 새가 어쩌면 높은 하늘을 더 사랑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불안에도
새의 언어로, 새의 의중대로 그림을 그리기를 시는 충고한다.

그러지 않으면 완성된 그림을 바꿔달라고 징징 울 거라나 새가.....

 

*나는 물어보지도 않고 저 풀을 심었었다.
주말이면 축구장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함성을 받아먹어선지
없던 꽃망울이 툭툭 터져 있다.
아직까진 밑그림을 바꿔달라고 하진 않는다
꽃과 나 사이엔 다행히 통역도 필요치 않아(적어도 그렇게 여기고).

 

  • 노루2019.07.25 17:18 신고

    새에게 미리 묻지 않는다면
    새는 완성된 그림을 바꿔달라고
    스켓치북 속에서 첫 울음을 울기 시작하겠지

    참 좋은 시네요.
    사실, 우리가 '그려내는' 것들 중에 활동적인것의
    스냅 표현이 아닌 것이 있기나 한지 모르겠어요.
    시인이나 예술가에게 작픔의 대상, 문학이나 예술
    비평가에게 비평 대상인 작픔과 작가/예술가, 그런
    것 말고도, 다른 사람의 생각, 몇 줄로 쓰고 싶은
    내 생각, 그것들이 다 살아 움직이는 '새'가 아닌가요.

    답글
    • 숲지기2019.07.26 00:01

      오,
      노루님 어찌 답글을 쓰셨습니까요?
      대필을 맡기셨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만.....

      노루님의 시 해석에 놀랐습니다.
      시 속의 '새'를 저는 좀 더 가뒀었는데 말입니다.
      '살아 움직이는' 시를 만나는 기쁨이 큽니다.

  • 파란편지2019.07.26 11:04 신고

    새의 의중대로라면 세상은 조용하고 따스하고 아늑하고... 할 것입니다.
    질시와 실망, 비방과 폭력 같은 것이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그렇긴 하지만 '물어보지 않고 저 풀을 심은 것'도
    새들은 다 좋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답글
    • 숲지기2019.07.26 14:00

      한때 찬사를 받던 '여장남자 시코쿠'의 진짜 주인이 갔다고요.
      교장선생님께서 나열하신 단어들을 다 싸안고 갔을 겁니다.

      숲에 숨어서 꽃 심는 소일이나 한다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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