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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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초하루 시편지

숲 지기 2021. 8. 1. 00:16

웹소통

/최성아

 

무리에서 멀어지는 걸음을 조율할 때

벗어난 물줄기만큼 흔적 냅다 지운다면

천 갈래 바다로 가는

강의 약속 아니지

 

온라인 문을 열다 색다른 계단 만날 때

읽고 싶은 댓글 찾아 한쪽만 오르내리면

사방을 두루 감싸는 바람길을 못 보지

 

화풀이 생각 늪에 빠져드는 날이거든

편 모아 술렁대는 불길 솟는 날이거든

돋보기 클릭 속으로

흐린 눈을 닦는 거다

 

 

 

 

크레바스에서
/최정희

깊이일까, 높이일까 까마득한 얼음 절벽
막다른 길 위에서 갈 길을 묻는다
균열된 발밑의 바닥 흔들린 생의 지축

내려가야 하는 걸까 올라가야 하는 걸까
실패한 꿈들이 빙벽 속에 갇혀 운다
햇살에 녹아 흐르는 새하얀 빙하 조각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차갑고도 뜨거운 길
꿈꾸는 가슴이 있어 나 지금 살아있다
별빛은 어둠 속에서 돌올하게 빛나고

눈 부신 태양 빛에 설산이 눈을 뜬다
푸르른 아드레날린 고동치는 붉은 심장
빙벽에 하켄을 박는다
카라비너에 로프를 건다

-정음시조 2021, 3호

 

 

 

 

공중전화

/임태진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며 서 있네

가난한 어느 마을 골목 어귀 공중전화

전생에 그 무슨 죄로 평생을 기다리나

 

누구나 한 사람을 기다려 본 적이 있지

아무리 기다려도 끝내 오지 않던 사람

젊은 날 애끓던 가슴 재가 되게 했던 사람

 

간절하게 기다려 본 사람들은 알고 있지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마음 문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오지 않는 그 사람 아직도 기다리네

평생 아물지 않을 상처로 남을 사람

첫눈이 펄펄 내리면 눈(雪)으로나 올 것 같은

 

- 정음시조 2021, 3호

 

 

종이컵의 예의

/오서윤

 

 

손잡이가 없어서 온몸으로 잡습니다

두 손으로 받쳐 드니 따스한 예의입니다

무게도 내려놓아서 당신만 존재합니다

 

새벽 인력시장부터 협상의 자리까지

춥거나 고성 오갈 때 하 모금 간절합니다

흰 몸은 어두울수록 희망처럼 빛납니다

 

바닥 드러날 즈음 홀대 누명 벗겨지고

구겨진 속 끌어안고 한 몸 되어 소멸합니다

비밀이 소복한 탓에 재활용 못합니다

 

-정음시조 2021, 3호

 

 

 

 

.......

 

요즘은 자꾸 넘어진다.

나무에 오르지 않는다면, 나무에 떨어질 일이 없고

빗코인을 하지 않는다면, 알량한 동전 때문에 불면을 앓을 일도 없다.

농사일을 하는 중에 자꾸 넘어진다.

멀리 카셀의 큰 덩이를 정리했음에도

텃밭에 어린 것들이 자라고 

숲집엔 또 숲집대로 나의 노동 만을 기다린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숲집 벌레들은 올해 유별나다.

비가 흡족히 와서 숲의 목마름이 해갈되었다는 것과 

그 숲 벌레들이 더 전투적으로 변한 것의 연관성이 있을까.

 

벌레에 물려서* 응급실까지 갔지만

진드기 한 녀석의 머리 일부가 아직 내 왼쪽 등 손이 겨우 닿는 피부 깊숙이 박혀 있다.

가렵기도 하거니와, 피부 속에 벌레머리를 넣고 사는 며칠의 기분이 영 그렇다.

뿐만 아니라, 더 며칠 전에 넘어져서 바지 왼쪽 무릎에 구멍이 났었는데

어젠 오른쪽 무릎에 오른쪽 검지와

오름쪽 턱 광대뼈까지 밤탱이가 될 만큼 호되게 넘어졌다.

지금 컴의 활자를 누르는데도

퍼렇게 멍든 오른쪽 검지가 꺼꾸정하게 구부러 진다.

 

숲집엔 당분간 안 간다.

못 보면 병이 날 정도가 되면 모를까, 당분간 안 보고 싶다.

숲지기 명찰을 서랍 속에 넣은 여긴, 

그래서 도시 집.

도시라고 해도  사브작 쏘다닐 숲이 운명처럼 휘둘진 곳이다.

 

........

쓰신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고전적인 운율이 향수처럼 좋은 시조들을 옮겨왔다.

8월은 15일이 들어 있는 달,

감사하고 행운 가득하시길. 

 

 

*모기 진드기 땡벌 심지어 개미에게까지 깨물리고

피부는 까맣게 탔으며

손은 중세 시절 촌부의 것이 되었다. 

그러나 이 글을 쓰는 중에도 머릿속은 텃밭 미라벨레를 따 잼 만들 궁리를 하네

3년 전에 만든 잼도 아직 쌓였는데 말이다.

고질적인 자발적 노예의 단면이다.

 

 

  • 파란편지2021.08.01 10:31 신고

    아하, 이제 생각이 납니다. 집이 두 군데...
    누가 보면 사서 고생이군요 ㅎㅎㅎ~ 하겠지요.

    시조라는 생각 없이 읽으면 뭔가 좀 이상한 느낌인데
    시조라는 걸 생각하며 읽으면 금방 맛이 좋아집니다.
    그래서 시조는 묘하다 생각합니다.
    오늘 시조들은 전체적으로 지금 여기 서 있는 이 자리를 생각하게 합니다.
    어떻게 할까 싶을 때가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가는 수밖에 없는 이 길입니다.

    답글
    • 숲지기2021.08.01 22:45

      시조의 생명은 정형의 운율같습니다.
      그래서 읽기만 하여도 노래가 되고요.
      뒷산에 올라가서 큰 소리로 읽고 싶은 욕구가 생깁니다.
      굳이 시조가 아니더라도
      시는 속옷으로라도 기본적으로
      노래를 입은 것을 선호합니다.
      저의 취향입니다.

    • 파란편지2021.08.02 01:10 신고

      그렇군요!
      아니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놀라운 일입니다.
      아니 숲지기님께서 그렇게 써놓은 것을 읽게 된 것도 놀랍다는 느낌입니다.
      제가 읽는 것은 대부분 번역이거든요.
      그런데도 저는 운율을 발견합니다.
      번역자는 놀라운 사람이고, 그래서 감사함을 절실히 느낍니다.
      천상병이 번역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서정가"를 읽으며 그 생각을 골똘히 했습니다.
      말하자면 저는 그 소설에서조차 운율을 발견하고 있었습니다.
      하물며......

    • 숲지기2021.08.02 16:03

      교장선생님께서도 내재된 시의 운율을 읽고 계신다니, 기쁩니다.
      특히 번역된 정형시에 우리말 운율을 넣기란 그 순간 얼마나 고민을 해야할지
      상상이 갑니다.번역시
      그런 고민 끝에 독자에게도 원래 시의 감흥이 전달되어야 할 텐데요.
      저는 번역시 서정가를 읽지 못하였습니다.
      기회가 되면 꼭 읽고 싶습니다.

    • 파란편지2021.08.03 01:04 신고

      죽은 사람을 향해 말을 건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인간의 습성이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저승에 가서도 이승에서 지녔던 모습으로 살아있는 줄로 안다는 것은 더욱 슬픈 인간의 습성이라고 생각됩니다.
      식물의 운명과 인간의 운명과의 유사점을 느끼는 것이 모든 서정시(抒情詩)의 영원한 제목이다―라고 말한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 이름마저도 잃어버렸고, 그뒤에 계속되는 구절도 모르고 이 말만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식물이란 다만 꽃이 피고 잎이 지는 것만이 그 뜻인지, 보다 더 깊은 뜻이 깃들어 있는지 저로서는 모르겠습니다. 허나, 불교의 여러 경문(經文)을 비길 데 없이 귀중한 서정시라고 생각하는 요즈음의 저는, 지금 이렇게 해서 고인(故人)이 된 당신에게 말을 건다 하더라도, 저승에서도 역시 이승에서의 모습을 하고 계신 당신보다, 차라리 당신이 철을 서둘러서 봉오리가 달린 홍매(紅梅)로 변해서 재생했다는 상상(想像)을 꾸며내어, 지금 제 눈앞의 도꼬노마(床の間, 방 한쪽에 바닥을 조금 높게 하고 벽에는 서화[書畵], 바닥에는 꽃병 등으로 장식한 곳 :역주)에 놓여 있는 홍매를 향해서 이야기하는 편이 얼마나 더 즐거운지 모르겠습니다. 반드시 눈앞에 놓인, 제가 그 이름을 아는 꽃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프랑스 같은 먼 나라의, 이름 모를 산의, 한 번도 본 일 없는 꽃으로 당신이 부활했다고 상상하여, 그 꽃을 향해서 말을 건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만큼이나 지금도 여전히 저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정말로 먼 나라를 바라보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안 보이고, 이 방의 향기가 납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저의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 제일 좋아하신 작가입니다)의 "서정가"(소설, 천상병 역)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하나만 갖고 가라면 이 작품을 고를 작정입니다.

    • 숲지기2021.08.04 00:01

      무거운 주제의 어려운 시인가 보다고 여겨집니다.
      이별의 형태 중에서도 사별은 특별합니다.
      무슨 수를 써서도 다시 볼 수 없으니까요.
      핀 꽃을 보며, 떠난 사람의 부활이라고....요.
      현실적으론 가능하지 않지만,
      말씀하셨듯이 인간의 감성을 자연에 빗댄 것이 전통적인 서정시이지 싶습니다.
      이 서정으로부터 좀 멀다 싶은 엉뚱(?)한 시들도 가끔 읽지만 결국 남아서 큰 줄기를 이어가는 것이 서정시 같아요.

      교장선생님께서 고르신 단 한 작품이니,
      달리 보입니다.
      저승이나 죽음이 인간삶의 아주 중요한 한 부분임에도
      그에 대해 생각하기를 저는 일부러 피하는 것 같습니다.
      답이 없을 너무 어려운 주제이기도 하고요.

    • 숲지기2021.08.04 00:03

      작품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렵고 대단한 작품이고,
      이 작품에서도 운율을 느끼며 읽으신다니,
      놀라우십니다 교장선생님!

  • style esther2021.08.11 19:29 신고

    시를 읽다가...
    벌레얘기에 홀딱 빠져버렸습니다.
    물린 곳이랑 다친 곳이랑 이제 좀 괜찮아 지셨는지요?

    저는 아주 예전에 잠시 강화에 살때
    집에 자꾸 말벌집이 생겨서 전문가를 부르곤 했었요. 쥐도 너무 많아서 ㅠㅠ
    지금 집에는 톡톡 튀어다니는 거미가 많아요.
    동네가 그런데로 나무가 많고 오래된 집이라 그런지...
    어제는 못참고 독한 연기를 피우고
    약도 여러가지 사서 촘촘하게 놓았습니다.
    이러기 싫지만 어쩌겠어요 ㅠㅠ

    그리고 저도 잘 넘어져서..
    무릎에 오래된 상처가 있습니다.
    예전엔 대체로 부주위로 그랬지만
    요즘은 뭐에 홀린 것 같다니까요 ㅠㅠ
    난시가 심해졌는데 선글라스만 써서 그런 것도 있구요..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답글
    • 숲지기2021.08.12 16:29

      강화, 그 아름다운 강화에서
      식구들 많게 사셨습니다 하하
      그리고 맞습니다, 벌레에겐 참 못할 짓이지만 저도 모기 파리를 막 잡습니다.
      팔 다리 등 목 , 어디 온전한 곳이 없이
      물린 자국 뿐입니다.
      저의 피를 양식으로 삼는 생명이 있다는 것이
      슬프기도 하지만,
      저 또한 거대한 먹이사슬 속의 한 개체라는 것에 안도합니다.

      그 후에도 몇 번 더 넘어질 뻔 하였습니다.
      무릎엔 아물고 있는 상처가 있어서
      마치 거북등처럼 딱지가 군데군데 있고요.

    • 숲지기2021.08.12 16:32

      위로 주심에
      감사합니다.

      답글을 쓰는 지금도 손가락의 곤충 흔적에
      쓰리고 가렵습니다.
      아마 땡벌 같아요.
      한 3일 걸리겠지요
      이게 끝이 아니고 앞으로 수번 더 쏘이겠지요.

  • 교포아줌마2021.12.18 19:41 신고

    고질적인 자발적 노예 ‘

    습관적인 자발적 생활인’
    으로 바꿔 읽어봤어요.

    사람이 자연에 봉사하며 산다면 모르겠지만요. ^^

    답글
    • 숲지기2021.12.20 09:58

      자연에 봉사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가 다녀가면서 훼손의 흔적이라도 덜 남기자는 것이죠.
      습관적인 자발적 생활인, 와 닿는 표현 주셨습니다.
      겨울엔 이 마저도 한가하니
      기회 봐서 몸살도 합니다.

      교포아줌마님 오랫만에 뵈어서 몹시 반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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