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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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초하루 시편지

숲 지기 2021. 6. 1. 08:25

 

 

 

미래를 추억하는 방법

/이대흠

 

꽃이 되었느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이름을 묻고 직업을 묻고 재산에 대해 궁금해하고

꽃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꽃이 사는 방식을 선호하지는 않습니다 당신은

 

꽃을 볼 때마다 바닥을 봅니다

당신의 바닥은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곳입니까

허공에 집을 지어 놓고 바닥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닥이 절망을 선물한 것이 아니라 허공에 바닥을 그려놓은 게

문제입니다

공기의 명랑함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요?

 

꽃향기가 개울을 이룬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나의 바닥에

등꽃이 핀 저녁이었습니다

당신의 발가락은 꽃잎 끝처럼 순했습니다 향기의 또랑이 가슴속으로 흘러들었습니다

 

연습하지 않아도 우리는 절망을 치러야 합니다

 

등꽃의 꽃말을 놓고 우리는 서로의 눈빛을 꼬았습니다

이별을 짓기 위해서는 더욱 뜨겁게 살아있음을 사랑해야 한다고 내가 말했던가요?

 

당신은 나를 안다고 했지만 나는 점점 돌 냄새처럼 희미해졌습니다

 

등꽃 향기는 낙지발처럼 구체적이라고

꽃의 향기가 몸에 빨판처럼 달라붙는다고

서로의 향기를 붙여보았던 저녁이었습니다

 

어떤 향기는 별들이 뛰어노는 하늘 언덕으로 몰려갔습니다

 

 

 

 

 

 

 

꽃들의 전략

/김형로

 

 

저 꽃들 어디 쟁여놓았나

저 작은 꽃망울 속에서는 어림없지

나무 몸속 어딘가 작업장 있을 것 같은데

과학은 아직 그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뿌리의 어두운 행적에 대해서도 밝혀진 것이 없다

얼마나 땅속을 헤집어야

저토록 뜨거운 꽃을 길어 올릴 수 있을까

어둠에서 뿌리는 어떻게 저런 색을 찾았을까

이런 궁금증을 유발하는 게 꽃의 전략이다

궁금한 사람들은 꽃으로 다가간다

꽃구경 잘한 사람들 중 몇은

꽃병인 줄도 모르고 죽기도 한다

꽃구경에도 공짜는 없다는 듯

꽃은 지상 최고의 거름인 사람 목숨을 먹고 핀다

영정 주변에 저를 둘리는 것은 꽃들의 마지막 배려다

붉고 희고 노란 꽃들이 필 때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게 좋다

꽃들이 얼굴을 스캔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꽃보다 이쁘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특히 꽃의 시샘을 조심해야 한다

아까운 사람들 먼저 가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앗! 빨리 엎드려라

저기 여기 꽃이 피어 사람을 찾고 있다

 

 

- '시산맥' 2021, 여름호

 

 

 

 

 

.......................

 

  • 파란편지2021.06.02 01:24 신고

    이대흠 시인이 아주 직설적으로 외치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렇게 외치기도 하고 아주 울음을 머금고 나즉나즉하게 호소하기도 하는 느낌입니다.
    세상은 저만치 시인의 마음과 달리 멋대로 굴러가는데
    시인은 시인의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울면서 호소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숲지기님께서 뭔가 말씀하실 걸 생각하다가 그만둔 것 같습니다.

    답글
    • 숲지기2021.06.03 14:46

      두 에서 '꽃'이라는 말을 빌어썼지만
      꽃은 제가 날마다 보는 숲꽃이기도 하고 또 아니기도 합니다.
      첫 시는 가끔 시도했던 번역투의 서술을 취하고 있습니다.
      우리말이지만 의도적으로 그리 한 것 같죠.
      그렇다면 시의 행간도 낯설게 하여 읽으라는 뜻 같아서 그리하여 두어 번 읽었습니다.

      교장선생님 저를 꿰뚫어 보시는 듯 합니다.
      할 말이 많을 땐 한 걸음 물러 서서
      애써 말을 하지 않습니다.
      저만이 아니고 사람들 대부분이 그리하실 듯 합니다.
      다행히 탓밭일이 산더미처럼 밀려 있어서
      갑자기 더위가 선물처럼 와주어서
      땀과 흙을 섞으며 보냅니다.

  • 사슴시녀2021.06.07 03:48 신고

    밑에 김 형로시인의 시는 섬칯했어요! ㅎㅎ

    답글
    • 숲지기2021.06.07 15:28

      시 쓰는 사람들의 위력이 대단합니다.
      한편 시로써 꽃이 가진 이미지를 바꾸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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