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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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식/자급자족·요리

시래기, 독일 흑림식으로

숲 지기 2021. 11. 25. 19:50

 

 

시래기가 그립다.

그 맛이 어땠는지는 딱히 규정할 수도 없고 

먹어 본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그럼에도 '시래기'라는 단어에 '우리나라 겨울용 건야채'라고만 쓰기엔

시래기가 가진 의미나 맛에 부족하다 싶다.

 

시래기가 마르는 동안 고향집을 생각했다.

대청마루 벽에 주렁주렁 걸렸던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할머님 큰어머님 어머님 숙모에 여러 올케들 얼굴도 스친다.

우리집 대가족 섭생을 위해 어마어마한 노동을 하셨던 희생자들. 

 

 

 

 

 

 

 

씨앗회사 '노아의 방주(재래씨앗을 보관 판매하는)'에서 로마네스코를 주문하여 심었는데

잎만 무성할 뿐, 기다리던 로마네스코는 열리지 않았다.

 

실수로 다른 오래된 재래종 씨앗*을 보냈지 싶은데,

기특한 것은 4년씩이나 내 밭에서 살아주었다는 것.

유럽엔 비슷한 류의 배추가 있다.

내 밭에서만도 몇년 사이 이러저러한 변종현상이 여럿 있으니, 이해가 된다. 

어린 싹은 셀러드로, 좀 지난 억센 잎은 씻어 데쳐 말려서 저렇게 시래기를 만든다.

 

다시 시래기 만드는 얘기로 돌아 와서,

위의 사진처럼 대바구니에서 시래기가 꼬들꼬들 마르면

사진의 왼쪽 위에 잎을 4등분한 것을 잎부분에 모아놓고 

둘둘 말아서 보쌈처럼 싸준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보관의 편리함과 혼자 먹을 양만큼 미리 등분하기 위해서.

 

마음이 추운, 시래기가 그리운 날엔

저 아름다운 한두 덩이를 솥에 넣고 아무 생각없이 물 한바가지 넣고 푹 끓여야지.

아름다운 시래기라 썼는데,

정물 수채화에나 있을 법한 신비로운 색상이다.

 

 

 

 

 

 

 

 

몸살의 끝자락, 잔기침을 잡고 있다.

근육이 욱신거리는 중에 신열이 오르내릴 땐 이러다가 단풍이 되겠다 싶었다. 

자존심 때문에 약은 먹지 않았지만 

두통 근육통에 '아이구'소리를 속으로 몇번 질렀다.

 

아프지 말자,

더구나 객지에선 절대로 아프지 말자.

 

 

 

 

 

 

* 노아의 방주(Arche Noah)에서 구입한  

마르크배추 Markstammkohl 

 

 

 

 

 

 

  • Chris2021.11.25 16:08 신고

    <시래기 어릴 때 기억>
    김장하고 남은 배추 바깥 잎을 모아서 짚으로 묶어 말렸음
    시래기는 주로 햇빛이 드는 벽에 걸어둔 것 같음. 대청 마루 벽?
    바싹 마른 시래기를 물에 넣고 된장을 풀어서 끓임. 가끔씩 쇠고기 (간것?) 들어가면 더 좋았음
    하얀 쌀밥을 시래기 국에 넣어 말아 먹으면 통상 2 그릇 이상 먹었음
    <약>
    오용, 남용은 문제임
    모든 약에는 약간씩의 독성이 있음
    그러나 약이 꼭 필요한 상황에서는 안먹어도 문제임.
    약하나 나오기 위해서는 10년 정도 걸림.대부분 안전성이 보장됨. 지시대로 먹으면 더 안전함.
    (코로나 백신은 인류가 총력을 기울인 결과 약간 의심스러우나 2년 이내 나왔음)
    <아프다는 것>
    통증은 경고의 의미임. 무리하지 마시길.
    아프면 조금 슬픔. 특히 외로울 때
    행여 이불 덮고 누워 있거나 멍하니 바깥 하염없이 쳐다보지 마시고
    좋아하는 것 조금씩 하시기 바랍니다.
    쾌유를 빕니다. [비밀댓글]

    답글
    • 숲지기2021.11.25 17:28

      크리스님, 구구절절 지혜로우신 말씀 주셨습니다.
      시래기에 된장을 넣을까 생각했습니다만
      말씀처럼 그리해야 겠습니다.
      짚으로 묶은 것이 기억이 날 것도 같습니다.
      이글은 저만 읽기엔 아깝습니다.
      시래기된장국 레쳅트는 저말고도 많은 이들에게 필요할텐데요 하하

      약에 대해선, 내성이 생길까봐
      원래부터 멀리했습니다.
      집 비상약상자엔 그래서 몇년씩 날짜 지난 것들 그냥 버리고 바꿔줍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찌 아셨을까요,
      누워서 멍하니 하늘 봤어요 오늘 종일 ㅎㅎ 크리스님 글 읽고
      거실로 와서 컴이라도 켜 놓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비밀댓글]

  • 이쁜준서2021.11.25 16:23 신고

    참 제 맘이 착찹해 집니다.
    약을 드시지 않으신다는데 된 몸살을 앓으시나 봅니다.
    예전 시골에서는 약이 없어서 맹물 팔팔 끓여서 그나마 그 귀한 설탕이라도 있으면
    설탕물을 먹으면 땀이 흐르고 하룻밤 된 몸살이 좀 우순 했습니다.
    집에 과일 청을 만들어 두신 것이 있으면 팔팔 끓인 물에 태워 드시기라도 하시고,
    무엇보다 기운 잃지 않으면 않되니 밥이 있으려나?
    밥을 삶아서 드시면 소화가 잘 되더라구요.
    몸은 한국 사람이고 사시는 곳은 서양이고, 몸도 따뜻하게 하셔요.

    한국의 무청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비슷한 맛이 있겠지요.
    무청이 아니라 그리움덩이 입니다.

    답글
    • 숲지기2021.11.25 17:43

      이쁜준서님
      다정다감한 언니 같으셔서,
      댓글 읽으며 눈물이 핑핑 돌았죠.
      고맙습니다.
      지하 창고에 이것저것 담아 둔 달달한 것이 있지만,귀찮고 또 여력이 없어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를 위해 만들어 쌓아 뒀을 텐데,
      이래저래 저는 어리석습니다.
      소고기 무국을 2리터 쯤 큰 솥에 끓여 놓고
      며칠 째 그것만 먹고 있습니다.

      몸은 한국인인데, 객지에서 이러고 있습니다요.
      무청이 아닌 그리움덩이라고 하신 말씀을
      객지생활 중인 사람들끼린 다 알지 싶습니다.

  • 파란편지2021.11.26 00:15 신고

    자존심 때문에 약은 드시지 않는다고요?
    마음이 아픕니다.
    전 두어 번 재채기만 해도 얼른 "판피린" 한 병을 마셔둡니다.
    그 판피린을 오십 병쯤 사다 쌓아두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면역력이 바닥이어서 알아서 대비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얘기 하기 싫지만(숲지기 마음이 약해질까봐, 그렇지만 그 단계는 아닐 것 같아서) 시레기 얘기는 눈물겹습니다.
    뭐 된장국 정도가 되어도 훌륭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대단합니다.

    답글
    • 숲지기2021.11.26 13:27

      마음이 아프다 하시니,
      아마 영국의 따님 생각을 하셨나 봅니다.
      저보다 따님께서는 잘 지내실테니 걱정 마십시오.

      그리고 명색이 텃밭농사꾼인 걸요 하하
      저 시래기에 된장을 넣어 조만간 끓여 볼까 합니다.

      판피린이 무엇인가 해서 찾아보았습니다.
      몸살 증상을 개선하는 약이라고요.
      박카스나 까스명수보다는 신약인가 봅니다.

  •  
  • 씨레기인가 시레기인가 한참 헷갈렸네요!!
    산책하다보니 여기 비행연습장 근처에 무우가 도처에 도더지 무덤처럼 쏟아 있길래
    뽑아보니 손바닥 길이로 튼실한 무우도 달렸는데, 실상 무우청이 땀나서 가져왔네요.
    (원래는 거기가 주 농업실험하기 위해 재배 시험터인데, 그냥 갈아엎기 일수라.. 슬쩍한건 아니고... ^(^)
    그냥 데쳐서 냉동고에 뒀다가 우거지 된장국 끓여 먹을려고!!

    다들 평안하시지요?! 코로나 긴 터널 빠져나가기 힘드네요!!
    고향가는 하늘길도 막힌지 오래고!!

    답글
    • 숲지기2021.11.30 22:09

      어김없이 찾아든 계절이지만
      올해 크리스마스도 있는 듯 없는 듯 보내야 하네요.
      이제 슬슬 희망을 거둘 때가 되지 않았나 싶고요.

      객지에서 무조건 건강하십시오.

  • style esther2021.12.01 12:45 신고

    예전에 독일에 사는 한국인 작가가 고향맛이 그리워지면
    민들레를 뜯어서 나물로 무쳐먹는 걸
    영상으로 본적이 있다고,
    숲지기님께 말한 적 있었나요..?
    (기억이 좀...)
    저도 외국에 살게되면서 종종 그 장면이 떠오르곤 합니다.
    공감하죠 정말…
    아는 맛은 정말 무서워요.

    저는 시래기는 멸치다시마국물에 된장풀고 들깨넣고
    아주 푹 지져먹는 걸 젤 좋아합니다.
    지인증에는 또 시래기를 푹 끓여서
    그때그때 귤이나 사과를 넣고 차로 마시는데
    건강에 아주 좋다고 들었습니다.
    감기기운 있을땐 하루에 한 주전자 씩!
    이건 숲지기님께도 권해드리고 싶어요.

    답글
    • 숲지기2021.12.04 00:00

      저도 그분, 인형작가 김영희씨? 기억합니다. 그분 책을 읽은 기억도 있고요.
      지금도 독일에 사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오래된 기억인데,
      민들레 김치 만들 때마다 생각나던 분이셨는데요.

      아는 맛이 무섭다는 말씀 ㅎㅎ
      너무나 공감이 가서 혼자 웃습니다요.
      시래기국은 옛날 그 맛이 전혀 나질 않습니다.
      멸치다시다가 없어선지,
      제가 뭘 잘 못했는지,
      된장이 그 된장이 아닌지
      아직까진 저렇게 폼만 잡은 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님,조언 주셨네요.
      푹 끓여서 귤 사과 넣고 감기차로 !!!
      너무나 근사한 레서피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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