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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12월 초하루 시편지 본문
송년카드
/김명원
겨울을 악물고 있는 수상한 도시가 있다.
빌딩창문들마다 불어오는 잿빛 기침,
실어증으로 입원중인 가로등,
실밥이 풀리는 보도블록,
자동인형처럼 걷는 딱딱한 사람들,
고개 들면, 쑥 자라 있는 어둠의 흉통이 있다.
12월 31일 밤,
내리기 시작하는 눈발 속을 걸으며
주머니 깊숙이에 오른 손을 넣는 순간,
놀라워라 유년의 골목에서 태어난 눈사람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말 걸어온다.
나를 다 읽고 있었다는 듯
나를 다 보고 있었다는 듯
강물에 떠내려간 일기장과 조급해진 신발더미와
몇 번의 연애와 소나기를 맞던 결혼식 조화 화환과
사십년 세월이 주름으로 얼룩진 거울과 그리고 엄마,
타다 만 몇 소절 화장터 불길들과
질긴 시詩 한 줌 부스러기까지,
다 알고 있다는 듯
나를 전집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래도
차마 보여줄 수 없는 마침표가 있다.
끝까지 적을 수 없던 비명이 있다.
견디고 있는 안녕이 있다.
눈길을 오래 걸어와
내 하얀 슬픔의 식민지에까지 이른
눈사람과 눈물이 날 정도로 눈을 오래 맞추자
눈발이 더욱 거세진다.
-웹진'시인광장'2021년 9월호
정리
/곽구비
다 떼어내고 남은 12월이
용감하게 서 있다
유난히 빼곡한 날짜 안에 빨간 동그라미
특별한 날이 표시를 한 모양이군
건망증이 무서운 게지
앞장들이 뜯겨진 이유를 모른 체
홀가분한 12월이 휘날릴 때
정리를 해볼까 전화번호부를 연다
너는 애매모호해서 지워주고
너는 귀찮아서 지워내고
너는 아무 연고 없으니 지워주마
어느 님 연말정산에 내 이름도
이렇게 떨어져 나갔을 테지
꿋꿋이 달고 있을 이름이 많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잖은가
-시집'자연의 들러리로 살고 싶다'청어시인선, 2020
백 년 만에 내리는 눈
/이선식
때론
사는 일이 다 시시하고 부질없다고 느껴질 때
그럴 일 없겠지만
첩첩산중 홀로 사는 시인을 찾아
그녀가 다니러 오는 날
백 년 만에 내리는 눈
눈도 눈도 그런 본 적도 없는 눈이 내리고
세상과 통하는 길이 다 끊어졌으면 좋겠다
먹는 일도 잊어버리고
이불 속에서 서로의 살이나 파먹으며
몇 날 며칠
벌레처럼 꿈틀꿈틀 파고들어
생애 이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시집 '귀를 씻다'-문학수첩, 2020년 12월
............................................................
*... 흑림엔 일제히 눈이 내렸고, 폭풍 또한 연일 멈추질 않고 있다.
이 산 저 산, 이 들녘 저 들녘에서
그간 길러온 바람세력을 다 꺼내 놓고 자랑대회라도 하는 듯 하다.
작게는 동네 운동회격이고 크게는 여러 날에 걸친 올림픽격이라고나 할까.
창을 여러 겹으로 닫고 잠그고 귀 막고 딴짓을 해도
겨울밤에 찾아든 폭풍은 숨길 수가 없다.
여러 날 폭풍으로 미친듯 울부짖던 숲도
바람이 잦아들 때면 다시 얌전해 지는데,
폭풍과 대적하여 얻은 전리품처럼
길고 곧은 나무들이 그 접전 지역에 누워 있을 것이다.
흑림엔 일제히 눈이 내렸고, 폭풍 또한 연일 멈추질 않고 있다.
폭풍이 멎고 나면
'백년 만에 내리는 눈'을 만날 지 누가 알겠나
애벌레가 되고 ,
애벌레보다 미세한 무엇이 되고,
아니 그 무엇으로도 규정 안 될 만큼 작아져서
생애 이 전으로 돌아갈지....
*... 시들, 쓰신 분들께 감사하고
사진은 내 텃밭의 완숙한 겨울꽃들, 지난 주에 찍었다.
-
"나를 전집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답글
그러고보니 언제부터였는지 날이 갈수록 저 자신을, 저 자신의 지난 세월을
전집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시시때때로, 하루에도 여러 번씩 그런 시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2월도 12월이고, 저의 세월도 그렇습니다.
참 좋은 시를 전해주시는 숲지기님의 월동이 보다 아늑하기를 기원합니다. -
style esther2021.12.01 15:48 신고
시인이름도 시도 다 새롭습니다.
답글
어떻게 어디가 좋다고 당장 말하진 못하지만
묘묘한 감동이 있네요.
이 시기에 마음을 타악타악 눌러주는 그런... -
시인들은 상상의 천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답글
뇌가 아주 말랑말랑한 사람들.
빌딩이 기침하고 가로등이 실어증을 겪고...
비유를 통해서 독자들이 더 많은 느낌을 얻고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겠지요.
아니면 자신 역시 모호해져서 비유로만 표현할 수 밖에 없었든가.
저는 가슴이 아닌 머리로 시를 읽어서인지 솔직히 내 사고력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시보다
그냥 눈으로 그려낼 수 있는 시가 좋아요. "구름에 달가듯 가는 나그네..."^^
찬 바람 스며들지 않게 창문 꼭꼭 닫으시고
주홍색 불 옆에서 음악 듣고 와인 한잔 마시며 블로그하는 모습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눈보라치는 흑림에 살고있지 않는자의 상상입니다. ㅎㅎ-
숲지기2021.12.03 23:21
크리스님께서 어느 시의 어느 대목을 읽으셨을지,
저도 막 찾아 보았습니다.
"겨울을 악물고 있는 수상한 도시가 있다.
빌딩창문들마다 불어오는 잿빛 기침,
실어증으로 입원중인 가로등,
실밥이 풀리는 보도블록,
자동인형처럼 걷는 딱딱한 사람들,
고개 들면, 쑥 자라 있는 어둠의 흉통이 있다."
'눈이 오니 마음이 아프다'라는 직설보다
아픈 환자의 구체적인 증상이 더 시적 설득력을 가지지 싶습니다.
그냥 읽히는대로 읽으십시오.
지금은 아니셔도
다음 기회에 우연히 같은 시를 보시면
또 다르게 읽으실 겁니다.
흑림에도 눈이 멎었습니다.
딱 요 정도로 눈이 좋습니다.
더 이상 안 오면 참 좋겠고요 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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