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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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초하루 시편지

숲 지기 2022. 2. 1. 12:43

 

 

 

비누

/문정희

 

 

명성은 매끄러운 비누와 같아

움켜쥐려 할수록

덧없이 사라진다

 

오늘 한 시인이

시 한 편을 써서 얻은 이름으로

비누를 사러 갔다

 

그는 자꾸 향내를 맡아보다가

첫사랑처럼 애틋하고

마지막 사랑처럼 절박한 향을 골랐다

 

실은 그 향은 한물간 향이다

불꽃을 닮아 입술을 팔랑이는 척하다가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가벼이 사라지는

흔한 거품 냄새였다

 

비누는 원래 할 말이 많은 돌이었다?*

돌로 여기저기를 팍팍 문지르다가

거품을 주무르다가

물에 녹아 하수구로 사라지는 것이다

세척의 역할 따위를 생각할 겨를조차 없다

 

명성은 매끄러운 비누의 모습으로

모래 위를 돌처럼 바다거북처럼 굴러다니다가

가뭇없이 바닷물에 쓸려 간다

 

* 프랑시스 퐁주

 

 

- 現代文學 2022년  1월호

 

 

 

 

 

 

숯이 되라

/ 정호승

상처 많은 나무의 가지가 되지 말고

새들이 날아와 앉는 나무의 가지가 되라

내가 끝끝내 배반의 나무를 불태울지라도

과거를 선택한 분노의 불이 되지 말고

다 타고 남은 현재의 고요한 숯이 되라

숯은 밤하늘 별들의 새들과 함께

나무의 가슴에 잠시 앉았다 간 작은 발자국

밤새도록 새들이 흘린 눈물의 검은 이슬

오늘밤에도 별들이 숯이 되기 위하여

이슬의 몸으로 내 가슴에 떨어진다

미래는 복수에 있지 않고 용서에 있으므로

가슴에 활활 격노의 산불이 타올라도

산불이 지나간 자리마다 잿더미가 되어

잿더미 속에서도 기어이 살아남아

화해하는 숯의 심장이 되라

용서의 불씨를 품은 참숯이 되라

 

 

-정호승 '당신을 찾아서' 창비 2020​

 

 

 

 

 

 

/ 이병률

면아 네 잘못을 용서하기로 했다

어느 날 문자메시지 하나가 도착한다

내가 아는 사람의 것이 아닌 잘못 보내진 메시지

누가 누군가를 용서한다는데

한낮에 장작불 타듯 저녁 하늘이 번지더니

왜 내 마음에 별이 돋는가

왈칵 한 가슴이 한 가슴을 끌어안는 용서를 훔쳐보다가

왈칵 한 가슴이 한 가슴을 후려치는 불꽃을 지켜보다가

눈가가 다 뜨거워진다

이게 아닌데 소식을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닌데

어찌할까 망설이다 발신번호로 문자를 보낸다

제가 아닙니다, 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이번엔 제대로 보냈을까

아니면 이전의 심장으로 싸늘히 되돌아가

용서를 거두고 있진 않을 것인가

별이 쏟아낸 불똥을 치우느라

뜨거워진 눈가를 문지르다

창자 속으로 무섭게 흘러가는 고요에게 묻는다

정녕 나도 누군가에게 용서받을 일은 없는가

 

.......................................................

 

 

 

 

.......... 눈이 내리다가 말다가, 내린 눈이 녹다가 말다가 한다. 

날씨는 대체로 흐리고,

집안 식물도 나도 햇볕 결핍증에 걸렸다.

 

 

......... 숲살이 처음 얼마 간은 메아리때문에 신경이 곤두섰었다.

양떼들이 조석으로 앞뒤 능선을 느리게 지날 땐 참을 만하지만 

오토바이의 방귀굉음을 뿜고 달리는 주행은 듣는 귀를 자극하였다.

한대의 오토바이가 골짜기에 들어 오면 

그 메아리는 시간차를 두고 이산 저산 주고 받는 동안 

마치 서너 대의 오토바이가 함께 달리는 듯한 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 몇년 간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던가 싶게 오토바이 방귀굉음을 잊고 산다.

바이러스 확산 방지 정책의 일환으로 당국이 통행 제한을 수시로 실시하니

오토바이 발목도 묶었던 셈이다.

오토바이 주행자들에게 이상적이라는 흑림가도에 오토바이 통행이 줄다니,

코로나로 인해 덕을 본 몇 안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아닐까.

마스크로 가린 입꼬리를 올리며,

몰래 웃을 일이다.

 

 

.......... 설날인 줄 오늘에서야 알았다.

오랜 해외살이의 요령이라고나 할까,

무심한 듯 모르고(알지 않고) 넘기는 것이다.

설날이 없는 나라에서 마치 나만 아는 비밀인양 명절을 견디지면

현실과 먼 생각들로 사정없이 멜랑꼴해지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날인 줄 이제 빤히 알았으니,

'아 엊그제가 설날이었구나' 라고 며칠 뒤에 뒷북치긴 틀렸다. 

 

.......... "창자 속으로 무섭게 흘러가는 고요에게 묻는다

정녕 나도 누군가에게 용서받을 일은 없는가"

 

.......... 시 쓰신 분들께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 노루2022.02.02 03:27 신고

    특히 두 번째 사진에 자꾸 눈이 가네요.
    불 켜진 가게(?)들 때문인가봐요.

    시도 잘 읽었고요.
    할 말이 많아서 거품 무는 비누? ㅎ
    그런데, 나무가 활활 타고 나면 재가 될 뿐이고
    뜨거워도 타지 않고 참고 견뎌야 숯이 되는 것 아닌가요?

    답글
    • 숲지기2022.02.02 23:41

      두 번째 사진의 가게는
      저 골짜기에서 유일한 것입니다.
      도시의 수퍼마켓에 비하면 매우 작지만
      없는 게 없습니다.
      겨울에도 여름 물놀이 용품을 살 수 있고요,
      여름에도 크리스마스 장식품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비누나 숯에 대한 노루님 말씀이 잘 이해됩니다.


  • style esther2022.02.03 00:41 신고

    아주 오래전에 전철역에서 정호승시인을 본적이 있어요.
    인터뷰 기사를 읽은 다음이라 바로 알아봤습니다.
    옆모습에서 차갑고 푸른 공기가 느껴지는…
    그후 오랫동안 시를 다시 꺼내 읽을 때마다 그 순간을 기억하곤 했었는데
    어느샌가 완전히 잊고 있었습니다.

    저는 가끔 혼자서...
    우리우리 설날은 가끔 좀 잊혀지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답글
    • 숲지기2022.02.03 13:17

      푸른 기운을 지닌 사람, 근사한 표현입니다.
      사실은 그 푸른 기운을 알아차리신 에스더님이 더 놀랍습니다.
      그 느낌에 대해 보다 깊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더 읽고 싶습니다.

      설날 망각증, 그게 저도 필요합니다요 ㅎㅎ

    • style esther2022.02.05 15:40 신고

      예전의 구로 전철역이었는데
      저랑은 다른 방향으로 가는 플랫홈에
      검은 코트를 입고 서 있었어요.
      좀 구부정 하시고...
      옆모습은 날카로워 보였는데
      앞모습은 선한 인상..
      말을 걸지는 않았어요.
      저는 좀 그래요..ㅎㅎ
      잠시 그런 생각은 했어요.
      얼마전까지도 가방에 '슬픔이 기쁨에게'시집이 있었는데 오늘은 없다...그런 ㅎㅎ
      있었다면 혹시 싸인을 받았을지도.

      그보다 또 전에 서영은이라는 작가를
      인사동 찻집에서 마주친적 있거든요.
      그땐 제가 마침 '먼 그대'라는 소설을 가지고 있어서
      어색하게 싸인을 받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보다 그분이 더 수줍어했던 기억도...

      결론적으로 별거 아닌데
      잊혀졌다가도 다시 생각나요.
      정호승 시인을 만났을때
      제가 어떤 형편이었는지, 몇 살이었는지는
      아무리 머리를 흔들어도 기억이 안나는데...

    • 숲지기2022.02.06 01:04

      한편의 잔잔한 시를 읽듯이
      에스더님 댓글을 읽습니다.
      티비에서 자주 봐서 저만 알던 사람을
      공항이나 커피숍에서 마주하는 기분? 그쯤으로 상상합니다.
      물론 그 기분과는 비교도 안 되겠지요만,
      에서더님이 정호승 시인을 만나셨으니 말이죠.

      ......
      저뿐만이 나닌 다른 분의 개인사를 썼던 관계로 부분 삭제 수정합니다.
      에스더님꼐 이해를 구합니다.

  • 파란편지2022.02.03 01:24 신고

    전 첫 번째가 그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림이라 한들 누가 쉽게 그릴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문정희 시인은 역시! 싶었습니다.
    현대문학이 도착하자마자 시부터 살펴보았는데
    문정희의 시를 보며 사랑을 이야기하는 건 익숙했고
    '명성'을 이야기한 건 의외였습니다.
    세속적인 사고지만 그럴 때도 되었지 싶기도 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저는 시인들을 동경하지만 시인을 알 수는 없는 사람이니까요.

    설날도 옛날 말이지 지금은 별것 아니에요.
    정말 그래요.
    이건 제 딸이 오십이 되어서도 이제 오십하나가 되어서도
    여기 있으면 무슨 꼬까옷 입고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전통놀이 하고 즐겁고 기쁘고 그런 설날인 줄 알거든요.
    기가 막히는 일이죠.
    이걸 어떻게 설명하겠어요. 솔직히 말해서
    '가만 있어 봐, 지금 숲지기님도 마찬가진가?' 싶었어요.

    답글
    • 숲지기2022.02.03 13:30

      명성의 맛을 본 사람에게 시가 더 맛있을 것 같은 '비누' 시입니다.
      저분 시 특유의 팍팍한 느낌이 좋아서
      신작시가 떠오르는대로 저도 찾아 읽습니다.

      설날이 이제 별 것 아니란 교장선생님 말씀에 이렇게 위안이 되다니요.
      따님께서도, 따님의 명절 정서도 저와 마찬가지가 아니시길 정말 바랍니다.
      저는 그냥 하루 종일 설날 '설'자도 입 밖에 내지 않습니다.
      '꼬까옷'이라 써 주셔서
      진짜 꼬까옷 입고 들떠서 보냈던 전설같은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대 가족이 널을 뛰고 윳놀이하고요.......

  • Chris2022.02.04 16:25 신고

    산악 바이크. 제가 참 싫어하는 것 중 하나.
    굉음으로 온갖 동물(인간 포함) 다 놀래켜 놓고,
    trail에 울퉁불퉁 바퀴 자국 내고, 매연 풀풀.
    자연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기계.
    타고 싶은 욕망은 인정하나, 지금 보다는 더 엄격히 탈 수있는 장소를 제한하면 좋겠습니다.

    답글
    • 숲지기2022.02.05 14:26

      뭉클합니다.
      숲에 서식(?)하는 저 같은 동물들 편을 들어 주시다니요 !
      타고 달리는 사람들은 그 굉음에 더 기뻐하겠지만
      귀 고막이 얼얼할 만큼 괴로운 소립니다.
      말은 안 해도 숲의 나무들도 참 괴로울 것이고요.

  • 파란편지2022.02.04 23:29 신고

    이병률의 시는 참 좋습니다.
    눅눅하지 않고 달지도 않은 이병률의 시를 읽으면 마음이 그리움만으로 채워지는 느낌입니다.
    이병률 시인은 눅눅하지 않고 달지도 않고 그런 사람일까요?
    기차가 방금 떠난 자리에 남은 공간 같은 사람일까요?

    답글
    • 숲지기2022.02.05 14:43

      기차가 떠난 자리에 남은 공간 같은 사람요?
      한 사람을 이토록 시적으로 표현하시다니요 교장선생님!!!!!
      시 쓴 분이 이 댓글을 읽을 리가 없겠지만, 읽는다면 기분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별이 쏟아낸 불똥을 치우느라
      뜨거워진 눈가를 문지르다' ,
      이게 무슨 뜻일까요?
      그 다음 문장의 수식어 '무섭게' 도 참 생경하죠.

      이번 달 모셔온 시들을 읽으며 절실히 느낍니다.
      그때그때 제 속에 따라 시가 달리 읽히는 것쯤을 알고는 있었지만
      어떤 시는 두 세 네번 읽으면
      단물빠진 껌을 참 멋적게 씹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관념으로만 쓰는 시는 생명이 짧다는 것을 다시 각인하면서요.

    • 파란편지2022.02.06 00:11 신고

      관념을 시로 나타낸다는 것 자체를
      전 별로 읽고 싶지 않았습니다.
      가르치려드는 게 정상이 되니까요.
      전 시인을 따라다니고 싶은 마음이 한결같지만
      시인들로부터 뭘 배우고 싶은 마음은 정말이지 추호도 없습니다.
      이병률 시인은 그래서 참 좋은 시인입니다.
      느낌을 쓰고
      그 느낌의 곁에서
      저의 느낌, 그것도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을 갖게 해주니까요.

    • 숲지기2022.02.06 00:51

      '가르치려는 시', 교장선생님 말씀이 신선합니다.
      시 읽으며 뭘 배울 생각이 저도 없나 봅니다. 그런 시는 끝까지 읽지 않고요.

      많이 읽히는 시를 썼던 분들의 신작에도
      하나마나한 관념싯구를 읽는데,
      이런 경우 '시인도 늙는구나' 생각합니다.
      명 소프라노의 성대가 늙으면
      그 노래 참 듣기 거북하듯이 말입니다.

      이병률시인은 잘 모릅니다.
      이름으로 봐서 남자분이 아니신가 싶고요.
      찾아볼까 하다가 말았습니다.

    • 파란편지2022.02.06 01:19 신고

      학교 선생님들은 모두 시나 뭐나 다 우리를 가르치는 것으로 가르쳤잖아요?
      전 그걸 늦게 알아챘고 그게 참 안타까웠어요.
      가르치려드는 건 졸작이다 생각하니까 속이 후련하고 그때부터 좀 보이는 것 같았어요.
      진짜 시인이 어떤 시인인가도 생각하게 됐지요.
      가냘픈 정서로 혹은 남들에게 뭔가를 좀 가르치려드는 시인이 불쌍해지고요.
      그들은 설사 내가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라도 그건 상관도 없는 일이잖아요.
      늙은 시인이 자신이 뭘 써놓으면 다 시가 된다는 의식으로 쓴 글도 불쌍하죠.

      이병률 시인에 대해서는 저도 숲지기님 정도로만 알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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