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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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정월 초하루 시편지

숲 지기 2018. 1. 1. 12:53

 

 

 

 

 

 

 

눈 속에 피어난 장미들을 봅니다.

정확히는 피어있는 장미 위에 눈이 내려 앉은 것이지요.

비록 동토에 꽃을 피우고

그 꽃 위에 시린 눈이 뒤덮였을지라도,

장미는 장미로서 피어 있습니다. . 

 

2018년 정월 초하루입니다.

새롭게 열린 한 해,

눈 속에서 더 붉은 장미처럼

 

꽃 피우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씨앗

/함민복

 

씨앗 하나

손바닥에 올려놓으면

포동포동 부끄럽다

씨앗 하나의 단호함

씨앗 한톨의 폭발성

씨앗은 작지만

씨앗의 씨앗인 희망은 커

아직 뜨거운 내 손바닥도

껍질로 받아주는

씨앗은 우주를 이해한

마음 한점

마음껏 키운 살

버려

우주가 다 살이 되는구나

저처럼

나의 씨앗이 죽음임 깨달으면

죽지 않겠구나

우주의 중심에도 설 수 있겠구나

씨앗을 먹고 살면서도

씨앗을 보지 못했었구나

씨앗 너는 마침표가 아니라

모든 문의 문이었구나

 

- 시집<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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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설날

/김이듬

 

올해는 한 사람도 사랑하지 않으리
올해는 술을 줄이고 운동을 하리
계획을 세운지 사흘째
신년 모임 뒤풀이에서 나는 쓰러졌다
열세 살 어린 여자애에게 매혹되기 전 폭탄주 마셨다
천장과 바닥이 무지 가까운 방에서 잤다
별로 울지 않았고 별로 움직이지 않았다


날마다 새로 세우고 날마다 새로 부수고
내 속에 무슨 마귀가 들어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주문을 외는지
나는 망토를 펼쳐 까마귀들을 날려 보낸다
밤에 발톱을 깎고 낮에 털을 밀며
나한테서 끝난 연결이 끊어진 문장
혹은 사랑이라는 말의 정의(定義)를 상실한다


설날의 어원은 알 수 없지만
서럽고 원통하고 낯선 날들로 들어가는 즈음
뜻한 바는 뺨에서 흘러내리고
뜻 없이 목 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데


한 사람도 사랑하지 않는 일은
백 사람을 사랑하는 일보다 어려운 이성의 횡포
수첩을 찢고 나는 백 사람을 사랑하리
무모하게 몸을 움직이지 않으며
마실 수 있는 데까지 마셔보자고 다시 쓴다

 


 

 

 

Bildergebnis für schnee blumen

 

 

 


 

접목

/ 정용주

 

사선으로 단칼이 지나간다

 

대가리를 부정하는 몸과

뿌리를 지워버린 기억이

허공에서 맞댄다

 

선형 낭자한 실핏줄

친친 동여맨다

 

굴욕의 문서를 찢고

새롭게 태어나라고

반의 세계는 매일 죽어간다

 

부정을 부정하기 위해

온힘으로 결합하는

두 개의 부정

 

뱀에서 악어가 태어나고

양에서 늑대가 생겨난다

 

나는 매일 죽으며

변종이 되어간다

 

<시인동네 16년 12월호>


 

 

 
  • 노루2018.01.02 08:11 신고

    맨 위의 저 '눈 속의 장미' 사진을 보는 순간,
    왜 숲지기님을 보는 것 같았을까요. ㅎ

    씨앗의 씨앗인 희망은 커
    아직 뜨거운 내 손바닥도
    껍질로 받아주는
    씨앗은 우주를 이해한
    마음 한점

    숲지기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답글
    • 숲지기2018.01.02 22:03

      고맙습니다 노루님.
      너무나 기분이 좋습니닿ㅎㅎㅎ
      우리의 정서에는 설중매화가 더 와 닿지만
      여기 유럽에는 매화가 정착하지 않았습니다.

      장미도 매화만하지요 노루님?
      필사해주신 씨앗 시를 읽으니 더 좋습니다.

  • 나2018.01.02 17:07 신고

    여행 잘하고 돌아와서 쉬는중입니다.
    나이가 들어가 그런지 아니면 그곳이 너무 낮밤이 이곳과 달라 그런지...
    비행시간도 힘들고 오가는게 너무 고역이었습니다.
    그래도 참 좋은 시간을 보내고 왔어요.
    무엇보다도 날이 따스해서 좋았어요...제가 좋아하는 꽃이 이 겨울에도 있어서 더요.
    장미가 아직도 있었던것을 숲지기님 장미를 보니 대견한데
    눈 맞은것이 안스러워도 모양은 그지없이 아름답네요.
    무슨일이 있어도 나는 장미다...하는듯이요.
    추운날 잘 지내고 계시지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게 행복하세요.
    해피 새해 입니다!!! [비밀댓글]

    답글
    • 숲지기2018.01.03 00:08

      안나님 오시니 반가운데,
      혹시 여행 후에 병나신 것은 아니지요?
      그러시면 안 되는데요.

      시차 적응 잘 하시고,
      깊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십시오.
      몸이 그렇게 요구할 때는 꼭 쉬어 주셔야 합니다 ㅎㅎㅎ [비밀댓글]

  • 숲지기2018.01.02 22:07

    안나는 오셔서 정말 반갑습니다.
    혹시 여행 후에 병나신 것은 아니지요?
    그러시면 안 되는데요.

    시차 적응 잘 하시고,
    깊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십시오.
    몸이 그렇게 요구할 때는 꼭 쉬어 주셔야 합니다 ㅎㅎㅎ [비밀댓글]

    답글
  • 사슴시녀2018.01.03 19:23 신고


    숲지기님의 공간까지 어찌 왔는지 모르는데..숲속에서 아무생각 없이 길을 헤메다
    멋진곳을 발견한것 같아요! ^^.
    제가 이렇게 불쑥 숲지기님의 평화로운 숲속에... 실례가 아니었으면 해요!

    씨앗.. 봄을 기다리며 씨앗을 만지작 만지작, 꾸는꿈이 즐겁습니다!
    2018년의 봄은 제게 무슨선물을 줄까? 기대해보면서요.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비밀댓글]

    답글
    • 숲지기2018.01.03 20:49

      깊고 누추한 산골까지 먼 길을 오셨습니다.
      환영합니다.

      땅에서 거두고 또 심고 있는 터라,
      씨앗의 의미를 압니다.
      꿈을 심는 씨앗으로 풍작을 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비밀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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