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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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초하루 시편지

숲 지기 2018. 3. 1. 00:11

3월 초하루 시편지

 

 

 

 

 

 

 

 

 

몹시 춥습니다.
겨울이 막바지에 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영 후, 머리를 말린다고 말렸음에도 집에 오는 동안
어깨를 덮은 끝부분 머리카락에 고드름이 열렸었지요.
거울을 보며 한바탕 웃었답니다.
가고 나면 이 별스러움도 그리워질지 모르겠네요.
 
시편지를 띄웁니다.
행운의 3월을 맞으세요.








.사진은 겨울 요정(흑림 뒷산 뭄멜제(Mummelsee))이 겨울을 나는 모습입니다.
동네 웹캠을 옮겨왔고요.
 








나는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강송숙

그저 잘 지내냐는 안부 문자에 대뜸 전화를 걸어온 친구는 첫마디가 웃음이었고 두 번째는 침묵이었고 세 번째는 눈물이었습니다
꽃이 피었다고 날씨가 좋다고 그래서 언제 한번 보자는 준비된 문자는 하나도 말하지 못하고 그녀의 침묵과 그녀의 울음소리만 오래 듣다가 전화를 끊고 돌아보니 봄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녹은 이후
/이영주

눈사람이 녹고 있다
눈사람은 내색하지 않는다
죽어가는 부분은
에스키모인은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막대기 하나를 들고 집을 나선다고 한다
마음이 녹아 없어질 때까지
걷는다고 한다
마지막 부분이 사라질 때까지
그들은 막대기를 꽂고 돌아온다고 하는데
그렇게 알 수 없는 곳에 도달해서
투명하게 되어 돌아온다고 하는데
나는 어디로 간 것입니까
왜 돌아오질 않죠
불 꺼진 방 안에서 바닥에 이마를 대고
얼음처럼 기다렸는데
누군가 돌아올까 봐
창문을 열어 두고 갔는데
햇빛 아래
죽어가는 부분이 남아서
흘러가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발밑으로
엉망인 바닥으로
형태가 무너지는 눈사람
이렇게 귀향이 어려울 줄은 몰랐는데
흰 눈으로 사람을 만들고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이런 걸 봄이라고 한다면












 


따뜻한 지금
/동시영

커피를 마시는 게 아니라
따뜻한 지금을 마시네
순간의 눈동자로 휘파람 부는 하루
싹보다 싹싹한 하루 돋아나네
우울한 나를 흉내내던 비 사라졌네
누군가의 얼굴에 나와 소리내던 웃음 사라졌네
누가 누구의 누구라 하는가
누구도 없는 누구들의 한세상
꽃들은 불안해서 더 예쁘게 피네
벚꽃이 오래 나가 살다 온 바람둥이처럼
며칠만 벚나무에 와 피다가
바람 속에 또 바람나 날아가네
벚꽃이 살구나무나 복숭아나무에 가
피지 않는 게 다행이라 생각하네
모르는 사람들은 모르면서 있고
아는 사람들은 알면서 없네
봄날이 허무에다 꽃 피우네
봄날인가 거짓말인가
가을보다 더 많이 지는 봄
사람들
풀들이나 나무들처럼 피어 있네
먼저 온 시간이
나중 온 시간을 따라다니네

 

 

 

 

 

 

 

 

 

 

 

 

 

 

목련꽃 우화

/한석호

 

 

 

내 사랑은 늘 밤하늘 혹은 사막이었다.

멈칫멈칫허공의 쟁반을 돌리는 나뭇가지에

흰 불덩이들 걸려 있다.

염천의 사막을 탈주한 낙타의 식욕인지

고압 호스를 들이대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순정한 저 불의 잔이

나를 유혹하며 숨 막히게 한다.

시인이여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 이런 것이라면

그대가 살았던 곳이 이 같은 지옥이라면

그건 환한 축복이었겠다.

그 지옥 몇 철이라도 견디며

온갖 술들로 지상의 식탁 넘쳐 흐르게 하겠다.

눈 속에서 선녀를 놓쳐버린 시인과

수천의 꽃잎을 날려버린 황제와

제 품에 들어온 대어를 놓쳐버린 태공의 전설그 아래쪽에

'내 사랑은 늘 밤하늘이었고 사막이었네'

라고 쓴다.

가출한 제 영혼과 줄다리기하던

반생(半生)의 시인과 마주 앉아 삭월의 잔 돌려 마시며

섭생(攝生)이 앙상한 내 시론(詩論태워버린다.

 

 


  •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가 있지요.
    그를 생각하면 전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울음소리라도 듣고 싶지요.

    답글
    • 숲지기2018.03.01 20:57

      쓰신 댓글을 읽고 저도 먹먹해졌습니다.
      떠나보내는 게, 누굴 단념하는 게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울음소리라도 듣고 싶다시니....ㅠ

  • shinilc2018.03.01 15:14 신고

    겨울의 끝자락에 봄을 기대하게 합니다..
    겨울요정 몸멜제는 봄부터 긴긴 잠을 자겠네요..ㅎ
    이상 기온으로 유럽에 한파와 폭설이 북극에는 영상기온이...
    참 이상하게 돌아가네요...
    따뜻한 3월의 봄을 기대합니다..

    답글
    • 숲지기2018.03.01 21:02

      이런 겨울은 보다보다 처음 봅니다.
      겨울요정은 얌전히 앉아 있는 게 습관이 되었겠지만,
      저는 촛불시위라도 하고싶습니다.

      유럽의 한파는 북극에서 빌려준 거네요.
      이젠 가져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 사슴시녀2018.03.02 08:32 신고

    오랫만 입니다. 그간 안녕 하셨죠 숲지기님?
    환한 대문 사진이 너무 멋지네요!
    더운나라 베트남과 태국 들리고 올림픽 보느라 강원도 평창도 들려서
    어제 집에 돌아왔어요, 강원도에선 오랫만에 엄청난 추위를 경험 하고 왔답니다!

    작년 이맘때 미국서부 휴가중 전화가 울렸습니다.
    그리고 제 절친남편의 울음소리...
    그 울음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줄 알았죠.
    울수도 없을 만큼 커다란 슬픔이 가슴을 가득 메웠던
    작년 3월의 어느날이 기억 나네요!

    답글
    • 숲지기2018.03.02 13:50

      집뒷마당을 올라가면 대문에 내어 건, 저런 아침 풍경을 볼 수 있지요.
      크게 특별한 것은 없지만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 줍니다.

      행복한 여행을 하셨기를 바랍니다.
      이별은 참 힘이 듭니다 .
      님과 님의 절친님께 행운의 3월이 되기를 바랍니다.

  • 노루2018.03.04 03:26 신고

    사라질 때는
    봄 햇살에 숲 속 빈터
    잔설이 녹듯이면 좋겠어요.
    전부로 땅을 적셔주며 가는
    그 갸륵은 엄두 밖이지만요.

    머리카락에 고드름이라니 춥긴 몹시 추운가 봐요.
    어제 The New Yorker 에서 읽은, 남극 탐험가
    Henry Worsley 에 대해 쓴 글의 한 구절이 생각나서
    옮깁니다:

    It was hard to breathe, and each time he exhaled the
    moisture froze on his face; a chandelier of crystals
    hung from his beard; his eyebrows were encased like
    preserved specimens; his eyelashes cracked when
    he blinked. Get wet and you die, he often reminded
    himself. The temperature was nearly minus forty
    degrees Fahrenheit, and it felt far colder because of
    the wind.

    답글
    • 숲지기2018.03.05 23:59

      눈썹과 수염에 고드름이 달린 풍경은
      어느 영화에서 보았을 법합니다.
      맞아요, 탐험가들이나 산악인들의 이야기였던 것도 같습니다.
      영하 40도, 냉동고보다 훨씬 낮은 온도인데
      그런 혹한을 견디다니요.

      제 머리끝 고드름은 애들 옹알이격이었군요...ㅎ
      노루님, 오늘부터 여기도 영상기온의 봄볕이 환했습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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