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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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부일기/텃밭이야기

토마토 때문에

숲 지기 2018. 7. 10. 00:11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토마토 때문에.

현대판 노예가 연상되는

나와 수십 포기 토마토들 사이 생겨난 철저한 종속관계.

코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임에도 당최 믿기지 않는다. 

 

시녀나 몸종인 나는 상전인 토마토들에게 날마다 물을 갖다 바치고 있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말이다.

이제 막 붉기 시작한 토마토들, 이 엄청난 양을 내가 다 먹을 수도

또 팔아서 이익을 볼 것도 아니고 말이야!

한 번씩 물 주기를 빠뜨린다고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나의 뇌는 이미 토마토에게 일념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었다.

 

휴가도 갈 수 없고(말이야!)

심지어 출장도 미루거나 당일치기로만 간다.

작년까지는 옆집 리햐르트 할아버지가 나 대신 물도 주고 하셨지만,

올핸 그 마저도 어렵다.

할아버지가 '우리 서로 말을 놓고 지내자'고 제안하신 뒤부터 할머님의 눈총이 따갑다. 

나의 한국이름을 외우지 못 하는 할아버지가 나를

'젊은 여인(Junge Frau)'이라고 부르시는 게 화근이지 싶다.

이름 외우기 연습을 시켜 드릴까 하다가,

할머님을 더 생각해 드려서 참기로 한다.

(할머님 험담하려는 게 아니고, 이해한다고 쓰려던 게....)

 

자구책의 하나로 인터넷으로 오래 전부터 자동물주기 시스템을 알아보고 있다.

그러나 나는 고질적인 기계치,

인터넷 어디에도 시스템을 설치해 줄 우렁각시는 살 수 없다.

 

올 여름은 유난히 가물다.

오늘도 예외가 아니어서 하늘엔 구름한 점 없어

나의 토마토들 지금쯤 목이 타서 아우성일 게다

'도대체 우리의 몸종은 언제 오는 거야?' 라며.

 

 

 

 

 

 

 

토마토 하나의 이유

/송기영

 

엄마는 기어코 토마토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 불렀습니다. 못마땅했지만 엄마와 장에 나가

 

기수,선규,흥구,계영,소연,재정,춘의,현구,보경이,영식이를 팔았습니다. 덤으로 만수와 은이를 밀어 넣어주자, 만수가 싱싱하지 않다며 엄마가 아끼는 정이를 집어 들었습니다. 아무리 말해도 막무가내여서,만수에다 천수까지 얹어 주고 삼천 원을 받았습니다.잔돈을 거슬러 주다가, 아주머니 이 사이에 낀 정이를 보고 화가 났습니다. 반 토막 난 정이를 찾으려고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비닐봉지가 터지며 흥구,계영,보경이가 흙바닥을 떼구루루 굴렀습니다. 흥구,계영,보경이를 안고 얼굴을 씻기던 엄마가 마침내 싸움을 말렸습니다. 왜들 싸우구 그래?

 

그깟 토마토 하나 가지구.

 

- 세계의 문학 2009년 봄호

 

 

 

 

 

 

 

 

  • 이쁜준서2018.07.09 22:32 신고

    발갛게 익은 저 토마토를 먹고 싶습니다.
    어쩌면 저렇게 고운 색을 옆에 약간 작은 토마도는 약간 색이 덜 낫지만,
    완숙토마로 보이는데, 저는 저 두 알의 토마토를 다 먹고 싶습니다.

    그 많은 토마토에 매일 물을 주셔야 하실터이고, 자청해서 몸종이 되어 버린
    모양새가 되셨습니다.
    한창 자랄 때도 이제는 열매가 익어가는 때라 때 맞추어서 수확도 해 주어야
    하실테고, 많으니 나눔도 하셔야 하시고 몸종도 그런 몸종이 없으십니다.

    상황을 알아지면서도 참 재미있는 글입니다.

    차 타고라도 가끔이라도 갈 수 있다면 가고 싶어 집니다. 하하
    방울토마토는 우리집 방울 토마토가 독일까지 갔나? 싶은데요.

    답글
    • 숲지기2018.07.10 23:35

      저의 방울토마토가 이쁜준서님으로부터 온 것이군요 하하
      어쩐지 맛이 보통이 아닙니다.
      가게에서 파는 토마토들에게선 절대로 맛 볼 수 없습니다 이런 맛은요.

      몸종도 순전히 저의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니
      한마디 하소연도 못하지요.

      제가 동물들을 키우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가 얽매이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그런데 식물에게도 이렇게 얽매일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다른 분도 아니신 이쁜준서님께서는
      잘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ㅎㅎ

    • 이쁜준서2018.07.11 00:17 신고

      식물을 수확하고, 그 열매로 씨앗까지 준비하시고, 발아 시켜서 모종으로
      만드시고, 그 모종도 나눔을 하시고, 물이 부족해서 하루 새들하게 되면
      식물은 누렇게 떡잎도 지고, 그 받는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한번이라도 그런 일 겪지 않게 해야 하고, 그렇게 햇빛과 바람과,
      쥔장의 정성으로 자라서 열매 맺고, 익고 하면서의 그 맛은
      절대로 맛 볼 수 없는 그런 맛이지요.
      저는 그런 맛을 식물이 사람에게 보답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 맛을 우리의 정성으로 만난 것이라 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것도 준서할미처럼의 나이대의 사람도 아니시고,
      하시는 일들도 있으실텐데, 어떻게 텃밭 농사를 씨앗까지 자가 채취해서
      모종을 내시고, 심고 가꾸시는 맘이실까?
      그것은 살아가시는 맘의 격이다 싶어서 박수를 보냅니다.

    • 숲지기2018.07.11 15:24

      박수를 쳐주시니 기분이 으쓱 올라갑니다.
      저 말고 저의 식물들이 박수를 받아야 마땅하지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저야 몸종일 뿐이니까요 ㅎㅎ

      사실은 식물들이 고맙습니다.
      저를 믿고 세상에 나와 쑥쑥 크고 하니까요.

      이쁜준서님 깻잎김치 맛난 글 보았습니다.
      저도 따라서 만들어보리라 마음 먹습니다.

    • 이쁜준서2018.07.11 21:23 신고

      숲지기님!
      깻잎김치를 두 가지 간으로 해 보시면 합니다.
      한국음식이 짬쪼롬 한것이 맛이 납니다.
      그러니 기본 간은 삼삼하게 하시고 정말로 맛보기 한다 싶게 조금 남겨서
      간을 조금만 더 넣어서 해 보시는 것도 맛 비교가 되실 겁니다.
      저가 이번에 만든 깻잎반찬은 냉동실에 소분해서 넣어 두었다.
      겨울에 따슨 밥하고 먹으면 좋습니다.

    • 숲지기2018.07.12 13:51

      아주 현명한 조언이세요.
      바로 먹을 건 밋밋하게, 오래 둘 것은 좀 짜게........

      대부분은 시간이 없어서 그냥 훑어서 말리곤 합니다.
      올핸 시간을 내어 주신 요리법으로 김치를 만들어 볼까 생각합니다.

      지금 저의 부엌엔 엊그제 가든에서 따온 두 양동이 매실(매실 비슷한 과일)이 설탕에 절여지기를 기다립니다. 씨앗들을 어찌 뺄지, 담을 용기들도 사와야 하고 그렇습니다.
      유난히 많은 양인데, 아직도 과일나무의 5%도 따지 못했습니다.
      몇년 전부터 우메보시 비슷하게 만들어 두고 쓰고 있고요.

  • 장수인생2018.07.10 02:10 신고

    토마토는 몸에도 무척좋은과일 이지요^^
    오늘도 좋은날보내세요

    답글
    • 숲지기2018.07.10 23:36

      네 맞습니다.
      옛날엔 생으로 먹었는데 요즘은 각종 익히는 요리에 넣습니다.
      행복하십시오.

  •  
      •  
  • 안경자2018.07.11 08:19 신고

    송기영님 시 읽다가 빵 터집니다!
    숲지기님도 달라면 빨간 토마토 수월하게 주겠죠?...토마토에 매였거나 간에...
    행복하게 읽었습니다!

    답글
    • 숲지기2018.07.11 15:35

      시를 열어 보면 잼이나 꿀만큼 재미있는 시예요 그쵸?
      좀 드릴까요 저의 토마토들을요?
      이름은 아직 안 지었습니다만 ㅎㅎ

  • 비밀의화원2018.07.11 09:47 신고

    잘익은 빨간 토마토 따 먹고싶은 충동 느끼며 갑니다.

    답글
    • 숲지기2018.07.11 15:36

      오, 정말 맛있습니다.
      깨물면 저 칵테일토마토들은 톡톡 터집니다.
      향도 기가 막히고요.
      비밀의 화원님, 가능하시면 오셔서 따 드세요 ㅎㅎ

  • kyk2018.07.12 15:15 신고

    뉘 집 토마톤지 참 그 먹음직스럽네요.^^

    답글
    • 숲지기2018.07.12 23:57

      그러게요 ㅎㅎ

      혹시 칸치푸람, 마하발리푸람에 가 보셨나요?
      한 곳은 바닷가 유적지였던 것 같은데, 요즘도 사람들이 많겠지요?

    • kyk2018.07.13 00:28 신고

      칸치푸람은 외근으로 가끔 왔다갔다하고 있고요, 한국 식당도 여기에 몇 군데 있지요.
      당연히 마하발리푸람도 가봤죠.갈데 없는 마드라스 사람들 다 모이는 곳입니다. 항상 바글바글해요.ㅎㅎ

    • 숲지기2018.07.13 14:07

      그땐 저를, 처음 본 한국인이라고 아주 잘 대해주었습니다.
      보자마자 집으로 초대하고 그랬는데
      아마 마드라스 사람들 요즘도 마음들은 순수할 거예요 그쵸?

      귀국하면 그리워하실테니,
      즐겁게 행복한 인도생활 하시기를 빕니다.

  • 파란편지2018.07.24 02:42 신고

    숲지기님의 토마토와 저 시인의 시에 나오는 토마토는 다르기도 하겠지만 같기도 하구나 싶었습니다.
    토마토 얘기이긴 하지만 그 할아버지의 부인이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어쩌면 참 어처구니없다 싶기도 하지만 어쩌면 애틋한 여인일 것 같기도 해서 앞으로의 반응이 궁금해집니다.
    그 할아버지로부터 끝까지 귀한 대접을 받고 싶어하는 '토마토'일까요?

    답글
    • 숲지기2018.07.24 22:46

      그렇죠, 저도 그 할머님의 마음이 헤아려 집니다.
      의심의 여지는 없지만,할머님 마음 쓰실까봐 일부러 저는 할아버님께 말 대꾸도 안 해드리곤 합니다.
      할머님께는 온전한 사랑의 사랑의 실체이시지요, 당연히 존중을 해 드려야 하고요 저는.

      오늘도 일부러 두분 같이 계실 때를 골라서 큰 소리로 인사를 했습니다.
      할아버님은 휴가며 날씨 등등 더 얘기를 하고 싶어 하시고 할머님은 쑥 들어가 버리셨지요 하하 .
      그림을 그릴 수 있으실 겁니다.
      아, 이런 게 삶이구나 싶어 속으로 웃었습니다.

    • 숲지기2018.07.24 22:50

      할아버님의 대접 받으시는 토마토,
      아이쿠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교장선생님, 제가 그 분들에 대해 크게 아는 바가 없긴 합니다.
      이웃이니 그냥 얼굴 마주치면 앵무새처럼 인사만 하고 지낼 뿐이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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