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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길거리 도서관, 멜라니와 칼 축마이어 본문
거리 도서관 앞의 순간 반짝 친구들.
요즘 시간이 널널해서 미뤘던 시청 볼일을 보는 중에
아이스크림이나 커피 한잔 들고 짬짬이 동네 구석구석을 쏘다닌다.
오늘은 이런 데서 아이스크림 한 사발 다 먹었다.
쇼핑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않아서 상점거리를 잘 모르고
그런 탓에 옷가게며 별별 물건들이 즐비한 저곳을 평소엔 도무지 들를 기회가 없었다.
한사발 아이스크림을 들고 유유자적 여기저기 기웃대며 걷던 중
지남철처럼 시선을 당기는 그 무엇을 발견했다,
먼저 온 분홍옷의 두 여인들도 시선을 고정시킨 그곳.
좀 있다 보니 이런 분도 오셨다. 차림부터 범상치 않은 분이 ㅎㅎ
누가 말해주지 않으면 찾아내기 힘들, 꼭꼭 숨은 거리 도서관이다.
작은 도서 진열대를 세운 목적과 이용 요령을 시의 이름으로 썼다.
즉, 이 꼬마 도서관은 누구나 원하는 만큼 책을 가져다 놓고 가져갈 수 있지만
시에 속하니 시립도서관이라는 것.
쭈빗쭈빗 서로 비켜서며 책을 고르고 있는데 이 분이 갑자기 나타나셨다
뒷모습을 보이는 이 친구 멜라니*.
반쯤 타고 있는 담배개피가 상대적으로 굵어 보일 만큼 앙상하고 긴- 손가락을 가진 그녀,
"책을 고를 땐 정돈을 흐뜨리지 말며,
자동문을 여닫을 땐......bla~bla~bla~......"
안내문에 써 있는 이용강령을 크게 반목하여 읊어주었다.
이 광경이 어찌나 우스운지, 폭소라도 터뜨리고 싶었지만
나 외엔 다들 너무나 진지하였다.
참을성 없기로 소문이 났던 나였지만 눈물을 무릅쓰고 웃음을 참았다.
잔소리가 끝나자 이번엔 행군을 할 때 구령으로 내지를 법한 목소리로
"나는 멜라니, 너는? "
은발의 여인은 딱 보아도 할머니신데 대놓고 '너'라고 말 걸고 손을 내민다.
"나, 이 책장 책임지고 있어 청소부터 관리까지 물론 자진한 것이지만"
어정쩡하게 서 있던 우리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처음 얼굴을 맞댄 신입생기숙사 분위기처럼
그녀 앞에서 온순해졌다.
할머닌
"나는 루스라고 해, 홀란드에선 흔한 이름이지"
좀 전까지 낯선 은발여인이었는데 단 한마디 소갯말에
그녀의 홀란드 억양까지 친근해졌다.
"나는 알버트, 신의 은총을""
"아 반가워 , 나는 숲지기야 한국에서 온....."
하하 이때부터 판을 벌이고 의기투합했던 우리,
누가 지켜보기라도 했다면 십년지기나 되나보다 했을 것이다.
"나, 여기 책들 안 읽은 게 없어,
먼지 습기 관리도 다 내가 해" 묻지도 , 궁금하지도 않은 말부터 술술술~ ....
티벳의 풍토에서부터 미 대륙의 인디안들 생태까지.....
양서류와 파충류는 어쩌고, 고생대 신생대.......제 3세계, 상대성이론이 저쩌고....."
서서 듣다보니 해도 지고 다리도 저리고,
이쯤되니 그녀가 마치 오래된 도서관처럼 느껴질 지경.
사진엔 없지만 M 연구소 연구원과 아무꺼나 예술학교(ZKM) 사람이 껴들었을 땐 판이 제법 커졌다.
우리는 책 뿐만이 아닌 홀란드 치즈, 아프리카 와인, 난민정치, 우리의 김정은아저씨까지 화제로 모셔와설랑
미주알고주알 갑론을박 있는말없는말을 다 끌어다가 수다를 떨었다.
휴~~
3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갔네 ㅋ
여긴 이 도시의 진짜 시립도서관.
우연히 카메라를 든 모습도 문 앞에...ㅎ
거리 책장에서 나도 책 한 권을 건졌다.
칼 축마이어(Carl Zuckmayer)*의 회고록 "내 인생의 한 부분이었던(Als wär’s ein Stück von mir)" 이다.
칼 츅마미어가 자신의 인생과 도피와 사랑과 인간과 핍박과 영광과 실패를 쓰고 있다.
이책 오백 몇 페이지에
""영원한 권리와 영원한 우정은 기록으로써 인정되고 고정되어야 한다. 이유는 지나간 시간과 사건은 곧 잊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회고록을 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는 글귀가 있다.
즉, 잊혀질까봐 그는 회고록을 썼다고 고백하고 있다.
인생을 조금 살아본 나는 생각한다, 잊히는 게 무에 그리 대수라고.......
(타인으로부터 잊히는 게 무에 그리 대수라고, 자신의 과거도 깡그리 잊혀져 가는 마당에 .).....
불과 1백미터 떨어졌을라나, 다시 아이스크림 골목
*
멜라니
아직 50세도 안 된 그녀는 키 180cm의 거구이지만 옅은 바람에도 금방 날려갈 듯한 갸날픈 모습이다.
젊은 시절 알콜에 중독되었던 경력때문에 코르사코프 증후군(Korsakow Syndrom)을 앓고 있다.
여러 신경증과 함께 중심을 잡는데 어려움이 있고, 걸을 수 없다. 알콜이 독약이라는 것을 여실히 말해주는 사례.
*
칼 축마이어(Carl Zuckmayer, 1896-1977)
나치 시대에 미국에 망명도 했었던 독일의 작가, 극작가.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에드워드 축마이어의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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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작은 도서관. 은비네집에서 메트로 sceaux역으로
답글
가는 길에 아주 작은 책장을 원색적 그래피티로 단장해 둔 곳을
지날 때마다 좋은 아이디어다라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그곳
숲지기님이 소개하시는 길거리 도서관을 베껴온 아이디어가 아닌지요.ㅎ
저는 지금 서울 삼성동 코엑스의 영화관에서 상영시간 기다리며
커피한잔 하고 있답니다. 올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세계 어디에도
빠지지않는 코엑스 내부의 휘황한 샾들, 커피점들, 그리고
휘황한 별마당도서관의 번지르르하고 실속은 없는 그 눈요기...ㅋ
앉아 쉬는 역할로는 나무랄 데 없지요.
이제 상영관으로 입장 합니당~ 아마도 숲지기님의 숲집 텃밭을
떠올리게 될듯. 영화가 <타샤 튜더> 거든요.ㅎ -
다른 책들, 특히 두툼한 책들이 어떤 책들인지
답글
앞에 다가가서 한 권 한 권 보고 싶네요. 독일어로
된 제목을 어떤 건 짐작도 못하겠지만요. ㅎ -
Hahn/Morbac에 체류를 자주 했었는데 그곳에서 저렇게 공중전화
답글
부스안을 도서관으로 한걸 첨 봤어요, 어찌나 귀엽던지요! ^^
제가 잘가던 수퍼마켓 가는일가 였는데 시골이라서 차도 별로 안다니고
독일어도 모르면서 기웃거리곤 했답니다.
전화부스 도서관이 옛친구 본듯 반갑네요! ㅎ -
그곳의 문화가 부럽습니다.
답글
맞습니다. 책, 그림책, 동화책등등이 세월 가면서 버려 집니다.
분명 임자를 만나면 좋은 읽을거리가 될 것도 버리게 됩니다.
그 책을 정리하고 청소등을 하시는 자원봉사 하시는 분도 계시구요.-
숲지기2018.09.18 22:57
이사할 때 제일 무거운 게 책짐이었던 것 같습니다.
무겁고 자리만 차지했던 것들,
앞으론 저 곳에 갖다 둘 생각입니다.
자기 몸 겨우 가누는 저 친구의 길거리 도서관에 대한 사명감이 대단했습니다.본인 앞이어서 굳이 말을 하지 않았지만 알쿨 중독을 이기고,작으나마 사회에 봉사하며 사는 그녀를 우리는 격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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