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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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명절·풍습 /부활절Ostern

신문에서 읽었다

숲 지기 2019. 3. 21. 19:21

 

 

 

 

 

 

신문에서 읽었다

/신춘희


  어느 일간지에서 모 대학교수의 칼럼을 읽었는데
  액체화면의 액체대중이라는 말을 썼다


  액체대중이라?
  참 신선하면서, 끈적한 표현이다


  신인류다 변종이다 손가락 끝으로 숨 쉬는 H2O 계열의 괴물
들이다
  교수는,


  ㅡ이들이, 머지않아 유튜브 시청을 넘어 거대 액체화면의 공연
장에서 호흡을 나누는 오프라인 미팅을 요구할 것인가 아니면 수
만 명이 운집한 거대 공연장에서 기준을 파괴하고 새 출발을 외치
게 될 것인가,


  를 궁금해 했다
  나는 모른다


  ㅡ나는 접속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를 넘어서
  ㅡ나는 업로드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로 진화한 액체대중들
이니


  내가, 무엇을 언급할 것인가


  종이책 읽기를 거부하고, 스마트폰 화면에 얼굴을 처박고 하
루 종일 꼼작거리는 코르크 술통을 닮아가는 영장(靈長) 벌레들


  머지않아 목과 다리는 퇴화하고 팔과 몸통만 남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액체화면의 액체대중으로 남을 것인가 말 것인가


  는,
  전적으로 그들의 문제다
 

-시인동네, 2019년 3월호-

 

 

 

 

 

 

 

'내가, 무엇을 언급할 것인가'

윗시에서 자문하듯,

이미 세상은 뭐라 언급할 만한 게 아니게 되었다.

 

 

 

 

 

 

 

 

볕 좋은 날 가짜 달걀을 걸고 부활절을 기다린다

때가 되면 생겨나는 이런 정서가

'언급'도 할 수 없는 시절을 잠시 정돈케 한다.  

 

적어도 나는 그 효과를 기다리며....

 

 

 

 

 

 

 


햇살이 눈부시다.

덕분에 많은 것들이 부활할 것이다.

 

  • 파란편지2019.03.23 13:12 신고

    시였군요!
    왠지..........
    과연, 시인은 놀랍습니다.
    움베르트 에코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책의 우주"에서 쓴 이야기는 혼을 뺄 정도였는데,
    그 중 한 가지는 디지털의 발전은 눈이 부시어서 정신없이 변화해 가지만 책은 죽지 않는다는 얘기였습니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었습니다.
    - 책은 죽지 않는다
    - 영구적인 저장 매체? 그것만큼 일시적인 것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디지털은 모른 채 살아갈 수가 없으니
    그런 점에서는 참으로 힘든 세상입니다.

    답글
    • 숲지기2019.03.26 15:07

      이런 소재로도 시를 쓰는구나 싶어 옮겨왔습니다.
      시의 구성에 대해 뭐라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불안한 현대의 사회구조에 비하면
      이 정도 쯤은 누구나 관대할 것 같고요.

      '책은 죽지 않는다'는 말씀, 의미심장합니다.
      호머라는 대가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문명도 여러 세기 뒤지고,
      지금과는 양상이 많이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건강한 눈'이 있다는 것은 책 좀 제발 읽으라는 강요일텐데요,
      꼭 읽을 책만 옆구리에 끼고 다니네요.

      '영구적인 저장매체'?
      그건 좀 어렵습니다.
      좀 더 생각을 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 파란편지2019.03.26 15:27 신고

      "영구적인 저장매체"
      어쩌면 '어처구니 없는' 사례입니다.
      가령 디스켓이 나왔을 때 그 디스켓 한 장에 책 몇 권 분량의 정보가 들어간다는 걸 강조했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조금 후에는 그 디스켓 크기가 작아져서 크기가 큰 애초의 디스켓은 쓸 수가 없게 되었고, 지금은 컴퓨터에 디스켓을 넣는 장치조차 없어졌지 않습니까?
      푸코는 그런 예를 누누히 들어 설명하고 종이책은 결코 그런 일이 없다고 했는데,
      저는 그 설명이 아주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 숲지기2019.03.26 15:48

      아, 그런 것이군요.
      이제 이해했습니다.

      친구는 조그만 나무단지에 자신을 담으라 하고,
      가장 빨리 흙으로 스며드는 재질로 선택을 했습니다.
      얼마 전에 떠난 저의 절친 이야깁니다.
      그의 선택이 마음에 들어서, 때가 되면 저도 그의 방법을 모방할 생각이고요.
      '영구저장'과는 대조가 됩니다.

      종이책은 디스켓을 이깁니다.
      침을 바른 손끝으로 책장을 넘기는 일은
      책 읽을 때의 또 다른 기쁨입니다.
      저는 여전히 손필기를 합니다 특히 연필글씨를 좋아하고요.
      나이가 들수록 더 집착을 하니 '병'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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