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6월 초하루 시편지 본문

책상서랍/초하루 시편지

6월 초하루 시편지

숲 지기 2020. 6. 1. 22:19

 

나방이 풍경을 완성한다

/정현종

넓은 창

바깥

먹구름 떼

쏟아지는 비

저녁빛에 젖어

큰바람과 함게 움직인다.

그렇게 싱싱한 바깥

그 풍경 속으로

나방 한 마리가 휙 지나간다

-.

나방이 풍경을 완성한다!

 

 

 

분꽃이 피었다

/장석남

분꽃이 피었다

내가 이 세상을

사랑한 바 없이

사랑을 받듯 전혀

심은 바 없는데 분꽃은 뜰에 나와서

저녁을 밝히고

나에게 이 저녁을 이해시키고,

내가 이 세상에 오기 전의 이 세상을

보여주는 건지,

이 세상에 올 때부터 가지고 왔다고 생각되는

그 悲哀보다도 화사히

분꽃은 피어서 꽃 속을 걸어나오는 이 있다

저물면서 오는 이 있다

 

 

 

 

 

 

농담 한 송이

/허수경

한 사람의 가장 서러운 곳으로 가서

농담 한 송이 따서 가져오고 싶다

그 아린 한 송이처럼 비리다가

끝끝내 서럽고 싶다

나비처럼 날아가다가 사라져도 좋을 만큼

살고 싶다

 

 

........................................

 

 

의식적으로 어지러운 소식을 안 보고 안 들으려 하지만

그럴수록 더 집착을 하는,

참 우스운 꼴을 한 요즘이다.

그래서 시 읽기에도 마음 에너지를 써야 한다.

마음을 차분히 하고 한 행씩 읽는 대신

여기저기 이 책 저책의 겉제목만 뒤적거리기 일쑤이니.

 

어제는 고추와 깻잎모종을 하였다.

이미 빼앗긴 봄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이제 막 문을 연 유월만큼은

깻잎파리 만큼 실속있게 채곡채곡 따 담고 싶다는 마음으로.

 

 

 

  • 파란편지2020.06.01 16:07 신고

    좋은 시를 볼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매번 아이처럼 어느 시가 더 좋은지 나름대로 좀 따져보곤 했는데
    이번엔 다 좋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농담 한 송이'는 생각하다가 만 느낌입니다.
    대놓고 말하자면, 자연을 우습게 보고 홀대하는 인간들 때문에 속이 뒤집어지는데
    이런 시를 그들의 눈앞에 갖다 놓고 흔들어대면 속이 좀 풀리려나 싶기도 하였습니다.
    숲지기님이 좀 그렇게 하신 것 같은데
    과연 몇 명이나 정신을 차리려냐 싶습니다.

    시인이 그걸 바랐던 건 만무하겠지만......

    답글
    • 숲지기2020.06.01 23:45

      '시'나 읽고 있어서야 되겠나 싶다가도
      '시'라도 읽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고요
      '시' 밖엔 달리 읽을 게 더 있나 싶기도합니다.

      허수경씬 끝내 만나지 목 하였습니다.
      아흔이신 현역 소설가분께서 모임을주선하셨는데
      별 시답잖은 제 사정으로 성사가 안 되었고요,
      그후 몇 번 더 기회가 있었던 것 같은데,
      결국 그를 보낸 뒤에야 통탄을 합니다.

      시를 읽는데도 기운이 필요한 시절이 되었습니다. ㅜㅜ


    • 파란편지2020.06.02 15:32 신고

      미친 것 같은 사람을 보면서 '저런 사람은 시를 읽지 않겠지?'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몇몇 대단한 나라의 대표자.........
      그런 인간을 보면 시를 읽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도 좋겠지요.

    • 숲지기2020.06.03 00:35

      누굴 말씀하시는지,
      알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도 연설하는 일이 일상이 된 사람,
      여러 사람 앞에 서서 말할 때마다
      목소리와 문장을 고르지 싶습니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만약 만날 기회가 된다면,
      직접 물어보고, 경우에 따라서 시를 좀 읽으라고 권유하고싶습니다.

  • 파란편지2020.06.01 16:10 신고

    정현종의 시에서 혹 "먹구름 떼"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비밀댓글]

    답글
  • 노루2020.06.01 17:55 신고

    "나비처럼 날아가다가 사라져도 좋을 만큼
    살고 싶다"

    그래, 날아가다 사라지는 저 노랑 나비처럼
    그렇게 살다 가리.

    답글
    • 숲지기2020.06.01 23:58

      집 마당에
      거짓말처럼 나비가 찾아왔습니다.
      고양이민트가 불렀던 것 같아요.

      애벌레였던 것이 날개를 단 날벌레가 되어 찾아오는 일이,
      유년부터 누에를 보고자란 저는 알 만큼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압니다, ㄱㅡ 생각이 얼마나 건방졌었는지를요.

      날아가다가 사라지는 한마디 농담처럼,
      이 저녁도 사라지고있습니다.
      곧 자정입니다 노루님.

  • shinilc2020.06.02 05:15 신고

    6월의 시를 잘 감상하였습니다..
    요즘 세상사 너무 혼란스럽네요..
    보고듣기 싫어도 듣고 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네요..
    이런때 시 한편이 생각을 정화 시켜줍니다.

    답글
    • 숲지기2020.06.02 10:47

      이런 때 읽으라고,
      세상안 무수한 시들이 양산되나보다고 생각합니다.
      시집 구입이 용이하지 않아 인터넷에 떠도는 것만 가져왔음에도
      이렇게 매달 풍요롭게 읽습니다.

      6월이 열렸네요.
      어제보니 햇살이 어찌나 따가운지,
      아프리카를 옮겨왔나 싶더군요.
      자전거 타시기 좋은 날입니다 신일님.

 

'책상서랍 > 초하루 시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8월 초하루 시편지  (0) 2020.08.01
7월 초하루 시편지  (0) 2020.07.01
5월 초하루 시편지  (0) 2020.05.01
4월 초하루 시편지   (0) 2020.04.01
3월 초하루 시편지  (0) 2020.03.01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