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단지 로마가 아닐 뿐, 본문

수평과 수직 /'경계'란 없다

단지 로마가 아닐 뿐,

숲 지기 2020. 7. 9. 18:43

(다음의 글은 어디까지나 가설이다.)

꿈에도 그리던 로마로 가기로 하고,

발걸음도 경쾌하게 로마로 날아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치자.

로맨틱한 고대도시는 어떤 모습이며, 나는 그곳에서 또 무엇을 보고 느끼고 감동할까.

앞으로 펼쳐질 미지의 세계에 꿈 같은 파스텔색 칠을 하느라 머릿속이 온통 바쁘다.

짧지 않은 비행 시간 동안

몇 번이나 로마시가지를 그렸다가 지웠다를 반복한다.

 

이윽고 마음 조리던 착륙을 하였다.

전례없이 은하수가 선명하게 빛난다.

활주로 주변에는 그러나 가로등 하나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뭐,

밤이니까 그렇겠지.

 

바로 이때 예의 기내 방송이 흘러 나왔다.

"친애하는 승객 여러분,

아프리카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250만년 전에 생성되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넓은 이곳에서

여러분은 인생의 신기루를 수 없이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블라블라~~~"

 

내가 잘 못 들었던 걸까?

반사적으로 동승을 했던 옆자리 이웃들의 얼굴을 살폈다.

눈들을 크게 뜨고 얼굴은 하얗게 질린 표정들이라고나 할까,

거울을 보면 나도 그 앞에서 같은 표정을 짓고 있음이 뻔할 것 같다. 

잘못 들은 것도, 악몽을 꾸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현실일 수 밖에 없다.

(가설의 끝은 여기까지이다.)

 

그러니까 기대하던 로마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이 아닌,

아프리카 사막 한가운데에 정착하더라도

어떻게든 생존하고 더 나아가 욕심껏 행복하여야 한다.

바야흐로 코로나시대가 열린 지금도.

 

 

 

아이가 그린 사하라 사막

 

..............

 

참 오래 걸렸다 상황을 인정할 때까지.

그러나 내가 발 디딘 곳은 로마가 아닌 아프리카 사막 한가운데,

사막이 로마보다 못하다는 것은 생각일 뿐이다.

이곳은 단지 로마가 아닐 뿐이다.

이 곳에도 사막여우(생 택쥐베리에 의하면)가 살고

아름다운 장미를 키우기도 하며

사막의 밤엔 지구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수려한 별들이 찾아든다.

이 정도의 자존이면 족하다(고 하자).

 

  • 추풍령2020.07.09 18:24 신고

    갑자기 로마여행을 떠나신 숲지기님, 이게 무슨일 입니까?
    로마 공항이 아니고 사하라 사막이라고요? 코로나 감염시대라서 별아별 일이 다 벌어지네요.
    나는 젊은 시절 아프리카에 진출한 한국계 회사의 관리직으로 근무할때에 아프리카 케야에서
    런던을 향하면서 비행기 환승을 하느라고 로마의 레오날드 다빈치 공항에 내려 로마 외곽과
    공항내부만 구경한 일이 있었읍니다. 이태리에는 고층 빌딩 안 보이던 기억이 납니다. .

    답글
    • 숲지기2020.07.09 20:19

      추풍령님께서도 비행기를 참 많이 타셨을 것 같습니다.
      타국을 오가며 적응할 것도 많으셨을 텐데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위의 글은요,
      그냥 코로나로 인한 충격적인 일대의 변화를
      마치 아프리카 사막 한가운데 불시착한 듯
      써 봤습니다.
      저는 아직 독일 흑림에 있으며,
      일터만 조만간 바꿉니다.
      코로나로 인한 것이지요.
      이 또한 기회(다른 삶을 살게 될)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염려 드려서 죄송합니다.

  • 파란편지2020.07.10 01:06 신고

    멋진 상상입니다.
    꿈에서는 죽지도 않고 영원히 살아갈 수도 있고
    어떠한 역경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며 당장 꿈을 떠올렸습니다.
    '이건 내 꿈이야.'
    흔히 그런 꿈을 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멋진 곳 아프리카에 가신 것을 축하합니다!!!^^
    어차피 모든 건 여행이니까요.

    답글
    • 숲지기2020.07.10 15:19

      깊은 숲에서 너른 사막을 상상하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온라인으로 사람을 만나고서도
      직접 살갗을 대하는 그 이상의 느낌도 가질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꿈에는 죽지도 않고 영원히 살아갈 수도 있고...."
      꿈이라 생각하니 아니 될 것이 거의 없습니다.

  • 이쁜준서2020.07.10 21:23 신고

    그렇지요.
    로마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생각했는데, 아프리카에 착륙하고 내리나 하니
    엄청 힘들겠지만 또 적응하고 살아야 겠지요.
    저는 무척 조심을 해서 아직 식당밥을 사 먹지 않습니다.

    햇빛이 있고, 강물은 흘러가고 상수원이 되어서 수도물도 콸콸 나오고,
    저 같은 사람은 수도물로 정원을 가꿀 수도 있고,
    하늘은 코로나 사태 이전과 같이 달이 뜨고 별이 뜹니다.

    요즈음은 무씨나 열무씨로 무순을 만들어 먹습니다.
    얼마나 싱싱한지요. 얼마나 다행인지요.
    저보다 더 넓은 정원을 가꾸시는 블로그 벗님들에게 삽목을 하거나
    뿌리 나누기를 해서 식물을 보내 드리는 곳도 있고, 친구들이 가져 가기도 합니다.
    지금도 봄에 삽목한 것들이 삽목판에서 가을까지 자잘 것입니다.
    삽목이 되지 않는 것을 그나마 한개라도 삽목 성공하면 이웃 친구를 주고,
    2개가 성공하면 대구의 꽃을 많이 키우는 친구를 주고 3개가 성공하면, 4개가 성공하면....
    그 삽목할려고 상토를 일부러 사서 하고 있습니다.

    옛 어르신들께서는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다 하셨습니다.
    아프리카에서도 잘 살아 내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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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글
    • 숲지기2020.07.11 13:15

      이전과는 다른 세상이 열렸습니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지금이 조건으로 살아야 합니다.
      '아프리카 사막' 에 착륙했다고 은유했습니다.

      그 어려운 삽목을 하셔서
      나눔도 하시는군요.
      귀하게 얻은 것이어서,받는 분들도 매우 고마워 하실 것 같아요.
      지금 가지신 조건에 만족하시고
      그 속에서 최대한의 기쁨을 누리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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