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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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과 수직 /'경계'란 없다

화살표를 위하여

숲 지기 2020. 9. 10. 20:28

 

 

화살표를 위하여 · 1
ㅡ만남

/함민복

 

어느 날
일터를 향해 달리다 멈춘 차에서
여기까지 오며 몇 개의 화살표를 만났을까
몇 번 화살표의 지시를 따랐을까
한두 번만 지시를 어겼어도
여기에 다다르지 못했을
어쩌면 치명적인 결과에 놓였을지도 모를


이 세계는 화살표의 숲
화살표가 가리키고 있지 않는 곳은 없네
화살표가 또 다른 화살표로 배턴을 넘기고 있는
이 세계는 방향의 숲

시간마저 돈으로 환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화살표는, 시간의 낭비를 단출할 수 있는
시간을 사냥할 수 있는 화살
속도를 섬기는 신앙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다른 모든 것들을 움직이는 으뜸가는 것을 신이라 했던가*
그렇다면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움직이는 것들을 돕고 있는
화살표의 정체는 무엇일까
혹 우리 시대에 여러 모습으로 현현한 '가라' 메시아는 아닐까


문명에서
갑자기 모든 화살표가 사라진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초침 분침 시침이 모두 화살표로 되어 있던
꼬리가 원점에 잡혀 회전하며
방향을 시간으로 전환해 주던
촌각이 방향 속에 있음 일러주던
옛 괘종시계에서
뎅 뎅 뎅
화살표의 울음소리가
시간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조수석에 눈을 감고
차는 화살표 방향으로 다시 출발한다
화살표의 뾰족한 배웅에 찔려
등이 뻐근해지고
화살표의 영혼인 방향과
동행 길에 오른다

 

*아리스토텔레스, 김진성 역, 『형이상학』, 이제이북스

 


ㅡ불교문예 2020. 가을호

 

 

.................................

 

유럽면허를 따고 운전을 몇십년 했는지 되짚어 보았다.

나는 화살표에 반응하는 칩이 뇌리에 박힌 듯,

단 한번도 거부한 기억이 없이 그를 따랐다.

이 정도면 그 어떤 종교보다 맹신해온 터.

 

시는 묻고 있다,

'문명에서 모든 화살표가 사라진다면?'

무엇인가를 써서 알리고 저장하기 시작한 호머이래 

머리에 각인된 신화며 문학, 철학,

이로써 파생된 이루 말 할 수 없는 분야의 문명들에 화살표가 없었다면? 

오늘 2020년,

화투판을 다시 섞어 또 다른 기원을 세운다면?

 

 

  • 노루2020.09.10 18:20 신고

    ㅎ ㅎ 질서의 신 화살표?
    - 미혹의 화살표: 부자되세요 => 00 교회 (또는 00사, 00 철학관).
    - 어디서고 언제고 그대가 생각나는, 순정 화살표, 해바라기표.
    - '나'에게로만 향하는 트럼프표 화살표.
    - 구원의 화살표: => 화장실 (또는, 00 Lake/Mtn Trailhead)

    하긴, 화살표가, 앤트로피(무질서) 증가 법칙에 저항하는, '생명'의
    표이기도 하네요.

    답글
    • 숲지기2020.09.10 23:11

      써주신 화살표의 기발한 실례를 보고
      웃음이 나왔습니다.
      교회와 철학관을 같은 줄에 쓰셨습니다요 ㅎㅎ
      트럼프의 화살표, 역시 세계를 웃기는 사람답습니다 하하

  • 파란편지2020.09.11 01:38 신고

    초등학교 국어책에 이런 우화가 있었습니다. 요약합니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길을 내려다보고 못마땅해 한 임금님은 길마다 방향을 정해서 백성들이 그 방향으로만 다니게 했습니다.
    이어 바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앞지르는 모습을 본 임금님은 일제히 줄을 지어 다니게 했고,
    백성들이 질서정연하게 걷는 모습에 흡족했습니다.
    마침내 옆길로 새는 사람, 옆길로 들어와 말썽을 피우는 사람이 발견되자
    이번에는 갈림길을 불허하는 표지판을 세웠는데
    어느 날 거센 비바람에 바닷가의 화살표 표지판 하나가 날아가버리자
    백성들의 긴 행렬은 바다로 들어가 사라져버렸다는 것입니다.

    답글
    • 숲지기2020.09.12 13:18

      무릎을 탁 치며 읽었습니다.
      오늘 날 바이러스 판데믹에서도 써주신 우화와 같은 일화가 세계 각처에서 빈번하게 일어났고 또 일어날 겁니다.
      다수라는 방패막 화살표가 가로막고 있기에
      지금 이 시각에도 간과하고 있는 귀한 진실이 분명히 있을 것이고요.

  • 열무김치2020.09.19 16:48 신고

    이미 팬데믹으로 화살표 방향이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마스크만 해도 그렇습니다.
    꼭 쓰고 다녀야 한다.
    전에는 마스크가 세균의 온상이라고 탐탁지 않게 보았는데요.

    바닷가 방향으로 난 화살표 표지판이 바람에 날아가자 바닷가로 사라진 백성들
    코로나 끝나도 마스크공장은 당분간 망하지 않을겁니다.

    답글
    • 숲지기2020.09.27 14:37

      짧은 휴식시간을 제외하곤 8시간 근무 시에 저는 마스크를 쓰고있습니다.
      어떤 땐 숨이 콱콱 막히고
      또 어떤 땐 극도로 우울해 집니다.
      저는 그래도 나이가 많은 어른이지만,
      이제 막 자라며 친구도 사겨야 하는 어린 세대는 이 시대 맞은 불운을 어찌 견뎌갈까요.
      아찔합니다 ㅠㅠ

  • Chris2021.11.21 03:52 신고

    영화속 장면입니다.
    독일군 오토바이에 쫒겨 달아나던 연합군 포로가,
    발견한 흰색 페인트로 차선을 절벽 쪽으로 바꿔버립니다.
    추격하던 오토바이는 차선만 보고 따라 가다가 절벽으로 떨어집니다.
    약속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믿음과 신뢰가 전제 되어야 합니다.
    화살표도 일종의 약속이겠죠. 이 방향으로 가면 좋다, 맞다, 옳다, 안전하다...
    현실 세계에서는 가짜 화살표도 많고 용도폐기된 화살표도 많습니다.
    어떻게 해야 제대로된 화살표와 그렇지 않은 화살표를 구분할 수 있을지...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답글
    • 숲지기2021.11.23 14:54

      써주신 댓글을 여러 날 생각해 보았습니다.
      공공의 약속인 화살표를
      그렇게 돌려서 .....
      현실세계에서는 가짜화살표나 용도폐기된 것도 많다 하시는 말씀,
      수긍이 갑니다.

      오늘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보를 읽었습니다.
      한때 동사무소나 공공 기관의 벽 중앙에 위치했던 권위의 국가통치권자였는데,
      범법자로서 생전에 그 죄를 처리하지 못하고 간 격이네요.
      그의 통치아래선 맞다고 여겼지만,
      지나고 보니 거짓 화살표였겠지요.



      [비밀댓글]

    • Chris2021.11.23 15:38 신고

      이 세상에 없은 자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을 것이고, 무엇이 잘못 돌아간 것인지 역사에 남기고 반성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도 비밀댓글로 바꿉니다.
      사실 제가 소대장 할때 당시 전두환 소장 전역식 했고, 광주 사태 때 저는 소위 계급장 달고 광주에 있엇습니다. 물론 계엄군은 아니었고, 그냥 그곳에 있었습니다. ㅎ [비밀댓글]

    • 숲지기2021.11.23 19:06

      저는 우리나라 정치얘긴 안 씁니다.
      그러려고 합니다.
      이유는 크리스님 말씀처럼 화살표의 정의와 적용이 그때그때 다르니 말입니다.
      제가 이 글을 비밀글로 할께요.
      [비밀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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