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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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명절·풍습 /부활절Ostern

2021 부활절 초대손님

숲 지기 2021. 4. 5. 23:10

 

 

 

못 믿을 4월 날씨에 눈발이 성성한 월요 부활명절.

독일에 온 초창기땐 갓 나온 마당 잔디에 색색의 계란을 숨겨두고 

이집 저집 친구들과 기웃기웃거리며 찾다니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명절때 송편을 나눠먹는 것과 흡사하달까.

 

현실은 그러나 계란과 숨바꼭질을 하기는 커녕 

진눈개비까지 대지를 점령해버린 상태.

부활절에나 보자고 했던 지인 몇에게 전화해서 잠시 아침이나 먹고 가라 했더니 

딱 한 친구가 왔다.

죽마고우였던 우린 한동안 소식도 모르다가 작년에 우연히 길에서 조우하였다.

부모님이 그 사이 다 돌아가셨다더라.

그말을 듣자 마자 바로 가족묘지로 성묘를 가서 큰 절 올리고 (이건 순전히 유교적 교육 탓임)

지나는 말로 부활절 쯤에나 한번 보자 했었다.

그때만 하여도 이때쯤이면 록다운이 풀릴 줄 알았었다.

 

 

 

 

사진의 토끼빵과 호밀빵을 새벽에 구웠다. 여기에 치즈와 연어 , 그리고 뭐가 어 있었더라? 

아, 곰파생치즈크림, 잼 꿀 등등이 상에 올랐었다. 

 

 

친구 어머님 생애의 마지막은 치매로 채우셨단다.

아버님이 한해 먼저 돌아가셨는데 그 사실을 잊고

늦은 밤이나 새벽에 '네 아버지가 아직 안 들어 왔다'며 친구에게 전화를 하셨다고.

그러던 어느 날 아버님 장례 초댓장을 발견하셨단다.

어머님은 너무나 놀라서 전화를 하셨는데 

남편 이름을 또박또박 읽으며,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친구가 아버님 벌써 돌아가셨다 하니

나한테 일러주지도 않고 사망해 버렸냐고, 말이나 되는 일이냐고.

문제는 이 같이 깜짝 놀라는 일을 시도 때도 없이 반복하셨다 한다. 

이 외에도 몇몇 일화를 들으며 나는 눈물이 날 정도로 웃었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다시금 웃겨 죽을 지경이다.

 

친구는 어머님 가신 것이 여전히 힘들다고 짧게 말했다.

들은 척 만척한 나는

'어 그래?' 하고 말았다.

어깨라도 툭 치며, 뭐라 근사한 말을 해주었어야 하는데,

이런 게 참 안 된다 나는. 

 

 

 

 

  • 파란편지2021.04.06 01:27 신고

    죽마고우를 길에서 만날 수 있다니, 그런 행운이 잘 있겠습니까?
    이렇게 들어앉아 있으면서 '나에게도...' 생각합니다.
    "부활절에나..."
    사람 마음은 거의 같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 약속을 몇 번이나 하며 지냈는지, 헤아리기가 어렵고 민망합니다.
    두 분이서 잘 지내시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답글
    • 숲지기2021.04.06 13:56

      우리나라 추석이나 설명절 비슷하여서
      부활절 쯤에 한번 보자 했던 것입니다.

      얘길 듣고 보니,
      우린 그 사이 참 다르게 살아왔었습니다.
      잘 지내면 좋겠다 하신 말씀, 감사합니다. 이러다가 성탄 쯤에 한번 볼까? 그럴 것 같습니다.
      단순하게 그런 의미 만으로도 세상에 명절이 있는 게 낫다 싶습니다.


    • 파란편지2021.04.06 14:02 신고

      "성탄쯤에 한번 볼까?"
      우리 식으로 덧붙이면 "밥이나 한번 먹을까?"
      그런 인사도 지금 생각하니까 썩 좋은 약속이구나 싶습니다.
      이젠 어디 밥이나 맘놓고 먹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한 희미한 약속이 의무처럼 변해서 성탄절 앞둔 어느 날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된다면
      그런 만남도 참 좋은 것일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 숲지기2021.04.07 15:19

      언제 만나서 차나 한번 마시자,
      뭐 그런 류의 겉치레 인사입니다.
      그러나
      언행일치를 가급적이면 하고 사는 이곳의 표나는 외국인인 저는
      이런 지나가는 말도 거의 지키고 삽니다.
      이제 교제 범주도 좁지만
      약속이나 또는 ,
      거창하게 하는 말을 삼가 하게 됩니다.

    • 파란편지2021.04.08 01:19 신고

      마치 제 얘기 하는 것 같네요.
      지난해만 해도 곧 한 번 만나자, 밥이나 먹자, 차 한 잔 하자는 전화가 많았거든요.
      여기선 다 그렇지만...
      그런 얘기조차 자꾸 하기가 그러니까 올해는 뜸하고요.
      이제 이게 이 사람과의 마지막 만남이고 헤어짐이기가 쉽다고 생각하며 살자고 생각해왔는데 그게 사실이 되어가고 있네요. 나 참...

    • 숲지기2021.04.08 22:48

      교장선생님께서는 절대로 소외되실 수가 없으실 겁니다. 제자분들만 하여도 도대체 얼마나 많으시겠습니까요.

      유즘 유행하는 미니멀리스트처럼요,
      저는 그때그때 인연들을 정리합니다.
      그 결과가 지금 '외딴 숲집에 나홀로...'가 되었겠지만요.

  • 이쁜준서2021.04.06 23:30 신고

    숲지기님!
    길에서 죽마고우를 만나시고, 부활절에 한번 보자 했던 것이
    아직도 코로나로 조심 해야 하는 중에 집으로 초대 되신 두분만의 시간이셨네요.
    우리가 제일로 두려워 하는 것은 누구나가 노후에 치매환자가 되는 것인데,
    그 친구분 많이 힘드셨을 겁니다.
    그런데 가신 분의 일화도 웃을 수도 있구나 싶습니다.

    남의 나라에서 사시면서 한국어로 블로그를 하시는 숲지기님은 대단하신 겁니다.
    블로그가 있어서 얼굴은 몰라도 맘의 자락은 통해서 교류가 있는 것도,
    아주 좋은 일이다 싶습니다.
    늘 건강하고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답글
    • 숲지기2021.04.07 15:26

      제가 죽마고우라고 표현한 것은,
      이곳 독일에 정착한 초창기에 만난 친구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오래 전에 본 진짜 죽마고우는
      저희 고향 마을에만 있고요.
      다행히 이곳 친구들이 별로 뭘 따지지 않습니다.
      이들의 부모님들과도 돈독하게 지내 왔습니다
      동양에서 와서 뭔가 해보려는 조그만한 여자를
      어르신들의 마음으로 돌봐 주셨고요.

      친구가 가신 어머님의 치매 얘기를 어쩌면 그렇게 열심히 했는지,
      제가 웃고 즐거워하니 본인은 슬픈 기억인데도
      열어 일화를 들려 주었지 싶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그 또한 마음 짠한 일입니다.

  • 호박꽃의 미소2021.04.07 17:07 신고

    해외에서 사는 교민들은
    동포란 생각에 많이 친밀감을 느끼면서
    가까이 지내면서 서로 챙겨주며 정을 나누고 사시는 모습이
    정말 당연한 것임에도
    서로의 일상에 바뻐서 연락도 못하고 지낼때는
    많이 생각도 나고 또 그립기도 하실텐데
    이렇게 우연히 만나서 오랜만에 추억을 공유하면서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으니
    슬픈 이야기도 정답게 들려오는 것인가 봐요.

    부활의 기쁨과 함께 하시는 성찬처럼
    간단한 약식이어도 왠지
    색깔에서 오는 멋진 조화로 참 풍성하게 보입니다.
    아름답게 차려서 식사하는 모습에
    저희도 그렇게 해 보려 노력해 봐야 겠습니다.

    답글
    • 숲지기2021.04.08 22:51

      동포들이 많이 사는 도시엔 그들끼리 가깝게 교제를 하시겠지요.
      여기 제가 사는 곳엔
      우리나라 사람이 없습니다.
      이렇게 꽤 오래 살다보니
      또 살게 됩니다.
      적응을 한 게 아니고요,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요.

      호박꽃님 댁에 갔더니
      예쁜 꽃과 계란으로 부활절 장식을 하셨더군요.
      느낌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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