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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발 닿았던 곳

제주, 초번화가에서 길 잃기

숲 지기 2024. 3. 22. 20:39

 

저녁을 먹고 절친에게 전화를 했다.

지난 수년 간 마음을 나눈게 온라인이어서 목소리로 대화하는 게 생경했던 터,

번호를 누르고 첫 목소리를 들었던 지점이 저 거리였지 싶다.

심히 비 내리고 폭풍이 불어닥쳐서  반대편 목소리를 도무지 들을 수 없는 지경,

어디든 바람을 피해 찾아들어야 했다.

 

 

 

 

윗사진 큰도로 어디쯤 바람을 막아줄 듯한 좌측거리로 들었다.

 

 

 

 

 

무수히 많은 간판 중 연동 야시장이 보인다.

바람이 좀 멎으니 얕은 오르막 거리에 행인들이 오가고.

우산 속 전화통화를 하며 거닐고 또 거닐었지 싶다.

 

 

 

 

 

 '누웨모루 거리',

유흥 전광불빛이 바닥에 반사된 거리는 

소나기가 한차례 지난 후의 풍경. 

 

 

 

 

 

제주 해녀 상징 조각이 앞장선 곳 곳곳에 

누웨마루라는 팻말이 붙었다.

근처에서 저녁 먹고, 전화통화할 바람이 느린 곳을 찾다가 우연히 왔을 뿐,

전혀 사전 지식이 없었던 번화가.

(음식점 유흥팻말이 사방에 붙었으니 번화가가 맞겠지)

 

 

 

아, 그리곤 길을 잃었다.

고국 번화가에서 절친과 우리말 전화통화로 길을 잃다니! 

그게 마음에 들어서 여기저기 골목 끝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기를 두어 번 더 했다.

그랬더니 정말 어딘지 알 수가 없어서 핸드폰을 켜고 위치를 확인하니 

내가 한라산 쪽 방향으로 쭈욱 걷고 있었다는 거 아니겠음!

번화가와는 거의 반대쪽으로 말이다.

 

그때서야 발바닥이 쑤시고 우산을 든 팔목도 노인의 것이 되었고

거리에는 몇 개 가로등이, 분무하듯 뿌려지는 비를 내려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후회를 하고 있다.

그날 좀 더 쏘다닐 걸... 그 밤이 새도록 쏘다니고

그 밤이 새도록 전화를 끊지 말걸)

 

 

 

 

이날의 일기는 

한라산 쪽 시꺼먼 길을 걷다가 용케 큰길로 나와 택시를 잡은 것으로 끝난다.

위의 저 거리는 친구와의 통화 후 다시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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