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너의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쌩 떽취베리 본문

수평과 수직 /이 순간

너의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쌩 떽취베리

숲 지기 2017. 10. 21. 02:32

 

 

 

'순간'이라는 말이 참 근사하다.

너무나 근사하여 자주 되뇌이려 하지만 또 자주 까먹는다.

운이 좋은 날 노을을 볼 때 뿐인 듯 하다

아침 저녁으로.

 

순간이라는 단어에는 진통성분이 있다.

입술을 열고 나직이 '순간'이라고 말 하면,

걸상 한 뼘 정도 금세 떨어져 간 느낌이다 ,

아주 잠시라도 일상으로부터 숙제로부터  .

 

고개를 젖히고 창밖을 보면, 구름이 장미모양으로 떠오른다.

잊었던 내 장미, 내가 길 들였던 나의 장미들

그들은 잘 있을까.

 

 

 

 

베를린 중앙역, 한 소년이 반려견과 함께 앉아있다. 벤치가 있었지만 둘은 바닥에 앉기를 마다하지 않았고. 물그릇의 물을 핥으며 개가 목을 축였다. 핸드폰만 직시하는 소년을 바라보는 반려견의 눈빛은 마치 연인의 그것인양 애잔하다.

 

 

 

 

"사람들이 이 진리를 잊었어, 그러나 넌 잊으면 안돼" 여우가 말했다.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책임이 있어, 너는 너의 장미를 책임져야만 해."

-생떽취베리 <어린 왕자> 중-

"Die Menschen haben diese Wahrheit vergessen", sagte der Fuchs. "Aber du darfst sie nicht vergessen."Du bist zeitlebens für das verantwortlich, was du dir vertraut gemacht hast. Du bist für deine Rose verantwortlich ..."

 

 

 

 

 

 

 

6학년이라고 하였다. 베를린 박물관섬 입구 계단

양볼엔 아직 젖살이 남은 어린 소녀들,

가을방학 중에 큰 나들이를 하는 셈이다.

시골에서 자랐던 어느 날, 선생님을 따라 큰 도시로 글짓기 대회에 나간 적이 있다.

대회를 마치고 짜장면을 사주셨다, 두고두고 잊지 못할 짜장면.

 

나를 보고 해맑게 웃는 이 아이들에게 적어도 나쁜 어른은 되지 않을 거야.

"예쁘게 찍어줘요."

사진 찍어도 되니? 라고 물었을 때 일제히 답을 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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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엔 고향을 그리워 하는 향수병(Heimweh)이 있는데, 독일어엔 향수병 말고도 그 반대인 먼곳병(Fernweh)이 있다. 주로 여행이 떠나고 싶어 근질근질 할 때 걸리는 병이다.

여행은 이 먼곳병을 다시 향수병으로 바꿔주는 마력이 있다. .

 

  • 니2017.10.20 23:45 신고

    '숲'이라고 발음해도 한순간이나마 입안에서 바람이 일더군요.
    늘 새롭게 태어나 명멸하는 시간처럼.

    향수병과 먼곳병은 계속 뒤척이는 뫼비우스 띠 같네요.
    먼곳병.
    불치병치고는 이름이 참 예쁩니다.
    [비밀댓글]

    답글
    • 숲지기2017.10.21 01:45

      먼곳병은 제가 지은 말이예요,
      뜻이 그렇긴 한데, 우리말엔 아직 없는 말 같습니다.
      자주 도지긴 해도 불치병은 ? 글쎄요 ㅎㅎㅎ

      어딜가도 숲사람 티가 줄줄 나는 저는 사물을 숲의 방식으로 보게 됩니다.
      농사하는 분들이 정치나 사회를 농삿일로 풀이하듯이 말이지요. [비밀댓글]

    • 니2017.10.21 03:08 신고

      직접 지으신 말이라 짐작했고 그래서 더 예뻐보였어요.^^

      떠나고 싶다는 아주 단순한 이유만으로 몇 번 여행을 떠났었는데,
      그런데도 떠나온 곳이 그리워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처음엔 그게 불치병이라 생각했는데,
      차츰 뻣뻣한 직선보다는 뫼비우스 띠처럼 떠남과 돌아옴이 호응하는 구조도 나쁘지않다 싶었습니다.

      숲사람, 숲지기, 숲의 방식.
      숲이 자연스럽듯 세상에 자연스럽게 적응하고 감응하고자 애쓰는 이의 지혜로움이연상됩니다.

      [비밀댓글]

    • 숲지기2017.10.21 12:45

      '숲'이라는 말을 참 자주 쓰는데, 숲을 많이 알지는 못합니다.
      하루 중 밤에 숲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요.
      눈이 쌓인 날이 아니면 숲짐승들이 제 마당을 다녀가도 눈치를 못채고요.
      나이롱숲쟁입니다 저는 ㅎ

      어딜 갈땐 운전을 해서만 다녔는데, 지난 8월에 프랑크푸르트 시내에서 접촉사고를 냈어요. 그 후부터 큰 도시에 갈 일이 있으면, 덜컹 겁부터 납니다.
      가진 짐을 모두 들고 다녀야 하는 거추장스러운 것부터 불편한 게 있지만,
      대중교통 이용엔 분명 큰 장점들이 많아요.

      저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가야만 하는 곳에만 가능한 한 짧게 다녀옵니다 ㅎㅎ 집순이예요.
      뫼비우스의 띠 ㅎ과는 여행지에 도착하자마자 일어나지요 대부분..ㅎ [비밀댓글]

  • eunbee2017.10.24 12:56 신고

    '먼곳병'
    제게도 그 병이 있었어요. 중학교 시절 쯤으로 기억되는 어린 날.ㅋ
    노래를 불러도 멀리 떠나 고향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랠 불렀지요.
    그러다가 점점 나이들면서는 세상을 궁금해 하였지요.
    가고 싶고 동경되는 곳을 주제로 한 노랠 웅얼거리며 그리워하다가
    결국은 노랫속의 그곳으로 가 보았더랍니다.ㅎ

    반더루스트,
    노마드,
    그러한 기질이 다분하다는 생각을 하였지요.ㅋ

    여행지에서 만나는 그곳 청소년들은
    어찌나 싱그럽고 유쾌하던지요.
    돌아온 후에도 오래오래 마음 속을 맴돌아요.
    기분 좋은 만남..^^

    답글
    • 숲지기2017.10.24 15:48

      은비님께서는 여행을 알차게 하신 듯 합니다.
      소중한 순간들을 기억하시고 되뇌이시니 말입니다.

      먼곳병은 제가 그냥 직역을 한 말이고,
      우리나라엔 없지 싶습니다 이런 뜻의 병이 말이지요.
      물론 여기도 병리학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대중적으로 쓰이는 말입니다. '병' 증상이라고 할 만큼 몸이 근질거리고 어디 먼 곳으로 여행을 가고 싶을 때 말이지요.

      저는 여행이 힘듭니다.
      육체도 만만치 않지만 정신은 마치 중노동을 한 이후처럼 날마다 파김치가 되더군요. 여행을 직업이나 취미로 하시는 분들, 우러러 뵙니다요 ㅎ

    • 숲지기2017.10.24 15:51

      아, 근데 엊그제부터 이스탄불을 가자고 꼬시는 절친이 있습니다.
      "으응~... 그래?" 이 정도로 응수를 하는데,
      내년 언젠가쯤 아니면 올 겨울 그곳을 갈지도 모르겠습니다.

    • eunbee2017.10.24 16:51 신고

      이스탄불
      강추합니다. 강력추천.

      두 딸과 파리에서 출발하는 이스탄불을 만났구요.
      친구와 터키 일주 여행이라는 몇몇 지방을 도는 여행 때
      이스탄불을 또 만나게 되었지요.

      지금은
      어찌 변했으려나...

      꼬시는 절친 있을 때
      봇짐 둘러메고 떠나세요. ㅎ

    • 숲지기2017.10.25 19:11

      현명하신 조언, 감사히 받습니다.

      저는 이슬람 문화에 대해 참 모릅니다.
      이 시대를 살면서 알아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되어서요.
      요즘 독일엔 북아프리카와 아랍권의 사람들이 엄청나게 들어옵니다.
      그들을 색안경 쓰고 보지 않기 위한 방편으로
      이슬람 문화부터 알아야 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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