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집이라고 돌아와보니(우중흑림) 본문

흑림살이 /수처작주隨處..

집이라고 돌아와보니(우중흑림)

숲 지기 2019. 5. 19. 20:25

 

 

 

독일 흑림의 귀갓길.  

비가 내리고, 누군가 솜뭉치를 부려 놓은 듯

계곡마다 안개가 들어찼다.

 

 

 

 

 

산길 운전 중에 반대편 차가 지나는데, 차창 빗방울이 반사된 탓에

참 요상한 사진이 되어버렸네. 

암튼 이 길을 달려서 마당에 내려보니

'집이라고 돌아 와 보니 사랑방이 소요터라'*

딱 이 구절이 뇌리에 떠오른다.

 

이 문장은 유명한 진주난봉가의 한 구절이다.

큰학교때 막걸리집 탁자에 빙 둘러 앉아 듣던 그 노래,

건장하나 깊은 저변에 우수를 깔았던 그 목소리가 좋아서 레코드를 돌려 듣듯 들었었다.

'심금을 울린'다는 표현에 맞는 목소리를 가진 친구 

잘 사시는가?

두어 번 술자리에서만 만나선지 그 친구의 이미지는

막걸리집과 진주난봉가와 비빔밥처럼 섞여 있어. 

 

 

 

 

 

 

집이라고 돌아와 보니 앞마당이 이토록 소요하다,

우중임에도 집 마당엔 이렇게 꽃들이 잔치를 벌이고 있으니....

 

 

 

 

 

 

 

사과나무는, 글쎄 한 10살쯤 되었을라나?

어느 가을에 내 침실 모서리에 세워 겨울을 나게 하고 이듬해 봄엔 화분에 든 채로 밖에 심었으며

서너해 지난 뒤 지금의 터로 자리했다.

그게 재작년, 그러니까 작년까진 여러 곳 떠돈 몸으로 적응에 애를 먹더니

올핸 보란듯이 꽃을 보여주네.

이곳이 내 집이다 싶은 모양,

감사할 따름이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사이사이 새로 심은 과실수들이 보이는데

 

 

 

 

 

지금까진 글쎄, 이 한 그루 배나무만 제대로 살아난 듯 하다.

그렇다고 다른 나무들을 포기한다는 게 아니다,

아직 싹을 낼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

 

 

 

 

 

일찍 깨어난 배나무에 꽃이 피었다.

나도 기쁘지만

구사일생 살아남은 과실수는 기쁨을 저 작은 꽃들로 말하고 있다.

 

 

 

 

 

라일락.

아랫동네는 이미 피어서 지던데, 나의 라일락은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천천히, 니들이 원할 때 그때 꽃 피우렴. 

난 답답할 게 하나 없느니라.

 

 

 

 

 

 

설탕모자 소나무(Zuckerhutfichte)에 새순이 나왔다.

설탕가루를 뿌리면 이렇게 위가 봉긋해지니

이름도 그 모양을 따른 것 같아.

내가 심은 게 아니고 전 주인이 고맙게도 심어 놓았던 것들.

 

 

 

 

 

정지한 것 같지만 윗둥이 뾰족하게 해마다 더 솟고 있다.

 

 

 

 

 

흑림의 전형적인 침목수 가문비나무.

마당입구에 일렬 종대로 아주 여러 그루 서 있는데

아이의 머리카락 같은 새순(자세히 보는 이에게만 보이는)이  

이맘때면 나온다.

 

 

 

 

 

 

거실에서 바라본 밖.

내가 좋아하는 은청색 소나무가 오른 쪽으로 보인다.

 

 

 

 

 

 

북쪽,

아직 잎을 달지 않아서 이웃이 훤히 보이는 쪽.

어떤 나무는 저렇게 흰 꽃을 피운다.

이름은 까먹었고,

저 나무의 열매는 흑림 여인네들은 예로부터 잼을 만들었다 한다.

상당히 큰 나무인데 3층 침실에서 보면 만만하다.

 

 

 

 

 

비비면 마늘 냄새가 나는 마늘풀,

식용이고 마늘대용.

 

 

 

 

 

 

매발톱?

꽃이 피면 더 자세히 알 수 있겠지만

추측이다 .

 

여기까지

'집이라고 돌아와 보니, 사랑방(앞마당)이 소요터라' 이며

시간이 나면 우중 꽃사진 더 올리고, 아니면 말고 할 것이다.

 

빨래도 밀렸고,

모종들은 좀이 쑤신지 당장이라도 바깥 땅에 심어 달랜다.

 

.............................................

 

 

*진주난봉가

울도담도 없는집에서 시집살이 삼년만에
시어머니 하시는말씀 얘야아가 며늘아가
진주낭군 오실터이니 진주남강 빨래가라
진주남강 빨래가니 산도 좋고 물도 좋아
우당탕탕 빨래하는데 난데없는 말굽소리
옆눈으로 힐끗보니 하늘같은 갓을쓰고
구름같은 말을타고서 못본듯이지나더라
흰빨래는 희게빨고 검은빨래 검게빨아
집이라고 돌아와보니 사랑방이 소요터라
시어머니하시는말씀 얘야아가 며늘아가
진주낭군 오시었으니 사랑방에 나가봐라
사랑방에 나가보니 온갖가지 안주에다
기생첩을 옆에끼고서 권주가를 부르더라
이것을 본 며늘아가 아랫방에 뛰쳐나와
아홉가지 약을 먹고서 목메달아 죽었더라
이말들은 진주낭군 버선발로 뛰어나와
내이럴줄 왜몰랐던가 사랑사랑 내사랑아
하룻정은 삼년이요 본댁정은 백년인데
내이럴줄 왜몰랐던가 사랑사랑 내사랑아
어화둥둥 내사랑아

 

  • 파란편지2019.05.19 14:13 신고

    한 번 읽었으니 체면 좀 차리고 나중에 다시 와서 몇 자 적을까 하다가
    이번에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집이라고 돌아와보니"라는 제목은 일단 좀 익살스러운데
    제가 보기에는 저 노래와는 영 딴판이었습니다.
    사과꽃만 하더라도 세상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을 나타내는 사진전을 연다면
    이 사진도 선(選)에 들고야 말 것 같았습니다.
    이 사진들을 한꺼번에 다 실으신 것은 "사랑방이 소요터라"에 딱 맞는 것이긴 하지만
    저 같으면 아주 아까워서 한두 장씩만 실었을 것 같았습니다.
    심심하시면 저 친구들과의 대화를 늘이시면 좋을 것입니다.
    그 댁 대단합니다.

    답글
    • 숲지기2019.05.19 16:05

      마당식구들끼린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요,
      이 노래 아시지요 교장선생님?

      철마다 피는 풀꽃들까지도 다르답니다.
      이렇게 얘기드리면 좋은 쪽이고요 사실은 찹초투성입니다.
      지금도 충분히 자랐는데 비까지 뿌리니 감당을 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집관리에 대한 커트라인을 낮췄습니다.
      그후부터 마음이 좀 편해졌습니다요.
      비 묻은 사진들, 우산을 쓰고 마당에 나섰었습니다.

    • 파란편지2019.05.20 04:48 신고

      더 나은 잡초가 많지요?
      인간들의 세상처럼.......
      언제 마당 있는 집을 가지게 되면
      잡초가 살아 있어도 '괜찮은' 곳이 되게 하고 싶었는데
      자꾸 세월이 가고 있습니다.

    • 숲지기2019.05.20 16:53

      고백컨대 저는 사람의 성격을 식물의 그것에 비유해서 이해할 때가 많습니다.
      숨길 수 없는 숲사람의 눈이지요.
      딱히 좋은 것도 그렇다고 나쁠 것도 없는,
      그저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잡초에 대해서는 생각을 확실히 합니다.
      식물에는 신경이 없으니 뽑아도 아프지 않다고요.

      마당있는 집,
      그렇죠. 적당한 정도면 아주 좋죠, 저 같이 일이 일상을 삼켜버릴만큼 아주 여러 개가 아니면 말입니다요.
      그러니, 마당 안 가지심도 현명하십니다요 교장선생님.

  • 파란편지2019.05.19 14:14 신고

    "진주난봉가"를 일부러 사람들이 발음하는대로 "남봉가"라고 하셨습니까? [비밀댓글]

    답글
    • 숲지기2019.05.19 16:07

      오자투성입니다요.
      난봉가가 맞겠지요.
      좀 가려 쓴다고 다짐하지만 늘 틀리게 씁니다요 ㅠㅠ [비밀댓글]

    • 파란편지2019.05.19 16:26 신고

      오자투성이요?
      마냥 재미있습니다.
      이런 경우 좀 이상한 단어가 있으면 예전의 말이어서 그런가보다 하잖아요.
      그러니까 틀린 건지 뭔지 아는 사람이 드물지 않을까 싶습니다.^^ [비밀댓글]

    • 숲지기2019.05.19 17:00

      그런데요 교장선생님, 이번엔 틀린 걸 알았습니다만
      가끔은 몰라서 틀리기도 합니다.
      우리말이 어렵습니다요. [비밀댓글]

  • 이쁜준서2019.05.19 20:14 신고

    어려서 할머님들께서 읊조리시던 것이네요.
    잊고 있던 노랫말인데, 읽으니 그 어렸던 시절에
    글귀가 떠 올라 반가웠습니다.

    이제 제 자리에 좌정을 한 사과나무가 꽃을 피웠고,
    배나무가 살음을 한 듯 보이고,
    집을 떠나 한동안 계셨던 모양입니다.

    답글
    • 숲지기2019.05.20 16:58

      아 이노랠 듣고 자라셨군요.
      참 반갑습니다.
      가사가 워낙 길어서 다 외운 적이 없습니다.
      이 글 올리고 유튜브에서 찾아 들었습니다.
      슬픈 내용이지만 함께 했던 지인들과 그 광경이 떠올라서
      노랠 들으며 좋았습니다.
      기회가 되면 끝까지 외워부르고도 싶고요 ㅎㅎ

      네, 배나무가 운 좋게 살아서
      또한 경사스럽습니다요. 고맙습니다.

  • snooker2019.05.20 19:46 신고

    만약에 말임더, 사과나 배가 제대로 안 열려도 너무 심란해 허지 마소 잉.
    땅이 나빠서가 아니요, 쥔이 관리를 잘못해서도 아임더.
    침엽수가 주변에 많으면 원래 사과와 배가 요상스리 자랍니더.
    꽃은 화려하게 피지만, 아무리 솎아 줘도 열매는 비실거림더.

    특히 드라이진 맹그는 침엽수가 바로 옆에 있다가는 아예 살아남지도 못허지라.
    거 뭐더라... 아, Wacholder 나무라예. 고놈이 젤 나쁜 놈이라예.
    탄네, 피히테, 아이베... 요런 아해들도 조심허소 잉~

    답글
    • 숲지기2019.05.20 21:33

      맞습니다, 위에 쓰신 침엽수들 아래는 잡초도 안 자랍니다.
      매년 몇 그루씩 베어내지만 자라는 속도에 비하면 턱이 없습니다.
      숲에 있어야 할 가문비나무가 집마당을 지키니 ㅠㅠ
      바홀더가 나쁘군요.
      다행히 제일 나쁜 애는 없고 흑림 탄넨 뿐입니다요.

      4그루 심은 중에 배나문 확실히 적응을 할 것 같고요,
      다른 애들은 좀 지켜볼 생각입니다.
      칸토르쌤은 모르시는 게 없으시고요,
      제 블록에 자주 오셔서 가지신 지식을 자주 써 주세요
      고맙습니다.

  • 추풍령2019.05.20 23:49 신고

    비기 쏟아지는 우중에 귀가 하셨군요.
    돌아와보니 만가지가 소생하고 새 생명이 돋아나는군요.
    모성애를 갖이고 육아의 정신으로 꽃샘들을 살피세요. 복이 올것입니다.
    에덴동산이 따로 없네요.

    답글
    • 숲지기2019.05.21 22:31

      마당의 생명들에도 그들을 태어나게 한 부모가 있겠지요.
      저는 보모 정도 될까요?
      그 쯤으로도 제 생에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영예입니다.
      에덴동산이라 봐주신 것이 저에겐 또한 튼 복인 걸요.
      고맙습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