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흑림의 성탄
- 바질소금
- 마늘풀
- 루에슈타인
- 잔설
- 감농사
- Schwarzwald
- 흑림의 오래된 자동차
- 흑림의 봄
- 익모초
- 독일흑림
- 헤세
- 흑림의 샘
- 텃밭
- 뭄멜제
- 독일 주말농장
- 힐데가드 폰 빙엔
- 우중흑림
- 바질리쿰
- 카셀
- 흑림의 여뀌
- 꿀풀
- 독일 흑림
- 흑림
- 흑림의 겨울
- 코바늘뜨기
- 싸락눈
- 뽕나무
- 프로이덴슈타트
- 흑림의 코스모스
- Today
- Total
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집이라고 돌아와보니(우중흑림) 본문
독일 흑림의 귀갓길.
비가 내리고, 누군가 솜뭉치를 부려 놓은 듯
계곡마다 안개가 들어찼다.
산길 운전 중에 반대편 차가 지나는데, 차창 빗방울이 반사된 탓에
참 요상한 사진이 되어버렸네.
암튼 이 길을 달려서 마당에 내려보니
'집이라고 돌아 와 보니 사랑방이 소요터라'*
딱 이 구절이 뇌리에 떠오른다.
이 문장은 유명한 진주난봉가의 한 구절이다.
큰학교때 막걸리집 탁자에 빙 둘러 앉아 듣던 그 노래,
건장하나 깊은 저변에 우수를 깔았던 그 목소리가 좋아서 레코드를 돌려 듣듯 들었었다.
'심금을 울린'다는 표현에 맞는 목소리를 가진 친구
잘 사시는가?
두어 번 술자리에서만 만나선지 그 친구의 이미지는
막걸리집과 진주난봉가와 비빔밥처럼 섞여 있어.
집이라고 돌아와 보니 앞마당이 이토록 소요하다,
우중임에도 집 마당엔 이렇게 꽃들이 잔치를 벌이고 있으니....
사과나무는, 글쎄 한 10살쯤 되었을라나?
어느 가을에 내 침실 모서리에 세워 겨울을 나게 하고 이듬해 봄엔 화분에 든 채로 밖에 심었으며
서너해 지난 뒤 지금의 터로 자리했다.
그게 재작년, 그러니까 작년까진 여러 곳 떠돈 몸으로 적응에 애를 먹더니
올핸 보란듯이 꽃을 보여주네.
이곳이 내 집이다 싶은 모양,
감사할 따름이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사이사이 새로 심은 과실수들이 보이는데
지금까진 글쎄, 이 한 그루 배나무만 제대로 살아난 듯 하다.
그렇다고 다른 나무들을 포기한다는 게 아니다,
아직 싹을 낼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
일찍 깨어난 배나무에 꽃이 피었다.
나도 기쁘지만
구사일생 살아남은 과실수는 기쁨을 저 작은 꽃들로 말하고 있다.
라일락.
아랫동네는 이미 피어서 지던데, 나의 라일락은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천천히, 니들이 원할 때 그때 꽃 피우렴.
난 답답할 게 하나 없느니라.
설탕모자 소나무(Zuckerhutfichte)에 새순이 나왔다.
설탕가루를 뿌리면 이렇게 위가 봉긋해지니
이름도 그 모양을 따른 것 같아.
내가 심은 게 아니고 전 주인이 고맙게도 심어 놓았던 것들.
정지한 것 같지만 윗둥이 뾰족하게 해마다 더 솟고 있다.
흑림의 전형적인 침목수 가문비나무.
마당입구에 일렬 종대로 아주 여러 그루 서 있는데
아이의 머리카락 같은 새순(자세히 보는 이에게만 보이는)이
이맘때면 나온다.
거실에서 바라본 밖.
내가 좋아하는 은청색 소나무가 오른 쪽으로 보인다.
북쪽,
아직 잎을 달지 않아서 이웃이 훤히 보이는 쪽.
어떤 나무는 저렇게 흰 꽃을 피운다.
이름은 까먹었고,
저 나무의 열매는 흑림 여인네들은 예로부터 잼을 만들었다 한다.
상당히 큰 나무인데 3층 침실에서 보면 만만하다.
비비면 마늘 냄새가 나는 마늘풀,
식용이고 마늘대용.
매발톱?
꽃이 피면 더 자세히 알 수 있겠지만
추측이다 .
여기까지
'집이라고 돌아와 보니, 사랑방(앞마당)이 소요터라' 이며
시간이 나면 우중 꽃사진 더 올리고, 아니면 말고 할 것이다.
빨래도 밀렸고,
모종들은 좀이 쑤신지 당장이라도 바깥 땅에 심어 달랜다.
.............................................
*진주난봉가
울도담도 없는집에서 시집살이 삼년만에
시어머니 하시는말씀 얘야아가 며늘아가
진주낭군 오실터이니 진주남강 빨래가라
진주남강 빨래가니 산도 좋고 물도 좋아
우당탕탕 빨래하는데 난데없는 말굽소리
옆눈으로 힐끗보니 하늘같은 갓을쓰고
구름같은 말을타고서 못본듯이지나더라
흰빨래는 희게빨고 검은빨래 검게빨아
집이라고 돌아와보니 사랑방이 소요터라
시어머니하시는말씀 얘야아가 며늘아가
진주낭군 오시었으니 사랑방에 나가봐라
사랑방에 나가보니 온갖가지 안주에다
기생첩을 옆에끼고서 권주가를 부르더라
이것을 본 며늘아가 아랫방에 뛰쳐나와
아홉가지 약을 먹고서 목메달아 죽었더라
이말들은 진주낭군 버선발로 뛰어나와
내이럴줄 왜몰랐던가 사랑사랑 내사랑아
하룻정은 삼년이요 본댁정은 백년인데
내이럴줄 왜몰랐던가 사랑사랑 내사랑아
어화둥둥 내사랑아
-
한 번 읽었으니 체면 좀 차리고 나중에 다시 와서 몇 자 적을까 하다가
답글
이번에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집이라고 돌아와보니"라는 제목은 일단 좀 익살스러운데
제가 보기에는 저 노래와는 영 딴판이었습니다.
사과꽃만 하더라도 세상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을 나타내는 사진전을 연다면
이 사진도 선(選)에 들고야 말 것 같았습니다.
이 사진들을 한꺼번에 다 실으신 것은 "사랑방이 소요터라"에 딱 맞는 것이긴 하지만
저 같으면 아주 아까워서 한두 장씩만 실었을 것 같았습니다.
심심하시면 저 친구들과의 대화를 늘이시면 좋을 것입니다.
그 댁 대단합니다. -
-
어려서 할머님들께서 읊조리시던 것이네요.
답글
잊고 있던 노랫말인데, 읽으니 그 어렸던 시절에
글귀가 떠 올라 반가웠습니다.
이제 제 자리에 좌정을 한 사과나무가 꽃을 피웠고,
배나무가 살음을 한 듯 보이고,
집을 떠나 한동안 계셨던 모양입니다. -
만약에 말임더, 사과나 배가 제대로 안 열려도 너무 심란해 허지 마소 잉.
답글
땅이 나빠서가 아니요, 쥔이 관리를 잘못해서도 아임더.
침엽수가 주변에 많으면 원래 사과와 배가 요상스리 자랍니더.
꽃은 화려하게 피지만, 아무리 솎아 줘도 열매는 비실거림더.
특히 드라이진 맹그는 침엽수가 바로 옆에 있다가는 아예 살아남지도 못허지라.
거 뭐더라... 아, Wacholder 나무라예. 고놈이 젤 나쁜 놈이라예.
탄네, 피히테, 아이베... 요런 아해들도 조심허소 잉~ -
비기 쏟아지는 우중에 귀가 하셨군요.
답글
돌아와보니 만가지가 소생하고 새 생명이 돋아나는군요.
모성애를 갖이고 육아의 정신으로 꽃샘들을 살피세요. 복이 올것입니다.
에덴동산이 따로 없네요.-
숲지기2019.05.21 22:31
마당의 생명들에도 그들을 태어나게 한 부모가 있겠지요.
저는 보모 정도 될까요?
그 쯤으로도 제 생에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영예입니다.
에덴동산이라 봐주신 것이 저에겐 또한 튼 복인 걸요.
고맙습니다.
-
'흑림살이 > 수처작주隨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맘때의 아우토반 (0) | 2019.05.26 |
---|---|
사랑방이 소요터라(우중흑림) (0) | 2019.05.20 |
목련이 피기까지는 (0) | 2019.03.23 |
독일 흑림에 눈 내린 첫 풍경 (0) | 2018.11.30 |
남은 것은 젖은 낙엽 같은 노가다 얘기 뿐 (0) | 2018.10.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