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파이프오르간/손택수 , 일주일의 연애/ 강서일 본문

흑림살이 /동화·신화·재생

파이프오르간/손택수 , 일주일의 연애/ 강서일

숲 지기 2020. 6. 10. 20:54

파이프 오르간

/손택수

 


좋은 소리는 사라지는 것이다
사라지는 음을 따라 행복하게 나도 잊혀지는 것이다


그런 음악이 있다면
완공된 건축물들이 잊고 사는 비계다


발판에 구멍이 숭숭한 것은 새처럼 뼈를 비워 날아오르기 위함,
하지만 여기서 비상은 곧 추락이다


음악이 되려고 뼈가 빠져본 적 있나
한여름이면 철근이 끈적한 거미줄처럼 들러붙는 허공


모든 건물들은 잊고 있다
뼈 빠지는 저 날개의 기억을,
흔적도 없이 해체하는 비상의 기술을


건축을 잊은 건축이 음악에 이른다


철근 위에서 깃처럼 펄럭이는 비계공들,
뽑아올리는 파이프가 웅웅 울고 있다

 

 

 

ㅡ『시사사』(2020, 봄호)

 

 

 

............................

 

 

 

일주일의 연애


강서일

 

 

그분은 빛과 어둠을 갈라 낮과 밤을 만드시고
나는 먼발치에서 긴 머리 당신을 보았지


물을 갈라 하늘과 땅 바다를 만드시고
나는 이팝나무 아래서 당신의 손을 잡았지


낟알을 내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내시고
나는 당신의 눈이 해바라기를 보는 걸 알았지


나흗날, 빛나는 것들은 창공에 걸어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고
당신은 별을 걸어두어 나만의 별을 보게 했지


바다에는 고기가 우글거리고 하늘에는 새들이 날아다녀
당신과 나는 그 바다와 그 하늘을 보러 갔었지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어 온갖 것을 내어주시고
당신은 온갖 구름과 무지개를 내게 선물로 주었지


이렛날, 그분은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실 때
우리는 잉잉대는 밥솥의 증기처럼 종일 분주했지


이 모든 것,


그분이 보시기에 좋았고 우리들도 보기에 좋았다.

 

 

* 『창세기』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ㅡ『문학과 창작』(2020, 여름호)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