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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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초하루 시편지

숲 지기 2020. 10. 1. 13:50

 

 

안개는 힘이 세다
/우대식

안개 속에서,
사회주의 옹호자가 나온다
조금 있다가 자본주의자가 나온다
안개 속에는 많은 주의자들이 산다
안개 속에서
사회주의자인 체하는 자본주의자가 걸어 나온다
교회주의자인 체하는 완전 자본주의자가 걸어 나온다
안개가 걷히면 자본주의자만 남았다
그게 뭐 대수냐고 누군가 중얼댔다
나는 자본주의는 힘이 세냐고 물었다
자본주의자들은 슬그머니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눈이 쏟아지고 앞을 볼 수 없었다
눈도 자본으로 만들 수 있다고 안개 속에서 허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안개는 고맙다

 

ㅡ'애지' 2020, 가을호

 

 

 

 

 

취한 사람

/이나혜

 

취한 사람처럼 아름다운 사람은 세상에 없느니


군청색 그리스 바다 냄새가 나고 전봉건全鳳健의 시에서 낮은 트럼펫 소리가 나고 옆 테이블의 남자가 담배에 불을 붙이는 밤에


얼굴이 둥근 술잔에 너그럽게 술을 따르고
왜 사는지 생각해 보면서


죽음도 생각하면서
물을 안 주고 나온 화분도 생생히 기억하면서


취해 먼 나라에 와 있는 사람
아름다운 사람

아픈, 술이 깨면 아플
읽지 않은 처녀 같은 이 세상의 시 몇 구절

 

ㅡ'문학과 창작' 2020, 여름호

 

 

 

 

시와 라면

/이진엽


라면이 끓는 동안
몇 줄의 시를 고쳐 쓴다
스프와 면발이 익어가는 냄새가
메모지 속으로 스며들면
시의 언어들도 서서히 달아오른다
탈탈탈 냄비 뚜껑 떨리는 소리
보글보글 시의 언어가 끓는 소리
더도 덜도 아닌
어느 한 임계점의 그 불기운에서
라면도 시도 잠깐, 숨을 멈추고
극치의 맛을 우려낸다
그 정점의 한순간,
라면은 시가 되고
시도 면발에 엉켜 서로 하나가 된다


ㅡ'시인시대' 2020, 가을호

 

 

..................................

 

눈빛이 마주치면 거의 반사적으로 미소를 짓는 사람들인데

요즘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그 자취를 찾기가 어렵다.

물론 웃고 있을 테지만 얼굴의 표정을 마스크로 가리니

도무지 가늠이 가질 않는다.

뿐만 아니라 하루 8시간, 아니 9시간씩 마스크를 써야 하는 노동의 나날에서

순간순간 질식을 할 것만 같은 아찔함을 느낀다.

내가 쓰고 내 뱉은 이산화탄소를 다시 마시니

산소부족 즉 이산화탄소 과다 현상(Hyperkapnie)*을 '아찔함'으로만 쓰고 만다.

나 말고도 일을 하며 사는 지구인 대다수가  겪는 일일테니까.

청소년들이 특히 눈에 들어온다.

이들은 부쩍 얌전해졌고 말 수가 줄어 들었다. 

지구 초유의 이 시기를 이들은 훗날 어떻게 소화했다고 할까.

 

마음에 들어서 얼른 얻어온 시들이다(감사한 마음으로).

안갯속에서 취한 척, 라면이나 한 냄비 끓이고 싶은 2020년 시월 초하루에....

 

 

 

 

*이산화탄소 과다 현상(Hyperkapnie)

히퍼카프니 즉 영어로는 하이퍼카프니의 정의는

혈액 속에 이산화탄소가 45mmhg이상이 되는 것인데

원인으로는 허파꽈리(Alveolen) 의 공기 교환기능이나 이산화탄소 과다의 호흡환경으로 발생한다.

몸에 나타나는 증상으로는

피부가 붉어지고 심장이 두근거리며 손발에쥐가나고 정신이오락가락하며

혈액 속에 그 수치가 60mmhg가 넘으면 의식불명이 된다.

 

  • 파란편지2020.10.02 05:50 신고

    숲지기님이 보여주시는 시들은, 저에게는 웅변처럼 들릴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시를 읽으면 지금 얼른 세상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느낌일 때도 있고,
    대신 싸워주러 갈 듯한, 무한한 힘을 가진 시인들이 건재하고 있어서 위안을 삼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시를 읽게 되는 것인데 거기에 숲지기님께서 좋다고 보여주시는 시의 색깔이 분명해서
    읽는 맛이 더하게 됩니다.
    '안개는 힘이 세다', '취한 사람', '시와 라면'
    세 편의 시가, 그 은유를 위해 생각을 거듭했을 시인들과 그 시인들을 보여주신 숲지기님을 생각합니다.

    답글
    • 숲지기2020.10.02 11:40

      이 시기에도 누군가 시를 쓰고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됩니다.
      물론 아무도 안 쓰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 의해 이미 쓰여진 것을 읽는 일만도
      저로서는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시기에 시를 쓰다니요.

      어제 저녁 쯤 이 되어서야 추석인 줄 알았습니다.
      어차피 가지 못하는 고향이니
      이번엔 마음의 동요가 크게 일지 않습니다.
      인사가 늦었지만, 추석 잘 쓰십시오 교장선생님.

    • 파란편지2020.10.02 14:15 신고

      뭔가 암담한 느낌입니다.
      명절에 고향을 찾는 사람들은 고향, 조상, 부모에 대한 향수가 지극한 사람들로 표현되고 저도 오랫동안 그렇게 한 사람이지만 날이 갈수록 의구심을 갖는 게 사실입니다.
      새로 정립되어야 할 의미들이 많을 것 같은 느낌도 있습니다.

      어차피 칩거입니다.
      이 생활이 이미 여덟 달쨰입니다.
      책을 읽는 행복을 이야기한 어느 교수의 전화가 자꾸 생각납니다.
      차라리 추석인 줄 모르시고 지나가도 좋을텐데.....

    • 파란편지2020.10.02 15:35 신고

      "닻을 내린 그 후"라는 시에 달아주신 댓글에 답을 써놓고, 어느 TV 방송의 영화를 반쯤 보다가 허접하구나 싶어서 돌아와 제 답글을 보고는 영국인과 결혼한 제 여식 이야기가 아무래도 '경솔하구나' 싶었습니다.
      그래 고치고, 또 한 문장을 고치고, 또 고치려고 '수정'을 누른다는 것이 '삭제'를 누른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것 좀 보십시오, 그냥 통째로 숲지기님 글까지 다 사라지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부디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사주에 역마살이 세 개나 됩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잡념을 하는 시간에는 자주 딴 곳을 생각합니다.
      어디든 대수겠습니까, 뭐 그런 얘기를 썼는데.....
      참 아쉽습니다.
      가뜩이나 댓글이 적은 시에...........

    • 숲지기2020.10.03 01:28

      어머나..저도 몹시 아쉽습니다.
      일하는 중이라서 써주신 댓글을 읽을 기회가 없었나 봅니다.
      따님께서 영국에 계시다는 말씀,잘 기억합니다.
      아마 지금쯤 따님께서도 추억 속의 추석을
      아주 여러 번 회상하셨을 겁니다.

      저는 여기 옮겨 와서 사는 동안을
      좀 긴 여행을 하는 중이라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곳도 제 터전이 되었는 걸요.

    • 파란편지2020.10.03 06:49 신고

      "여행을 하는 중"
      숲지기님꼐서 그렇게 쓴 걸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제 딸이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걸 들으면 언짢고 안타까웠습니다.
      여기를 집이라 하고, '우리 가족'이라 하고, 거기는 잠정적으로 가 있는 곳인양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얘가 언제 철이 드나?'

      그냥 웃자고 한 이야기니까 그렇게만 여겨주십시오~^^

    • 숲지기2020.10.06 13:13

      여러번 갈등합니다.
      먼 거리의 따님을 두고 4시는 교장선생님을 위로를 해 드려야 할 텐데,
      그 마음이 저의 아버님의 마음이셨던지라......

      불효로 치면 저는 세계 챔피언감이라서
      마냥 사죄만 드릴 따름입니다.

  • 비비안나2020.10.04 03:16 신고

    편지님 방에서
    자주 뵈었는데
    제 방에 발자국을 남겨 주셔서 건너왔습니다
    감사함 전합니다

    답글
  • 헤리티지2020.10.06 01:30 신고




    안녕하세요?

    오리 이원익(梧里 李元翼)은 여든일곱까지 살며 70년을 공직에 있었습니다.
    선조·광해군·인조 3대에 걸쳐 영의정을 다섯 번이나 했지요..
    그러면서도 노년에 재산이라곤 초가 한 채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인조가 "어떻게 하면 훌륭한 정치를 펼 수 있는가" 묻자
    이원익이 "성상(聖上)께서는 자신의 견해만 믿고 신하들을
    경시하고 독단으로 처리하시는 일이 많아 군신(君臣) 간에
    서로 신뢰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잘 다스리고자 한들 되겠습니까."

    ◀선조들의 숨결어린 문화재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입니다''

    답글
    • 숲지기2020.10.06 20:06

      어찌하여 이 숲마을까지 오셨는지 알 수 없지만,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계백2020.10.06 08:01 신고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하늘은 맑고 높은데 기온은 차갑습니다.
    10월 여섯째날인 맑고 화창한 화요일
    자신 스스로 몸과 마음을 비우고 낮추는
    계절로 꾸리려고 노력하며 일과를 시작합니다.
    건강 하시고 행복한 한주 꾸리길빕니다.^*^
    감사합니다

    답글
    • 숲지기2020.10.06 20:08

      여기도 쌀쌀해졌습니다.
      환절기 건강 조심하시고,
      행복한 나날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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