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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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부일기/한포기생명

독일 흑림에 첫서리가 1

숲 지기 2018. 10. 2. 04:34

흰 망사블라우스를 입어 살짝 드러난 속살이 수줍은 여인을 보듯, 

첫서리가 내렸다.

추석 전인 9월 하순 어느 날 이른 아침

 

 

 

 

 

쟈켓을 걸쳤다고는 하나 여름 옷에 헐렁한 신발차림의 나는 

산골마을의 첫 서리에  

기분 좋게 손이 시리고 발이 시렸다.

 

 

 

 

 

자주색 작은 종꽃 위에 설탕가루를 뿌린 듯 하다.

 

 

 

 

 

 

엉겅퀴 마른 꽃대도 예외가 아니다.

 

 

 

 

 

 

좁살 만한 흰꽃이다.

 

 

 

 

 

 

산딸기잎은 요 정도 서리 쯤엔 아랑곳하지 않는다.

눈이 뒤덮여도 녹을 때까지 꿋꿋하게 잎모양을 유지한다.

 

 

 

 

 

 

또 엉겅퀴?

 

 

 

 

 

 

야생 에리카, 다년생이고 흑림사람들은 몸에 이로운 약초로 쓰는 풀이다.

 

 

 

 

 

 

서리 내린 잔디 위에 햇살이 막 떠올랐다.

 

 

 

 

 

또또 엉겅퀴

 

 

 

 

 

 

이름 모를 들풀, 꽃대는 제 알아서 가을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떤 꽃을 피웠었는지 통 기억에 없다.

 

 

 

 

 

서리내린 골짜기에 첫 햇살이 덮일 때,

초록의 풀나무와 서리의 흰색이 섞였다.

 

  • 사슴시녀2018.10.02 09:51 신고

    출장은 잘 다녀오셨나요?
    그곳은 벌써 서리가 내렸군요.
    이곳도 서늘한 가을비가 오늘 내렸답니다.
    설탕가루 뿌린것 처럼 하얀가루 뒤짚어쓴 모습이 너무 고와요!

    답글
    • 숲지기2018.10.02 12:52

      고맙습니다 덕분에 잘 마쳤습니다.
      저는 이 짧은 일정도 부담이 가네요, 워낙 집 떠나는 걸 잘 안 하니 말입니다.

      새벽에 나서면 5시 6시에도 달이 중천에 떠 있습니다.
      동쪽엔 아침 노을이 펼쳐지는데도 말이지요.
      그 신비로운 광경을 혼자 보는 게 참 아깝더군요.

      가을비 내리는 해변가의 사슴시녀님,
      멋스럽게 상상합니다.
      첫서리가 내렸으니 여긴 이제 추워질 일만 남았습니다요 ㅠ

  • 파란편지2018.10.07 15:15 신고

    서리 내린 모습을 하나하나 살펴봅니다.
    오랜만에 시골길을 걷는 느낌, 너무나 오랫동안 잊고 지낸 것 같았습니다.
    물론 보긴 했겠지요. 그렇지만 시골에서 보았던 그 모습들이 아니어서
    실감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곳에도 곧 서리가 내리겠지요. 23일이 상강(霜降)이니까요.
    그런 날 아침, 아파트 마당에라도 나가면 볼 수 있을 텐데,
    쑥스럽지만 그렇게 지내지 못했습니다.
    서리 내린 모습이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저녁입니다.

    답글
    • 숲지기2018.10.08 15:05

      저의 국민학교 교정 은행나무 위에 서리가 내린 풍경을 생각합니다.
      여선생님들이 창 밖으로 오래 바라보곤 하셨지요.
      교장선생님의 시야도 그러하실 것 같습니다.
      그때 저희는 어렸고, 당시에도 젊으셨을 담임선생님은
      자신의 정서를 우리 앞에서 억지로 누르셨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상강'이라는 절기도 있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눈보다 서리가 더 애잔합니다.
      이 서리가 내린 전과 후의 밭 식구들의 삶은 확연히 달라집니다.
      서리밭을 이번엔 꼭 걸으실 것 같습니다 교장선생님 ㅎㅎ

    • 파란편지2018.10.08 15:27 신고

      서리 내린 날 아침, 아이들에게 무언가 활동을 시켜놓고 창문 너머로 교정의 은행나무를 내다보는 그 여선생님이 그려집니다.
      지금 찾아가서 만나보고 싶은 선생님입니다.

      "내 생애의 아이들"(캐나다, 가브리엘 루아)이라는 소설에 나온 문장입니다.

      나 자신 그런 시절의 상처를 이제 간신히 치유한 상태였고 겨우 청소년기의 몽상에서 벗어나 아직 성년의 삶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었으므로, 이른 아침 교실에 서서 내 어린 학생들이 세상의 새벽인 양 신선한 들판 위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모습을 바라볼 때면, 학교라는 함정 속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로 달려가서 영원히 그들의 편이 되어야 옳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었다.

      그 부분이 생각나서 찾아 옮겼습니다. 가브리엘 루아는 교사 출신이었습니다.

    • 숲지기2018.10.08 20:35

      분필가루를 묻힌 선생님들의 손가락은 언제나 가늘고 심히 길었습니다.
      창가를 응시하시던 선생님들의 뒷모습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가능하다면 교장선생님께 그분들을 꼭 소개해드리고 싶은데요 ㅎㅎ

      저는 교육자가 된 적도 그럴 자격도 없어서 잘 모르지만,
      저에게는 학교가 있어서 참 다행이었습니다. 배운 것도 많고 스스로 깨우치도록 도움도 많이 받았습니다.
      선생님들은 위에 옮겨주신 것과 같은 생각을 하실 수 있지만 학생들이 선생님들의 갈등/고민까지 알 필요는 없지 싶습니다.
      아이들은 백지와 같아서 선생님이 이끄시는대로 가니까요.
      학생의 편이 되는 선생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가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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