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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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과 수직 /'경계'란 없다

어떤 이별법

숲 지기 2019. 1. 31. 10:32

 

살아오는 동안 원치 않는 이별이 더러 있었다.

지난 연말 메일 한줄, 전화 한 통도 없이 훌렁 가버린 절친과도

내 딴엔 참 내키지 않은 작별이었다.

 

 

 

 

 

 

그가 떠났으니 남은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좋은 날 하루를 정해서 그를 보냈다.

서둘러 간 그에게 못다 한 말이 있으면 편지로 써 달라고 미리 알리고

빈 상자를 비치했었다.

그를 보낸 다음날 이른 아침

떠난 그가 즐겨 찾았던 맑고 깨끗한 동산에서

그에게 도착한 편지들을 태웠다.

 

 

 

 

 

 

 

이런 날 안개가 꼈었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그에게 닿기를 바라며 썼을 편지들을  

서로 울타리가 되어 사는 우리가 함께 태웠다.

 

 

 

 

 

 

 

 

 

안개비 탓에 장작불 피우는 일도 더뎠다.

남은 우리는 여린 불씨를 불어 키울 때도 서로의 마음을 썼다.

그런 일이 참 고마웠지만 아무도 따로 말 하지 않았다. 

.....

 

 

 

 

 

 

 

나의 또 다른 절친이자 그가 이 땅에 못내 두고 간 미망인은

수북한 연애편지와 사진들도 태웠다.

사춘기 즈음부터 둘은 이웃동네 사는 사이로, 학교를 오가는 길에 서로를 눈여겨 보곤 했단다.

 

 

 

 

 

 

 

 

 

우리나라로 치면 '갑돌이와 갑순이'격인데,

이 친구들은 보란듯이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했으니 갑돌이나 갑순이처럼 달 보고 울 일은 없었지 싶다.

 

여행지에서 찍은 듯한 어린 연인들의 모습은 마치 유명 배우들처럼 눈부셨다.

그래서 물었다. 불 태우기가 아까운데 이 한장 쯤은 간직하지 않겠냐고. 

 

 

 

 

 

 

 

 

그녀의 대답은 단호했다.

아니란다.

남김없이 모두 태울 생각이란다. 그래야 새 출발이 가벼워진다고.

 

 

 

 

 

 

 

 

그녀를 응원할 생각이다.

살아 있는 날까지 무조건 ,

나는 그녀의 편이 되어 줄 것이다.

 

 

 

 

 

 

 

 

 

 

 

 

 

 

 

 

 

 

  • eunbee2019.01.31 04:42 신고

    회자정리라지만
    이별은 늘 슬프고 막막해요.
    더구나 이승과 저승으로의
    영이별이란... 얼마나 막막한 슬픔이던가요.

    고인의 평온을 안개도 기도하는 날이었네요.
    숲지기님의 슬픈 이별을 토닥여 드립니다.

    1월 끝 날이네요.
    봄을 숨기고 고양이 걸음으로 우리에게 올
    끼인 달 2월을 가만히 보듬겠습니다.
    거기 깊숙한 어드메엔 봄이 숨어 있을테니...

    답글
    • 숲지기2019.01.31 15:00

      은비님의 토닥여주심이 제 어깨에 전해집니다.
      고맙습니다.
      지병으로 워낙 고생을 하던 친구여서
      우리는 다 압니다 그가 이젠 통증 없이 지낼 거라는 것을요.

      저도 2월이 오는 게 참 좋습니다.
      봄을 입 밖으로 내어 말 하기엔 용기가 필요하지만 말입니다.

  • 노루2019.01.31 05:40 신고

    어떤 이별법, 그렇지요, 이별법은 다 '어떤'
    이별법이겠지요.

    그를 보냄이 그를 달리 새로 만남이 되는 (그를
    "다시 읽는"), 그런 어떤 이별법도 있겠지요.

    답글
    • 숲지기2019.01.31 15:06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떠난 사람이
      어떤 곳에서는 탄생을 하고 있음이 분명할 겁니다.

      이런 경험도 반복이 되니
      극복의 방법도 알아가네요.

  •  
      •  
  • 이쁜준서2019.01.31 09:14 신고

    예전에는 생이별이던 가신 분과의 이별이던
    사진을 태우고 편지를 태우고들 했습니다.
    이젠 도시에서는 태울 곳도 마땅하지 않아서 잘게 잘게 손으로 찟거나,
    종이 파쇄기에 넣어 버리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별을 혼자 하시는 것이 아니고, 가신분을 생각하면서,
    함께 하시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답글
    • 숲지기2019.01.31 15:19

      함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곳에서 관계하며 사는 친구들이기에 이렇게 서로 배웅도 해줍니다.
      언젠가 저도 이렇게 배웅을 받겠지요.
      물론 같은 방법이 아니어도,
      이들은 저를 마음을 다하여 보낼 거예요.

      여기도 소각하는 일이 굳이 따지자면 위법일텐데요,
      저 정도야 가능하지 싶습니다.
      저는 집 난로에 넣습니다.

  • 파란편지2019.01.31 15:16 신고

    저렇게 갈 수 있도록 살아간 사람은 따스한 사람이었겠지요.
    이곳에서, 이곳의 빈소에서, 요즘은, 저는, 슬퍼하는 사람을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나도 저렇게 가보았으면...' 생각했습니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보내는 입장이 되는 것도 그렇습니다.
    "원치 않는 이별"........
    원해서 이별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어서 서러웠는데 그 부분을 보며
    어쩌면 다 그런 것일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답글
    • 숲지기2019.01.31 15:25

      교장선생님은 어찌 아셨을까요,
      매우 따스한 친구였습니다.
      타향살이 하는 저에게 특히 마음을 많이 써준 친구였고요.
      고인이 오케스트라 단원이어서 장례식이 음악회가 된 것은 물론이고요.

      엷은 겉면만 벗기면 다들 깊이 슬펐음에도 그걸
      덮고 조용히 망자를 추억하고 애도하는 게 좋았습니다.
      한 사람과의 인연에 매듭짓는 일을 이곳 사람들은 참 중요시 합니다.

    • 파란편지2019.01.31 15:31 신고

      인간을 "가장" 중시하는 것이겠지요.
      돈이나 명예 같은 것 말고.......
      최근에 들렸던, 차관을 지낸 어느 교수의 자당상 빈소에는
      온 공간을 화환이 뒤덮고 있었습니다.
      조문 온 사람은 몇 되지도 않고, 상주도 문상객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어떻게 가야 하나...........'
      이것이 저의 점점 간절해지는 숙제입니다.

    • 숲지기2019.02.01 12:59

      가장 흔하게 일어나는 일상 중의 하나인데 말입니다.
      저는 아직 교장선생님 말씀하신 정도의 빈소엔 가 본 적이 없습니다.
      아주 어릴 땐 어르신들이 눈을 가려주시거나 아예 들어오지도 마라셔서
      모든 의식을 간접으로만 경험했습니다.
      다섯살쯤, 한번은 꽃상여를 따라가서 저 잃어버린 줄 알고 조모께서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니셨습니다. 그때 깊섶에 피던 할미꽃 풍경이 여전히 인상깊습니다.

      동서양 장례문화도 참 다르고요 굳이 택하라면 이쪽이지만,
      또 모르겠습니다
      제가 한나절 따라가던 그 꽃상여라면 말입니다.

    • 파란편지2019.02.01 14:45 신고

      이제 꽃상여는 아무데도 없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쪽일 것입니다.
      어쩔 수 없으니까 이쪽일 것이고요.

    • 숲지기2019.02.01 23:33

      교장선생님의 이쪽 또 저쪽은
      지리적인 것에 국한했던 좁은 저의 속내를 바로 보게 하십니다.
      암튼 저는 여전히 근시예요 이쪽만 뚫어져라 잘 보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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