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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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과 수직 /'경계'란 없다

낙태로부터 살아 남은 아이

숲 지기 2019. 2. 3. 00:32

 

팀(Tim)은 일곱살 사내아이다.

 

 

 

 

볼수록 쓰다듬고 싶은 사랑스런 아이 팀은 그렇다, 선천적인 다운증후군을 가졌다.

그 외에도 다른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사는 팀의 이야기를 시작하려니 목부터 메이지만

굳이 옮기려 한다.

독일의 WDR이라는 방속국이 팀의 이야기를 르뽀 형태로 만들어 방영한 것을 우연한 기회에 보았다.

 

 

 

 

아이는 생후 6개월때부터 건강한 남자아이 둘(12세, 8세)을 키우는 집에서 마치 막내 아들처럼

자라고 있다. 사진의 맨 왼쪽부터 큰형, 엄마, 둘째형 아빠 그리고 유모차 안엔 아직 걷지 못하는 

일곱살 아기 팀이 있다. 

 

 

이야기는 서른 중반의 임산부였던 그의 생모가 양수 검사를 한 후 

임신 중인 태아가 다운증후군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 것부터 시작된다. 

이럴 경우 임산부는 낙태가 허용되는데 팀의 생모가 진단을 받았던 곳이

공교롭게도 낙태를 시술하지 않는 카톨릭재단 병원이었단다.

병원측은 그래서 팀의 생모(낙태를 희망하는)에게 시립병원을 추천하였고,

생모는 죄책스러운 결정을 해야함과 동시에 시술 받는 병원까지 옮겨야 함에 

차일피일 좀 미뤘던 모양이었다. 그 사이 태아는 쑥쑥 자라났다.

 

낙태 시술에 있어 태중의 아이가 커갈수록 상대적으로 어려워진다.

그러니까 생모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병원을 찾았을 땐 이미 아이가 너무 커서 

단순 낙태가 아닌 출산과 다를 바 없는 방법으로만이 생모의 뱃속에서 꺼낼 수 있었던 것.

 

 

 

 

우리의 사랑스런 팀이 유모차에 앉아 있네 ㅎㅎ

 

아래에 사진이 있겠지만 아이를 낙태하기로 한 날 당직의사는 팀의 생모에게 사전에 필요한 시술을 하였다.

주사를 주입하는 등의 출산 유도에 필요한 일 말이다.

중요한 것은 산모가 아이의 생존을 원치 않는 낙태시술이기 때문에

의사는 산모의 결정을 돕고 그에 합당한 것 만을 하여야 한다는 것.

 

대부분의 경우는 사산하는 형태로 태아가 나온다 하였다.

만에 하나 숨을 쉬더라도 출생한 태아는 두 시간을 넘기는 게 드물다고.

 

 

 

 

 

12살 큰형이 팀과 놀아주고 있다.

 

 

의사와 조산원 산모까지, 결코 내키지 않았던 작업을 한 후 

뱃속에서 아이가 나왔다. 팀이었다.

출생직후 팀의 몸무게가 700g쯤이었다고 했지 싶다.

한 손바닥에 얹어도 될 매우 작은 핏덩이였지 않았을까.

대부분의 출산아는 축복 속에 태어난다. 그에 비해 이 아이의 출생은 애초에 태어나지 않기로 결정되어서

축복이나 기쁨 따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아이의 낙태를 희망했던 생모는 태어난 아이를 보는 것 조차 거부하였다.

(실재로 단 한번도 보지 않았다 한다)

 

당직의사는 늘 하는 것처럼 출산 일을 끝냈고,

또 늘 하는 것처럼 조산간호사가 신생아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한다.

그리고 생모마저도 거부한 팀을

무심한 척 그냥 두었다 하였다.

 

 

 

 

 

 

 

 

3시간 쯤 지나 담당의사가 아이를 확인하였다.

그런데 아이의 심장이 여전히 뛰고 있었다 한다.

계획하고 기대한 바와 전혀 달라서

(뭘 기대했었는지는 차마 쓰지 않겠다) 

의사는 그때 몹시 당혹스러웠다고 회상했다.

 

 

 

 

 

아이의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의사에게는 아주 큰 혼란이 왔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를 바랐던 생모였으니 그녀의 의사를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여전히 심장이 뛰는 아이를 이제는 살려야 겠고 

보호하여야 겠다고 단단히 마음 먹었다는 담당의사, 위에 사진이 그다.

저 순간에,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리하지 않았을까.

 

이 일(그러니까 낙태를 시술한 것도 그이고 낙태로부터 살아난 아이를 구한 것도 그이다)로 인해 그와 그가 속한 의료기관은 아이의 친부로부터 법적 고소까지 당하였다 한다. 소위 역할에 부당했고 소임을 다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기저귀 안 갈겠다고 반항하는 팀

 

 

죽음의 시술인 낙태, 그로부터 살아남기는 했지만

신생아이며 미숙아였던 아이의 상태는 생명만 겨우 건진 격이었다 한다.

혈관을 비롯한 뇌, 그외 많은 몸 속의 장기들이 말이 아니었다 한다.

낙태를 위해 주입했던 약물 탓이었다. 

어린 생명은 수 많은 수술을 필요로 했고,그때마다 위험한 고비를 넘겼으며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 치명적인 여러 장애도 덤으로 안게 되었다.

 

 

 

 

 

 

 

 

저 해맑게 웃는 아이 팀은 의사소통은 물론 말을 아예 하지 못하고

걷지 못하고

음식을 삼키거나 물을 마시지 못한다.

음식물은 하루에 5번 소화기관으로 직접 공급한다.

이 일을 팀의 가족 즉 위탁엄마(사진에서 보이는)가 일일이 다 한다.

 

 

 

 

 

 

 

 

 

위탁부모가 팀과 인연을 맺은 경위는 이러하다. 아들 둘을 두고 살던 평범한 부부는 위탁아라도 딸아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였다. 일정한 교육(아이 위탁에 필요한)후,어느 성탄이 다가오는 날 전화 한통을 받았다.갓 6개월이 된, 지금은 많이 아파서 수술을 이미 수번을 한 사내아이를 맡지 않겠냐는 문의였다. 성탄 휴가도 시작된 한가한 날, 부부는 그냥 홀가분하게 아이를 보기만 한다고 찾아 갔다는 것이다. 글쎄 그런데 아이를 만난 첫 순간, 아이의 눈을 바라본 그 순간에 이 아이를 떠나면 안 되겠다는 그 무엇을 강하게 느꼈다 하였다.

위탁엄마는 물론이고 아빠 역시 마찬가지였단다.

 

 

 

 

 

 

저토록 순수하고 예쁜 팀이니......

위탁아빠는 팀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큰 두 아들들(건강한)은 엄마에게 불만을 토로하였다.

부모들이 모두 팀에게만 매달려 자신들에겐 신경을 덜 써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팀 이야기를 하는 형들의 얼굴은 함박웃음을 감추지 못한다.

아주 어린 아이와 다를 바 없는 팀을 돌보고 아주 잘 놀아주는 형들이다.

 

 

 

 

 

 

이야기의 후반부에 팀이 미국까지 가서 돌고래테라피를 받는 것이 비쳤다. 가격이 비싸기로 잘 알려진 돌고래테라피는 팀을 후원해주는 사람들로 인해 가능하였다 하였다.

"테라피를 받은 후 몇 방울이지만 음료수도 삼키고 보조기를 끼고 걷는 것에도 일말의 진행이 있었다"고 한다.그러나 이것은 위탁부모가 한 말이기 때문에 냉정하게는 그들의 바램일 수도 있다 싶다.

"다운 증후군이 어때서...." 아이의 위탁엄마는 마치 항의라도 하듯 어조를 높였다. 태어날 때 받았던 낙태시술만 아니었어도 팀은 아주 건강한 다운증후군 아이일텐데...... 여인은 끝내 눈물을 훔쳤다. ....

 

이야기를 사실 끝까지 보지 않았다. 그나마 기억나는 후반부를 본대로 좀 더 써보면, 팀의 이야기를 촬영하면서 아이의 생모에게 인터뷰 요청했다 한다. 아이 얼굴 한번 보는 것마저도거부했던 생모였으니 방송국이 요청한 인터뷰를 허락할 리가 없었다.

팀을 출산한 충격으로 여러 정신치료를 전전해왔다는 생모는 촬영이 마무리 되었을 즈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하였다.

아 그리고,  팀의 생부가 양육권을 여전히 포기않고 있다는 것. 생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팀을 만나볼 의향은 여태껏 없었다고.

 

 

휴.........

위의 이야기는 우리가 이룩한 제도 하에 일어났다. 누구는 가능한 범주에서 선택을 하고 누구는 주어진 몫의 일을 해냈다. 이들 가운데 잘못을 한 이가 과연 있었던가? 

 

 

 

 

 

-이 이야기는 독일의 공영방송WDR에서 제작한 것이고, 사진은 컴퓨터로 화면을 정지한 후 직접 찍었다.

 

 

  • 이쁜준서2019.02.03 00:30 신고

    감동입니다.
    자기 엄마도 포기한 아기를 위탁 부모들이 저렇게 잘 키우고 있다니
    숙연 해 지는 맘입니다.

    참으로 좋은 환경에서 신께서 차려 주신 밥상에 앉아서 밥만 먹듯이
    자식들을 키웠다 싶어서 반성과 감사한 맘이 들게 됩니다.
    저 아이가 되도록 오래 생명을 이어 가기를 바랍니다.

    답글
    • 숲지기2019.02.03 02:01

      그쵸, 보면서 저도 여러 번 뭉클했습니다. 헌신적인 위탁부모와 동생을 사랑으로 돌보는 그집 큰 아들들 고맙게까지 느껴졌는 걸요.

      맞습니다, 우린 가진 모든 것에 감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천사 같은 팀이 오래 건강하게 잘 살아주기를 저도 빕니다.
      마음 나눠 주셔서 고맙습니다.

  • 알 수 없는 사용자2019.02.04 15:31 신고

    프로그램의 의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생모가 자살한 것을 생각하면...글쎄요..인간인 이상, 그리고 산모의 입장에서 자신의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겠죠. 그러나 옳고 그름을 따질 수는 없는 일입니다. 만약 이 방송이 생모의 자살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면, 그런 것 같아 보입니다만, 이 역시 중대한 인권침해 이지요.
    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음은 모두가 잘 알지요. 그럼에도 쉽게 비난하거나, 동정하거나, 이해한다고 하는 것은 자만이고 모자람입니다. 한 생명이 그렇게 살아나 행복을 누린다, 그리고 생모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못해 자살해야 바람직한(?) 결말일까요? 결국 이 방송도 생모나 생부가 예고 없이 부딪쳤던 그 상황을 답습하는 것이지요..누구의 잘못인가는 방향이 틀린 겁니다. 생명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무게와 가치를 가집니다. 생모의 목숨도 똑같이 소중합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이런 식의 보도와 방송은 분명 잘못입니다.

    답글
    • 숲지기2019.02.04 16:00

      예리한 지적이십니다. 생모가 생을 마감하기까지, 방송제작이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알린다'는 이념 하에 생리적 부모의 인권은 간과했을 것도 같습니다. 저널리즘의 아주 흔한 빛과 그늘적인 요소지요.

      '누구의 잘못인가' ,
      이런 질문은 하수들이나 하는 것 맞습니다.
      굳이 변명합니다..
      실재하는 아이 '팀' 을 보면 내심 애틋해지고 화가 납니다.
      그 감정의 궁극을 '어떤 이의 잘못' 즉
      선과 악 양대론으로 보네요. 이런관점이 습관이라면
      안경 돗수를 높여서라도 수정해야지요. 팀이 햇볕이라면 그 그늘에는 생모가.....
      ( 아차, 또 이원론이.....)
      고밉습니다 이방인님.
      이 글 쓰고 생각이 많습니다.

  • 알 수 없는 사용자2019.02.04 17:21 신고

    아무도 가해자라고 나서지 않는, 피해자만 남게 됩니다. 그런데 정말 누가 피해자일까요? 도덕의 문제 이전에 양심의 문제입니다. 죄와 벌, 충분히 받았느냐, 마땅하냐 않느냐, 그저 모두 판단만 하는 일입니다. 생모는 그럼 그 아이를 가진 게 죄인가요, 축복인가요? 누구의 뜻일까요? 틀렸습니다. 그런 생각과 판단을 하는 일은 양심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방송은 그러겠지요, 그저 보여주었을 뿐이다. 아닙니다. 그게 판단입니다.

    답글
  • 숲지기2019.02.05 12:17

    단죄는 못하고 또 안 합니다.
    그럼에도 이방인님의 어휘를 빌어 써보면, 우리는 적당히 가해자이며 적당히 피해자입니다
    인류 역사 큼직한 덩어리를 종으로 자르거나 횡으로 자르거나
    거의 모든 인간이 그러했고앞으로도반복할 겁니다.

    위의 이야기에서 수많은 단어들을 떠올릴 수 있겠지요.
    이미 일어났던 일 즉,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웃음은 해맑고 아이를 돌보거나 바라보는 이들은 아이를 인해 행복합니다.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야기가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제작자가 고맙고 보길 참 잘했다고 여깁니다.

    답글
  •  
  • 파란편지2019.02.07 07:26 신고

    아이의 생명력의 힘을 생각하게 됩니다.
    양부모가 고맙고 생모가 목숨을 버린 것이 안타깝습니다.
    양육권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생부의 마음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울 것은 당연하여
    그것도 역시 안타깝습니다.
    남의 일이라고 함부로 얘기하기는 어렵겠지요.
    다만 생명의 신비함이 새삼스레 느껴집니다.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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