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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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식/자급자족·요리

맥주집 어르신과 몇년 만의 바깥 음식

숲 지기 2019. 7. 9. 19:47

 

 

 

 

어쩌다 보니 도시락을 준비하지 않은 더운 날,

목마름과 시장기 때문에 거의 본능적으로 들어간 곳이다.

맥주집이지만 먹을 만한 것도 있고.

가격도 착하고.

 

 

 

 

 

 

 

 

 

입구인 가든을 비롯하여 아래 위층 구석구석 사람들이 앉았지만

날씨 탓에 바람이 통하는 시원한 곳에 앉았더니

옆자리 할머님, 날씨 덥네요 등등 인사 몇 마디 하다가 아예 내 자리로 오신다.

 

이야기를 듣던 중 슬쩍 옆에 와 있던 점원에게 '할머님 드시는 것과 같은 걸로' 주문하였다.

맥주만은 다르게 할머님은 라들러, 나는 헤페바이첸. 

 

3년 전 먼저 가신 남편을 날마다 매순간 생각하신다는 81세 할머님은,

슬픔을 말할 때도 기운차시다.

"날마다 매 순간 남편이 묻는다우,

지금 어디를 걷는지, 무엇을 마시는지,

심지어 오늘 무슨 옷을 입었는지."

 

그래서 입고 계신 원피스가 유난히 어울린다고 했더니

남편으로부터 언젠가 생일선물로 받았던 옷이라 신다.

 

"아가씬 어째서 이 먼 데까지 왔누?"

(아가씨 절대 아닌데요 하려다가 꾹 참았다)

다행히 할머닌 대답 같은 건 기다리지 않는 사람,

흑림 개울처럼 줄줄줄~

말씀하기에 쉼이 없으시다.

 

"드레스덴에서 태어나

부모님 일찍 돌아가신 3남매 중 중간,

어찌어찌 끼니라도 준다기에 쾰른에 가서

일하며 학교다니고 이태리 갔다가 ......."

"사람의 본성을 알아보는데는 전쟁 만한 게 없어,

혹독했지" 

..........

이 소재면 소설 몇 권은 쓰겠네요 했더니

주름진 미소로 그럴 것 같다 신다.

 

시련의 시절에 대해서는 호령하듯 씩씩하고,

외로움도 손 한번 저음으로써 일갈해 버리신다.

그리스인 조르바가 연상되는 어르신,

덕분에 맥주맛이 좋았다.

 

 

 

 

 

 

 

 

이런 날은 국수가 그립다.

 

  • 노루2019.07.09 18:01 신고

    저 할머니 이해가 돼요.
    그리고 'simple' 한 스타일의 저 원피스 ...

    저 할머니 세대의 독일인들 중에 고생한 사람들이
    많았더군요. 그래서 오스트랄리아로 오게 된 사람들도
    많았고요.

    사진 보니 오랜만에 근처의 'CB & Potts Restaurant & Brewery'에
    가서 'Big Horn' 헤페바이첸 큰 머그잔 한 잔 마시고파지네요.
    젊은이들과 자주 가던 때가 그러고 보니 십 년도 더 전이네요.

    숲지기님은 국수를 무척 좋아하시나봐요.

    답글
    • 숲지기2019.07.10 00:30

      헤페바이첸 1리터짜리였습니다.
      맥주맛 좋기로 지역에서 알려진 포겔브로이에서였고요.
      노루님 교수님이시니 제자들과 함께하섰을 것 같고요
      얼마나 근사한 분위기였알지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전쟁이 나면 전쟁터는 남자들이 무대가 되지만
      여자들은 무대 그 뒤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네, 국수 많이 좋아합니다.

    • 노루2019.07.11 03:09 신고

      제자들은 아니고요. 덴버대 교수, 그리고 박사 과정의 대학원생(지금은
      다른 주의 주립대 교수)이었지요.

    • 숲지기2019.07.11 15:28

      제가 제일 존경하는 직업이 선생님입니다.
      큰학교 선생님이신 노루님은 큰 제자들을 많이 두셨지요?
      왕 부럽습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하시는 분들이시지요.

      그렇죠, 부럽고 존경스럽지만 저에겐 그런 재주가 없습니다.


      할머님 입으신 원피스 색상 참 예뻐요.
      기회가 되면 저도 한번 시도해 보고 싶을 만큼요.

  • 이쁜준서2019.07.09 21:50 신고

    81세이시라는데도 정정 하십니다.
    먼저 가신 남편을 매 순간 생각하신다는 것도,
    우리나라 할머님들과 그 정서는 비슷하다 싶습니다.
    우연하게 낯선 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식사하고,
    맥주 마시고, 이 정도이면 길가다 작은 들꽃 만난 듯 하지 싶습니다.

    답글
    • 숲지기2019.07.10 00:35

      참 정정하시다고 저도 생각했습니다.
      미망인이 된다는 것은 쓸쓸하고 슬픈 일일 겁니다.
      맞습니다,
      대화를 하면서 길가다가 들꽃을 만난 듯 하였습니다.
      독일은 흑심은 산골인자라
      사람이 귀합니다. 아무나 만나면 금방 친해질 수 있고요.

  • 파란편지2019.07.10 16:06 신고

    "날마다 매 순간 남편이 묻는다우.
    지금 어디를 걷는지, 무엇을 마시는지.
    심지어 오늘 무슨 옷을 입었는지."

    이건 報告입니다. 남편에 대한, 사람들에 대한 보고.
    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철학 같기도 합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본성을 알아보는 데는......"
    그건 너무나 직설적이어서(솔직해서) 두렵습니다.
    두려울 것 같았습니다.
    "내가 너희들 본성을 좀 알아보겠다!"
    누군가 난데없이 그러고 나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가씬 어째서 이 먼 데까지 왔누?"
    그건 당연히 긴 대답일 것이므로
    꼭 알아야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듣게 되면 간단하기는커녕 '이건 예삿일이 아니구나!'
    혹은 '이 일을............' 하고, 어떻게 할 수도 없을 것이어서
    굳이 대답을 듣지 않고 넘어갔을 것입니다.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숲지기님은
    어쨌든 괜찮은 편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어디로든 갈 수 없으면 갈 곳은 단 한 군데밖에는 없습니다.

    답글
    • 숲지기2019.07.10 16:40

      아시겠지만, 어투는 우리 할머님 비슷하게 고쳤습니다.
      이 어르신은 원래 '우렁찬' 어투셨죠.

      전쟁을 겪은 분들이 전쟁이야기를 할 때 저는 늘 작아집니다.
      형제끼리 토닥토닥 싸우는 것이랑은 다른 것일 테니까요.
      인성을 알아보겠다고 누가 난데없이 ㅋㅋㅋ
      하하 교장선생님 ㅋㅋ 웃을 문장이 아님에도 웃음이 터졌습니다.
      이 글을 옥황상제나 하나님 혹은 저 위에 계시는 많은 이름 모를 분들이
      읽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하..

      흑림이, 흑림 사람들이 시골스럽습니다.
      눈이 마주치면 미소를 짓고 (하나마나한)말 몇 마디를 꼭 하지요.
      제가 괜찮은 게 아니지 싶고요,
      하나마나한 걸 한 게 의외로 괜찮아 보이지 싶습니다 하하

  • 추풍령2019.09.12 20:23 신고

    맥주집에 들렸다가 우연이 드레스텐에서 오신 할머니를 만나셨군요.
    드레스텐 대폭격은 1945년2월13일에 있었던 대비극입니다.
    참말로 끔직하였읍니다.
    시간 나시면 저의 블로그 6 페이지 "드레스텐의 대공습"을 한번 읽어 보십사하는 부탁입니다.



    답글
    • 숲지기2019.09.16 15:13

      전에 읽은 적이 있습니다 헨리 정님.
      프랑스 혁명과 세계대전 등등 근래 유럽사에 대해
      아주 많은 지식을 얻었는 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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