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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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과 수직 /'경계'란 없다

진실 혹은 거짓

숲 지기 2021. 5. 12. 06:20

 

 

 

진실 혹은 거짓

/서형국

 

  남자에겐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가 있었다

  물을 주지 않아도 시들지 않는 나무

 

  협상을 합시다

 

  내 수중엔 이틀을 버틸 술값이 있고 당신은 나와 흥정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나는 오래 살고 싶고 명예를 갖고 싶으며 후손에게 오래 기억되고 싶소 단,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데 남의 불행을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빈틈없는 제안이었다

 

  날이 밝아 탁자엔 퇴고를 마친 원고 뭉치 위로 한 뼘이나 길어진 나무의 그림자가 꼭 두 잔이 모자랐던 술병을 끌어안고 연리지로 뻗어 있었다

 

  세월은 흘렀고

  남자는 헌책방에서 간간이 펼쳐진다는 소문이 돌았다

 

  완벽한 거래였다

 

 

 

 

ㅡ'시골시인-K' 걷는사람, 2021

 

...............................

 

 

 

이 창작시를 읽으며 이윤기 선생을 떠올렸다.

이미 여러 번 블로그에 언급을 한 적이 있는 이야기의 재탕이고

그리스 신화의 남자, 바로 그 선생이다.

약 20여년 전 쯤일까,

그때도 선생은 신화의 고장 살로니키(그리스)에 신화 채집일로 가는 길이라고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며칠 간 들렀고 

교민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 독일 현역 문인들과 늦은 술자리도 가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깐깐한 지성의 깡 마른 백발의 노신사셨던 선생은

한쪽 귀로 잘 듣지 못하여서 큰 소리로 외치듯 나는 대화를 했었다. 

그와의 인터뷰 내용을 어딘가에 실어야 했으므로 

그때까지도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다는 그리스 신화이야기와 선생 자신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운이 좋았다.

 

  • 파란편지2021.05.14 01:29 신고

    시인의 이야기겠지요?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저 그림이 그걸 잘 보여주는 것 같고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생각하니까 쓸쓸해집니다.
    사는 게 다 그런 건데도 그렇습니다.

    이윤기 선생의 신화 이야기를 열심히 읽은 날들이 있었습니다.
    제게는 그때가 지금보다 분주하고도 좋은 날들이었죠.

    답글
    • 숲지기2021.05.14 12:32

      언젠가는 말입니다,
      아뇨 요즘도 벌써부터 교장선생님 이야기를 감히 하고 다닐 것 같아요.
      물론 제 이야기를 들어줄 대상만 있다면 말입니다.

      저 같이 자발적 소외를 택하여 사는 이들은
      코로나 시대의 강요적 단절이 쉬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결과적으론 말입니다.

      이윤기 선생을 만났을 때, 연세에 비해 너무나 열정적이고 깨어 계셨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도 그분 연세가 사실은 많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렇게 여겼었는지 ....
      너무 어렸던(어리석었던) 저의 눈 탓이지요.


    • 파란편지2021.05.14 16:51 신고

      그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숲지기님은 그 숲속에서
      저는 이제 이 유폐된 듯한 공간에서
      아쉬워하고 있군요.
      그렇지만 저는 괜찮아할게요.
      이만큼도 얼마나 소중한 것일까 생각하면 참 고마운 것이니까요.
      제가 어디 가서 숲지기님을 만나겠어요.
      만나줄 사람이나 있겠어요?

      공연한 트집일 수도 있지만, 예술을 하는 분들은 참 잘 태어났다 싶기도 하고 그렇게 몰두하는 모습이 안타까울 때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런 이들은 저를 불쌍하게 여기겠지만요.

    • 숲지기2021.05.15 00:32

      고맙습니다 교장선생님.
      오늘 특히나 스승의 날이어서 더욱 뜻깊습니다.

      인연의 수를 늘일수록 마음이 허해진다는 것을 압니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은 없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 저는 마음의 빈 곳을 사람으로써만이 아니고도 채우는 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방법이 철석처럼 단단하진 않습니다.
      큰 비에 구멍이 뚫리고 또 바람엔 쓰러질 듯 합니다 .
      하하 쓰려졌습니다요.
      요즘 특히나, 눈에도 안 보이는 아조 쪼끄만 바이러스때문에도 위태위태합니다요.

    • 파란편지2021.05.15 12:04 신고

      마음의 빈 곳을 채우는 방법 같은 걸 철석처럼 단단하게 가질 필요는 없겠지요?
      그걸 뭐하려고...
      그렇게 지내다가 더 좋은 길이 보이면 얼른 갈아타야 하니까요.
      그렇다고 사람들을 찾아나서는 방법으로 갈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 같고요.

      '코로나'는... 이 세상이 쩔쩔매는 걸 보고 자연은 많이도 망가뜨려놓고도 형편없구나, 아직 멀었구나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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