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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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서랍/Y, 입실론 이야기

불멸에 대하여

숲 지기 2019. 6. 15. 01:32

 

 

불멸의 사랑 / 정용주

 

이제 눈으로 그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차라리 그것이 나은 것이다

아픈 날들이었다

눈으로 사랑을 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병들게 한다 나는 이제 어느 시인의 싯구도 인용하지 않으며 어떤 폐인의 절망도 동조하지 않고 사랑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랑의 이름으로

천사가 되는 자와

광인이 되는 자와 노예가 되는 자의 이름은 다만 하나일 뿐이고 그것의 이름이 나였다 심장을 재로 바꾼 그의 영혼에 내 육신을 순교한다 이제 눈으로 다시는 사랑을 보지 않는다

 

 

 

 

 

 

 

 

 

이 참혹한 불멸

/정용주

그래, 사랑이 가고 사랑이 오고
나를 번복하고 나를 의심하고
비로소 나를 불신하게 되었을 때
서리 묻은 아침 꽃처럼
네가 스스로 있을 때,
온 밤을 밀고 가는
저 둥근 달처럼
참혹한 이 사랑을 견디고 싶었다
그러나 그리하지 못했다
나를 변명하고 나를 옹호하는 밤이 지나
혼잣소리의 아침이
문창호지 검은 껍질을 벗긴다
나를 구겨 넣기 위해 소주를 마신다
깊은 굴속으로 흘러내리는
차갑고 구불거리는 불멸을
통점을 긁고 가는 냉소여!

 

 

 

 

 

 

 

 

 

 

 

.........................

 

내 생활에 하염없이 '색'이 바래질 때

떠올린 시,

'불멸'이 제목에서부터 틀어간 시들.

 

몇년의 거리를 두고 쓰여진 이 시들은 놀랍게도(어쩌면 당연하게도)

같은 시인이 썼다.

 

지금은 밭일 가기 직전,  귀가 후

다시 써야겠다. ....

 

 

 

(사진의 모델은 내 텃밭의 양귀비여사들)

 

 

  • 파란편지2019.06.15 14:2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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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부(서정주)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사십 년인가 오십 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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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신부"도 모른 채 살았고, 저 "불멸"도 모른 채, 알아보고자 하지도 않은 채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답글
    • 숲지기2019.06.15 17:32

      대책없는 오해 이야기네요.
      신부가 좀 음탕하면 뭐 어떻습니까 ㅎㅎ
      그 길로 줄행랑을 친 신랑에 비하면요.

    • 파란편지2019.06.16 00:25 신고

      그러게요^^
      그러니까 시에까지 등장했는지는 몰라도 한심한 사람이죠.
      색시도 그까짓 녀석을 왜 기다렸는지......

    • 숲지기2019.06.16 00:57

      저에게는,
      서정주 시인께서 저 이야기를 소재로 시를 쓰신 게 더 놀랍습니다.
      첫날밤이 지나고 한참 세월이 흐른 뒤, '매운'재가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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