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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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과 수직 /이 순간

강아지를 기르고 싶지만

숲 지기 2019. 10. 6. 07:47

1년에 몇 번 쯤은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게 연중 모차르트에 푹 빠져서 한 며칠 모차르트만 듣는 빈도와 비슷하다.

듣던 곡 또 듣고, 어떤 주제 테마는 마당일 하는 동안에도 흥얼거리다 보면

어느 순간에 '아 이렇게 유아스러워도 되나?'싶은 지점에 이르는데,

딱 그때까지다.

그 후 얼마간은 거들떠도 안 본다 모차르트를.

 

 

 

 

다시 강아지 얘기로 돌아가서,

꿈에도 그리던 여리고 예쁜 강아지 한마리를 데려왔다 치자.

밥도 주고 놀아도 주는 사이

녀석은 뻥튀기처럼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환상적인 얼마 간의 나날을 보내겠지.

그 다음 다다르는 일상,

녀석은 클대로 커지겠고

나는 강아지에게 강아지는 나에게 길들여 질거야. 

마치 시멘트에 물을 부은 그 후처럼 딱 붙어서

서로의 사이가 돌처럼 단단해질 거라는 거지.

 

이때부터는 강아지와 사람사이라기 보다는

생각이든 몸이든 서로를 따로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고 

상대방을 지켜줘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운명까지도 나눈 듯 해질 거라고.

맞아 '반려견'이라는 말이 괜히 생겼겠냐구.

 

중동지역은 유사이래 전쟁이 꾾이지 않고,

어딘가에는 숲이 사라지고 있어서 이 지구가 온난화되고 있다 하고

태평양에 어마어마한 섬까지 새로 생겼다는 쓰레기며 플라스틱은 또 어떤가....

이런 와중에 한 소중한 생명을 떠맡는다고?

단지 나의 이기적인 소유욕 때문에?

함께 기거를 한다는 가정 하에서도 문제가 없는 게 아니다. 

우선 그의 모든 구석을 다 인정할 수 있냐는 것도 따지고 볼 일니까.

네발로 걷고

어떤 땐 뒷다리 하나를 번쩍 드는 일까지 말이지.

 

고민에 고민을 해보았지만 이번에도 아닌 것 같아. 

나만 주시할 눈빛을 매일 바라보는 일은 고통일 것이고

나 따문에 더 나은 생의 기회를 얻지 못하기라도 한다면 그건 더 불행한 일이고........

그래, 참는 김에

이대로 쭉 더 참자.

 

 

 

 

무무 미안,네가 있다는 걸 잠시 깜박했었네.

*참고로 내가 좋아하는 강아진 슈나우체, 무무도 이 족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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