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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흑림살이 /수처작주隨處.. (173)
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하루 종일 웃음을 장착하게 하는, 초록의 계절이 왔다. 미안할 만큼 기쁘고 또 일일이 인사하고 싶어진다 나무에게 숲에게 소란스레 흐르는 개울물에게. 운전 중 퍽퍽 찍은 것이어서 어디 내놓을 정도는 아니지만 간만에 맑은 4월, 내가 얻은 산골의 봄 전경이다. 무슨 말인지 덧붙이는 것이 사족이 아니ㄹ까 싶도록 초록초록 저 빈 가지들에 맺힌 풍경이 좋다. 눈 녹은 물이 도랑바위를 한번 문지르며 흐르는 저 봄개울은 어떻고! 아, 이제 보니 서둘러 싹 낸 저 가지는 갯버들인가 보다. 멀쩡하게만 보이는 개울물에 손을 넣거나 혹은 맨발로 들어가면 아직은 비명을 지를 수 있다. 의외로 얼음물처럼 차갑기 때문. 여기까진 산너머 아랫동네였고, 우리동넨 이제 막 개나리가 집집마다 샛노랗다. 축복의 주말, 들깨잎 싹과 고추모..
된장을 담갔다. 오랜 객지 생활에, 그 어떤 낯 설고 부정적인 감정이 목까지 차오를 때도 된장국 한 사발 들이키고 나면 만사가 다시 평온해지곤 했다. 된장은 그러니까 나의 소울푸드인 것은 물론이고 내 정서를 가지런히 하는 마약 같은 식품인 셈. 이토록 소중한 된장을 만들자면 우선 콩부터 씻고 불려서 삶은 후 아래처럼 모양을 만든다. 이렇게 작년 11월에 메주를 쒔고 광주리에 담아 거실에서 건조시킬까 했지만 특유의 향(지독한) 때문에 단 이틀 만에 발코니에 내놓고 겨울을 났다. 그리고는 오늘 춘삼월 맑고 개운한 날, 필요한 재료를 준비해서 장 담그기를 시작했다. 재료라고 했댔자 소금, 생수, 메주와 이를 다 담을 항아리가 전부이지만. 어릴 때 나는 대가족 속에서 살았다. 살림을 책임지셨던 백모께선 한학을 ..
간밤에 눈이 내렸었고 아침 나뭇가지엔 눈꽃이 수려했었다. 그러나 대지가 더웠던지 낮이 너무 길었던지 아껴서 나선 오후 산책엔 거의 녹고 있었다. 벌써 봄눈이란 말인가? 호숫가도 쏘다녔다. 풀벌레도 물곤충도 없고 바람마저 한 줄기 없는 참 이상한 날 얼다 만 호수면이 겨울가지를 보여주었다. 오래 물가에 서서 나뭇가지의 문장을 읽고 또 읽다.
미샤엘동산, 저 팻말이 가리키는 곳으로 가는 날이다. 매년 1월 6일 만나기로 하고 수년 동안 지켜내고 있기 때문이다. 변함없이 지켜진 것은 아니고 우리 중에 다른 대륙으로 간 친구들도 있고, 아예 딴 세상으로 가서 영영 돌아올 수 없는 친구도 있다. 아직 이 곳에 남은 우리는 그래서 한 해의 숙제를 하듯 얼굴을 보고 또 보여준다. 산 위에 작은 카펠레가 있는데, 이 교회 이름이 미샤엘동산. 아래 사진들은 그 안의 풍경. 이름따라 천사 미샤엘이 악령을 죽이는 그림. 이 동산 자리에 진짜로 미샤엘 천사가 출현을 했고 여러 신령스런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오기도 한다. 카펠레 안의 벽화 천정벽화 친구들과 카펠레에서 만나 연례 행사처럼 주변 숲길을 한바퀴 빙 둘러 걷고 다시 되돌아 온다. 청명하고 포근하지만 강..
숲을 한참 걷고 난 뒤에 펼쳐진 보리밭, 매년 1월 6일에 걷는 친구들과의 산행 중이었다. 앞에 예쁜 녀석은 아니타의 강아지. 하늘이 매우 청명한 섭씨 12도의 날씨, 이 곳을 걸었던 중 제일 포근하다. 거의 눈이 쌓였었고, 영하의 매서운 강풍이나 안개가 꼈었던 예년에 비하면 거의 황제급 날씨. 낙엽과 진흙이 뒤섞인 숲 진흙탕길 진흙이 신발에 어찌나 달라 붙는지, 혼자 보리싹 이랑으로 뛰쳐 나와 걸었다. 발 아래 보리싹을 밟는 촉감도 나쁘지 않았고 이맘때 보리는 한번 밟아 줘야 한다는 걸 어디선가 들었던 터라 죄책감없이 즈려밟았다. 눈이 쌓였을 때도 이곳을 보며 걸었을텐데, 처음 와본 곳인 듯 새롭다. 퍼런 1월초에 눈 대신 보리밭을 보리라고 어디 생각이나 했었어야지. 여긴 햇볕을 받는 곳이고 이 쪽은 ..
해발 1천미터 고지 뒷산엔 눈이 쌓이지만, 6백미터 지점 산중턱인 여긴 다행히 비가 내린다. 사진의 낙엽길은 등산로로 연결된 뒷마당 치워도 치워도 다시 수북한 낙엽들은 오는 비가 마치 접착제라도 된 듯 바닥에 눌러 붙었다. 올핸 제라늄 정리도 늦다 추위가 지각을 하는 통에 쉬엄쉬엄.... 낙엽 치우는 도구는 딱 요 빗자루 하나, 이웃들은 바람을 불어 쓸어 내거나, 흡입을 하는 기계를 더러 쓰지만 나는 굳이 빗자루를 고집한다. 한햇동안 마당 나무들이 이룬 낙엽 농사 아닌가, 나름 소중했을 것들을 너무 쉽게 없애면 안 될 것 같다. 노동인가 놀이인가, 얼마전까지는 노동이었지만 이제 점차 놀이 쪽으로 기운다. 마당 한 곳엔 이끼가 새파랗게 살아나고 있다. 다른 계절엔 죽은 듯 지내다가도 꽃들이 지고, 나무의 ..
저 수풀 위에서 또 넘어졌다. 두말 할 필요도 없이 발을 헛디딘 내 불찰, 보는 이가 없어서 창피할 일이 없음에도 참 부끄러웠다. 털고 일어서려다가 주저앉은 김에 앉은 키만한 풀들과 좀 놀았다. 넘어진 자리에서 추스리고 일어나니 저 풍경이 기다리네. 하긴 저 풍경을 보며 걷다가 풀 위로 자빠졌지만 말이다. 발 디딘 곳은 뒷산 중에서도 제일 높은 곳이고 아래 내려다 보이는 호수는 블로그에 여러 번 언급했던 뭄멜제*. 여기서 한 달음에 뛰어내리면 호수에 풍덩 빠질 듯 하지만 호수까지는 거의 140m 쯤 높이 차이가 있다. 말 하기 쉬워서 입버릇처럼 뒷산이라 하지만, 아담하고 만만한 느낌의 집 뒷산은 좀 아닌 검은 숲 그대로 검고 웅장한 숲산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뒤를 돌아보면 아래 사진이 나온다. 흑림 북..
잠시 떠나온 내집 거실의 식물식구들 작년의 잎을 여전히 달고 있는 수국은 꽃 피울 준비를 하고 있다. 작년엔 잎만 무성했었으니 꽃기다림이 클 수 밖에. 발아날짜를 얼추 맞춰서 한해 농사를 맡아 줄 씨앗들을 저 흙 속에 심었다. 각종 토마토들, 각종 고추들, 들깨 고구마 더덕까지 .... 여행 후 다시 돌아가면 어리고 여린 싹들이 꼼지락꼼지락 세상에 나와 있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 것은 너무 자의적이다. 나를 기다려줄 생명이 있다는 것을 여행동안 상기시키며 귀가에 대한 기대를 극대화해보려는 아주 얄팍 쪼잔한~ ㅋㅋ 그러나 수가 다 드러나서 주모자인 내가 자신도 속이지 못하는 이 엉성함을 또 어떡하냐구 ㅋ ) 말 없이 착하기만 한 것들, 여행지에 데려오지 못해서 미안... 특히 마음이 쓰이는 소나무, 물..
성탄 이야기에 근거한 3인의 동방박사를 기념하는 날인 1월 6일을 우리 만남의 날로 정한지 몇년이 되었다. (내 블로그엔 거의 매년 이 날 이야기를 써왔던 것 같다) 뜻을 모아 여러 해 만나왔던 친구들은 이제 흩어져 두 친구는 먼 남미의 파라구아이와 우루구아이로 이주하였고 더 멀리 떠나서 다시는 올 수 없는 곳에 간 친구도 있다. 두번째 사진이 미샤엘동산 카펠레(작은 교회)의 외부모습이라면 위의 사진은 내부모습이다. 매년 같은 날 와서 둘러보지만, 이곳의 분위기는 긍정적인 기운으로 마치 천사 미샤엘이 고단한 나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 주는 듯 하다. 실제로 이 곳에 미샤엘 천사가 나타났으므로 주민들은 작은 교회를 지어 기려왔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떠난지 3년이 된 친구 미샤엘이 교회 구석구석을 안내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