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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오후 4시 시작예정인데 시계탑을 보니 시계탑에 5분 전이다. 한해 딱 한번 교회가는 12월 24일 성탄전야, 교회에 와 보니 성탄예배가 야외에서 진행된단다. 코로나시국이 선포되었던 지난 몇 년간 교회 문을 닫았던 것에 비해 이렇게라도 할 수 있는 게 어디냐며 다들 서서 시작을 기다린다. 참 많이 생략되고 엉성하지만, 극을 주도할 아이들이 오른쪽 앞으로 등장했다. 앞에 모인 사람들은 그냥 구경꾼이 아닌 적어도 1년에 한번 예배를 보는 예배꾼들. 이 특별한 사정을 다 감안하고 이해하는 사람들 드디어 징슈필 형식의 성극이 시작되고, 만삭의 마리아와 요셉이 하룻밤 묵을 곳을 찾아다닌다. 마을 어디에도 빈 방이 없고, 마지막 한 집에서 "마굿간이라도 좋다면....." 한다. 근데 마리아와 동행한 요셉이 거의 할아..
이것이야말로 놀이이다. 이맘때라야 놀 수 있는 극한의 즐거움이고. 누구에게도 빌려주고 싶지 않은 내 소유의 성탄놀이. 그 하나가 건조된 꽃으로 만든 촛대장식. 전문적으로 말린 것이 아니고, 내 마당에 피었던 꽃들을 버리지 못했을 뿐이다. 이런 식으로 집어서 어디든 걸어두면 저절로 마르더라 얼추 리스 모양을 잡았다. 말려둔 장미꽃과 그 열매, 수국과 푸른 침엽수를 둥글게 묶고 로맨틱한 리본을 달았다. 요렇게 두른 뒤, 양초만 꽂으면 완성! 재료가 남아서 작게 하나 더 만들고. 그 외 남은 푸른 가지로 둥글게 묶고 있는 리본을 묶고 그 아래 종 모양 등을 달았다. 코로나 전후해서 2개 두입했는데, 이제서야 제대로 달았다. 매년 같은 식물에, 같은 문구 작년에 왔던 각설이마냥 이 친구도 꺼내서 앉히고 2m 가..
해발 1천미터 고지 뒷산엔 눈이 쌓이지만, 6백미터 지점 산중턱인 여긴 다행히 비가 내린다. 사진의 낙엽길은 등산로로 연결된 뒷마당 치워도 치워도 다시 수북한 낙엽들은 오는 비가 마치 접착제라도 된 듯 바닥에 눌러 붙었다. 올핸 제라늄 정리도 늦다 추위가 지각을 하는 통에 쉬엄쉬엄.... 낙엽 치우는 도구는 딱 요 빗자루 하나, 이웃들은 바람을 불어 쓸어 내거나, 흡입을 하는 기계를 더러 쓰지만 나는 굳이 빗자루를 고집한다. 한햇동안 마당 나무들이 이룬 낙엽 농사 아닌가, 나름 소중했을 것들을 너무 쉽게 없애면 안 될 것 같다. 노동인가 놀이인가, 얼마전까지는 노동이었지만 이제 점차 놀이 쪽으로 기운다. 마당 한 곳엔 이끼가 새파랗게 살아나고 있다. 다른 계절엔 죽은 듯 지내다가도 꽃들이 지고, 나무의 ..
성탄시장, 종일 비 오는 중에 친구와 잠시 배회하였다. 딱 봐도 무슨 동화인지 알 듯한데, 더 실감나도록 동화 전체를 읽는 인자한 목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다. 심술을 부리는 언니들과 대조적으로 아궁이 잿더미 앞에 선 가엾은 누구, 그 누군가를 비둘기들이 위로해 주고 있다. 여긴 늑대와 빨간모자? 앞에서 뜨거운 토론을 벌이는 가족. 저 숲이 흑림이었지 아마 하하 동화가 들리는 동안 당나귀도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다시 한번 어린이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다. 과자가게에 손님이 하나도 없다. 비가 제법 내리는 중. 동화를 듣던 아이가 이야기에 앞질러 다 말해주고 있다. 누가 동화를 읽었고 읽지 않았는지 나는 알지롱! 비가 주룩주룩.... 바닥에 푹신한 톱밥을 깔아서 비가 내림에도 다니기에 질척대지 않고..
말고 / 김윤현 물이 많아 이젠 됐다 싶을 때 더해지는 물 같은 관심 말고 이만하면 따뜻하다 싶을 때 더해지는 온기 같은 친절도 말고 배고프지 않을 때 건네는 한술 밥 같은 인정도 말고 땀을 다 식혔다 싶을 때 드리워지는 그늘 같은 다가섬도 말고 어둠에서 다 빠져나왔을 때 내미는 손길 같은 도움도 말고 지루한 장마 끝에 더 뿌려지는 빗줄기 같은 사랑도 말고 - ´반대편으로 걷고 싶을 때가 있다 ´ 한티재 2022 주름 / 이대흠 아침 일찍 일어나 빗소리 듣는 것은 햇차 한잔 쪼르릉 따를 때처럼 귀 맑은 것이어서 음악을 끄고 앉아 빗소리 듣노라면 웅덩이에 새겨지는 동그란 파문들이 모이고 모여서 주름을 이루는 것이 보이네 휘어지며 늘어나는 물의 주름을 보며 삶이 고달파 울 일 있다면 그 울..
말 /김성신 두부 같은 집이었지, 바위처럼 단단한 집이었지 당신의 젖은 귀와 부르튼 입술을 생각해요 오체투지, 바닥에 낮게 엎디는 참례의 시간 맹금처럼 날 선 발톱이 풍경을 수습하고 비로소 내려앉은 마음들은 먼 곳을 바라보네 어제와 오늘 사이의 음소가 분절될 때 울적의 리듬은 박장대소와 굿거리장단에도 후렴을 맞추지 어디에도 가닿지 못한 묵음이 벽을 뚫고 울려 퍼지지 허공을 가로질러 바라보면 이 세상은 때로 질문들의 증명 먼 곳에 있는 것이 가장 가까운 곳으로 숨 쉴 때 가로지르는 것이, 내 옆에 있었음으로 누군가 되물어도 입술을 깨물 뿐 말의 섬모는 부드럽지만 함부로 내뱉을수록 공허해져 끝은 뼈처럼 하얗구나 함부로 내뱉은 말들이 부유하는 소란의 세계 돌아나가던 命이 여기서 저기로 ..
성격이 변했다. 회복될 수만 있다면, 뾰족한 불평 대신 두루뭉실 여생을 살겠다고 그땐 하루에도 여러 번 다짐했었다. 그 덕분인지 코로나로부터 살아났고, 빳빳하게 잘 살고 있다. '두리뭉실'은 그러나 지켜내지 못하는 듯 하다. 변한 성격 때문이다. 코로나 앓기 전엔 손님이라도 오면 그때서야 후다닥 집을 치웠는데, 이젠 평상 시에도 손님 오기 직전처럼 해놔야 한다. '모든 것이 제 자리에 가지른...' 이 1절이고 '반들반들 날마다 광 내고 닦아...' 가 2절이던 내 어머님 애창곡을 살림 참 못 하는 내가 이제서야 알아간다고나 할까. 문제는 심한 정도이다. 창틀의 얼룩은 물론이고 묻은 몇톨 먼지도 마치 마음 굴곡에 쌓인 듯 하다. 그래서 운전 중에도 근무 중에도 먼지 생각에 불편하다. 참 거북한 주적이 되..
생각해 보니, 11월이어서 참 좋다. 한해의 계획을 주로 11월에 하는데, 내년 다이어리를 받았고 그 안에 큰 묶음의 계획을 세우는데 머릿속이 비좁도록 하고 싶은 일이 많다. 거의 매년 작은 것만 쓰다가 할일이 많은 내년을 대비해서 큰 다이어리로 바꿨다. 시간이 7시부터 19시까지 , 그러니까 일 하는 시간을 나눠 쓰도록 한 것이다. 애써 바꾼 글씨체로 저 큰 다이어리를 채워 간다는 상상은 요즘 가지는 소박한 기쁨이다. 작은 다이어리도 내년 것으로 두어 개 더 구입했다. 자꾸 되뇌이긴 뭣하지만 교정한 글씨체로 재미 좀 보려는 속셈으로... 이 정도 사치쯤은 부려도 되잖을까. 어떤 허기졌던 아점심, 날짜가 언제였더라?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집 청소를 한 휴일이었지 싶은데... 그날 머슴 센드위치를 ..
모과 /정호승 가을 창가에 노란 모과를 두고 바라보는 일이 내 인생의 가을이 가장 아름다울 때였다 가을이 깊어가자 시꺼멓게 썩어가는 모과를 보며 내 인생도 차차 썩어가기 시작했다 썩어가는 모과의 고요한 침묵을 보며 나도 조용히 침묵하기 시작했다 썩어가는 고통을 견디는 모과의 인내를 보며 나도 고통을 견디는 인내의 힘을 생각했다 모과는 썩어가면서도 침묵의 향기가 더 향기로웠다 나는 썩어갈수록 더 더러운 분노의 냄새가 났다 가을이 끝나고 창가에 첫눈이 올 무렵 모과 향기가 가장 향기로울 때 내 인생에서는 악취가 났다 눈길 /문태준 혹한이 와서 오늘은 큰 산도 앓는 소리를 냅니다 털모자를 쓰고 눈 덮인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피난하듯 내려오는 고라니 한마리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고라..
지난 내 생일날부터 글씨체 교정에 들어갔었다. 어언 몇 개월이 지나니 자리잡아 가는 느낌이다. 이 일을 왜 단행했는가 하면 일단 손글씨 쓰는 작업을 다시 해야겠다고 다짐했고, 그 작업을 하고도 내 글씨를 나 조차도 알아보지 못하는 참사가 비일비재했기 때문이었다. (이부분에서 참 웃기는 게, 독일어나 영어는 날림체가 아닌데 유독 한글만 지렁이로 그렸단 말씀) 선택한 글씨체는 빨리 쓰고, 쓰고 나서 읽기에 수월한 것으로 골랐다. 실습에는 만년필로 또박또박 하루 몇 장씩 일기를 썼다. 기회가 되는대로 아무 글이나 필사도 하였다. 양적으론 1달에 얇은 노트 1권을 썼다. 처음 쓸 땐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자꾸만 옛날 글체로 되돌아 갔었다. 그래도 기다리며 의식적으로 꾸준히 몇 개월을 하니 아주 천천히 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