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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늦은 오후 텃밭 삼매경 중 예보에도 없던 소나기로 오두막에서 라디오나 듣는데 어머나 동쪽 하늘에 찬란한 무지개가!! 잠깐이지만 쌍무지개도 떴다. 순간적으로 해가 짱! 하고 나타나니 보이는 잎잎들이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듯한 색상으로 빛난다. 아일랜드 속담에 보물은 무지개의 끝에 있다 했고 심술 많은 악마가 인간이 보지 못 하도록 보물을 무지개 끝에 보물을 숨겼다고도 한다. 그러고 보니 성경의 어느 부분엔 하나님 약속의 징표라 했던 것 같고 나의 큰어머님께선 무지개의 양 끝에 우물이 있어 그 뿌리를 묻고 있다 하셨다. 무지개의 끝엔 아무 것도 없다. 정말 아무 것도 없다. 말 나온 김에 무지개의 비밀을 더 캐내보면 무지개는 비의 커턴에 태양이 비침으로써 생긴다. 공기 중에 물방울이 많은 때(비 그친 ..
티스토리로 옮겨 오면서 블로그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가졌다. 고요한 산사를 방불케 하는 숲지기 생활에 블로그는 내가 누릴 수 있는 최대 사치의 장, 이 지경에도 숲지기의 분수를 지키고 싶었다고나 할까. 옛날 다음 블로그 때부터 친구 맺기를 자제하고 또 맺었던 관계도 돌려 드렸다. 그러한 나머지 다섯 손가락도 다 채우지 못할 만큼의 소중한 분들과 여러 해 깊고 만족한 관계(?)를 이어 오고 있다. 가끔은 꿈에서도 뵙고 텃밭일 중이나 운전 중에도 불쑥 그분들과의 댓글 대화가 생각나서 혼자 깔깔 웃게도 된다. 나에겐 이제 거의 식구 같은 분들께 고마울 뿐이다. 그러나 티스토리엔 '구독'이 있고 또한 '맞구독'도 있는데 구독 중인 인기 블로그에 댓글 달기를 주저하게 된다. 아이디 노출 유무에 따라 발생 가능한 ..
기어가는 본능은 뱀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머루 만한 청포도에게도 말릴 수 없는 본능이 있어 어디든 기어서 오른다. 사진엔 지붕으로 이미 기어올랐다. 옛날포도는 때깔 좋은 요즘 포도보다 달고 더 상큼하다. 텃밭을 오며가며 따먹었더니 여중시절 내 이빨 같다. 더러 빠지고 더러 새로 나고 하던. 잎을 조금만 들춰도 알알이 박힌 청포도가 드러난다. 나는 식물에게, 식물은 나에게 서로 아무 간섭없이 여름을 지낸 결과이다. 허리를 구부리거나 쪼그려 앉지 않아도 되는 상자텃밭을 준비 중이다. 텃밭 오두막 뒷편 하늘이 비 뿌리고싶어 안달이 난 듯 거뭇거뭇하네. 아주 오래 전에 구입하고 창고에 잠 재워뒀던 상자텃밭, 의외로 무거워서 몇 개 네모 만들고 중단했다. 네모 속에 퇴비와 잘라낸 나뭇가지며 잎들을 ..
꽃 /기형도 내 영혼이 타오르는 날이면 가슴 않는 그대 정원에서 온밤 내 뜨겁게 토해내는 피가 되어 꽃으로 설 것이다 그대라면 내 허리를 잘리어도 좋으리 짙은 입김으로 그대 가슴을 깁고 바람 부는 곳으로 머리를 두면 선 채로 잠이 들어도 좋을 것이다 ........................ ...... 위의 시를 쓴 기형도를 만난 적이 있다. 비 많이 내린 우중충한 늦가을 저녁 대학로에서...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연세대 강사 한분의 주선으로 모르는 여럿이 모였고 바벨탑 주민(언어가 달라 서로 소통이 불가능한)처럼 젖은 집단인 듯 앉아 있다가 목 뻣뻣하게 귀가했다. 이 음습한 기억의 단편을 살아오면서 수 없이 되뇌이게 된다 여름의 끝에서 문득 긴소매 윗도리가 필요할 때면 비 내리는 어둠을 홀..
이번엔 토론토에서 올린 티벳 원형춤 영상이다. 고구려 벽화 속의 장삼춤과 너무도 흡사하다고 이미 여러 번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다. 며칠 전부터 보고 또 보는 티벳춤, 내 속 어딘가 있을 법하고 그러나 어느 세대 부터선가 잊고 살아온 듯한 익숙한 노래와 또 몸짓이다. 몇 번을 무심코 보다가 유난히 눈길이 가는 소녀 춤꾼을 찾았다. 붉은 비단치마의, 춤맵시가 깜찍한 소녀이다. 영상 끝부분, 어두워진 뒤에도 군무를 추는데 소녀 춤꾼도 예외가 아니다. 이름 모를 예쁜 소녀.
이테스바흐 라는 독일 흑림 조그만 마을에 기다리던 보름달이 뜬 풍경. 비바람이 모질어서 기온이 10도 이하로 뚝 떨어졌지만 마음에 진 짐이 있어 보름달에게 하소연하려던 셈이다. 보슬비 내리는 늦은 오후, 달맞이 장소를 찾아 숲 언저리를 뒤지는 중 동쪽이 안 보여서 다시 다른 산 등성이로~~! 훤한 곳을 찾긴 했지만 이번에 동쪽이 어딘지.. 느낌으로 방향을 잡고 정차를 하고 달 오르기를 기다린다 숲동네의 푸른 순간. 앞에 막대기처럼 세운 것은 풍력발전기들, 아름다운 흑림 전경에 저들이 죽죽 막대기로 긋고 있다고나 할까. 암튼 에너지 자립엔 별 도움도 안 되면서 깨끗한 에너지 생산이라는 허울의 정치선전 이상만 하늘을 찌르고 있는 듯. 기다리고 또 기다시기, 예정된 달 오르는 시간이 지나고 또 한참 더 기다리..
구름이 숲을 독서하는 중이다. 느낌표가 많은 가문비나무 숲에서 붉은 열매로 마침표 찍는 건 마가목. 문장 바꿔 몇 행간 아래 고사리와 블루베리는 서로 숨고 숨겨서 주어가 도통 오리무중. 어지러운 틈에 돌 뚫고 나온 환한 이끼 구름을 만나 촉촉히 젖었네 나는 더 많이 젖었네. 구름에 읽힌 산, 산의 솟은 곳은 섬이 되는 중
6월 중순부터 7월 8월이 다 가도록 비 한방울 내리지 않더니 9월에 들면서 드디어 하늘에서 소식이 왔다. 비 뿌리는 일이 오래 잊고 있던 일처럼 까마득했을까 지난 과오에 대한 만회라도 하듯 거의 울부짖듯 천둥 번개 밤새 내리쳤다. 넝쿨콩, 콩이 단단해지기 전 콩꼬투리까지 먹는데 너무 가물었던 탓에 콩을 얻기보단 관상용 콩잎나무가 되어버렸다. 사진이 비스듬히 찍혔다 옆집 즉백나무 담장이 눕고 토마토 지지대들도 비틀거리네. 내 밭엔 멀쩡한 게 하나도 없다 다 이상해 하긴 뭐 나부터.... 한국애호박은 밭 가장자리를 슬슬 기어다니다가 어느새 옆집 헝가리댁네로 이사가려 한다. 미국의 사슴님이 보내주셨던 애호박 씨앗으로 자식을 보고 그 자식의 손자에 손자까지 튼튼히 싹트고 호박맺고 있다. 사슴님 감사해요. 날 ..
9월과 뜰 / 오규원 8월이 담장 너머로 다 둘러메고 가지 못한 늦여름이 바글바글 끓고 있는 뜰 한켠 까자귀나무 검은 그림자가 퍽 엎질러져 있다 그곳에 지나가던 새 한 마리 자기 그림자를 묻어버리고 쉬고 있다 - 오규원 시집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맹이(문학과 지성사 2005) 그 고요의 방 한 칸 /박해림 지금의 나는 내가 아닐지 모른다 내 것이 아닌지 모른다 누군가 지쳐 훌훌 벗어 던진 허물 성가셔서 물리쳐버린 욕망이난망欲忘而難忘 그 풍경에 놓인 징검돌이거나 침묵의 배경일지 모른다 하루하루 견딘다는 건 본래의 나를 찾기 위한 여정에 불과한 것 슴슴한 햇빛 아래 줄타기 놀이인 것 사투이거나, 몸부림이거나… 사막 한가운데를 달리는 우물 속 고요이거나 낯선 섬 하나 웅얼웅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