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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이 사진이 앞 글 끝부분. 사방이 어두워지는 중에 오두막에 켜 놓은 불빛은 홀로 떠오르는 밝음이 되었다. 오두막의 창 같은 저 유리면은 한때 독일에서 매우 유행한 유리벽돌(벽돌처럼 견고하되 햇볏은 통과시키는), 내가 고른 자재는 아니고 저 오두막을 지었다는 H할아버지의 의기양양한 설명을 오래 전에 들은 적이 있다. 빠득빠득 버티며 외가지를 딛고 선 내 자존감에서처럼 청포도 넝쿨에도 가을이 왔구나. 말라 쪼그라 드는 야생 포도를 씨앗째 먹는데, 검은 물체가 하늘로 푸드득 날았다 허기진 저녁새의 밥상을 내가 어지렵히고 있었구나. 그런가 하면 후미진 발밑에도 긴장한 한 덩이 큰 밤송이, 나 때문에 놀라 가던 걸음 멈춘 고슴도치다. "나 절대로 도치 아니야!"라고 말 하듯 웅크린 녀석. 오른 쪽으로 어둡게 더 ..
버찌 만한 총각무들. 가뭄에서 시작하여 가뭄으로 끝을 낸 지난 여름이 제 딴엔 버거웠다는 다른 표현이다. 그래도 동글동글 살아준 게 어딘가. 밭에 와서야 위로를 얻던 부족한 주인 때문에 네 잎에 구멍이 이리도 많아졌다니. 얼룩무늬토마토 해가 짧아지니 벌써 몇 주째 더는 익지 못하고 있다. 쉼 없이 수확했던 바질, 바질리쿰. 저 보랏빛 순을 잘라 소금과 함께 절구에 찧어 펴말리고 그것을 다시 절구에 찧으면 너무나 괜찮은 바질소금이 된다. 몇 포기는 화분으로 옮겨 오는 겨울을 집에서 나게 해야지. 노쇠한 들깻잎. 때가 되어 꽃을 보이고 또 그 속에 들깨까지 영그는 중대사를 치르느라 급격히 늙었다. 도무지 붉어지지 않는 고추들, 미쳤나봐! 사실은 붉은 고추 몇 개가 숨었다. 잔디 가장자리에 호박줄기가 있다. ..
메리골드차를 만들다, 선한 영향력으로 숲 지기 2022. 10. 14. 03:57 수정 공개 삭제 이름도 까마득하여 그냥 주황색 꽃이라 했는데, 어감도 예쁜 메리골드꽃이다. 에스더님이 서울에서의 고품격 쇼핑 목록에 이 꽃차가 있었고 첫눈에 마음에 들어 귀찮을 만큼 질문에 질문을 거듭하여 결국 차로 만들어 마셨다. 텃밭에 흔하디 흔한 꽃을 우선 따 모았다. 꽃인심이 좋아서 초여름부터 첫 서리가 내릴 때까지 환한 주황꽃 잔치를 쉼 없이 이어가는 꽃이다. 꽃잎이 빳빳한 어린 꽃만을, 이 만큼 따왔다. 키우기가 워낙 만만해서 마당 텃밭 발코니 창틀..... 틈이 생기는대로 심고 또 꽃을 본다. ㅗ 자 이제 꽃차를 만들어 볼 차례. 아주 크고 무거운 무쇠솥들을 용케 찾아냈다. 나무 주걱에 또 두꺼운,, 그 뭐랄까..
우리 삶 속으로 바이러스악몽이 침투하고 몇년 만에 함께 한 친구 생일행사였다. 첫 느낌은, 어찌하여 우리가 이토록 초고속으로 늙어 있을까 였다. 우리도 우리지만 요 몇년 사이 친구들 남편들은 폭삭 중늙은이가 되었다. 하긴 남얘기가 아니지. 불과 몇 년 사이에 세월이란 깡패가 우리에게 뭔 짓을 한거야? 농부의 정직한 팔둑에 그냥 웃음만 나온다. 밤 사진에서도 숨지 못하는 손마디는 돌을 만지는 조각가의 것만 같다.. 친구네는 나이를 그저 먹는 게 아니란다. 가족이 낸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게 이집 생일잔치 전통이라는 것. 친구는 족히 스무 개는 되어 보이는 단어쪽지 문제를 받았다. 상징 단어가 적힌 쪽지 문제를 제대로 풀어야 오늘부터 제 나이대로 인정된다. 위의 사진은 친구 어릴 때의 사진첩을 뒤지며 상징단어..
오늘은 이네스 생일, 한달 전부터 그녀 남편으로부터 비밀 초대가 있었고 나 또한 초대에 응한다고 비밀 리에 응답을 했었다. 절친 생일이 가까와 지면서 며칠 전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친구에게 가져갈 선물을 생각하는 일도 기쁨의 하나, 그러나 친구에게 무엇이 필요할까? 아무리 생각하여도 도무지 모르겠다. 약국을 하는 친구이고 어지간 한 것은 약국에 다 있으니 말이다. 결국 생각해 낸 것이 이틀 걸려 완성한 위의 코바늘 뜨기 엄지장갑. 색상도 친구가 좋아할 법한 것으로 골랐고 아래처럼 포장하여 사랑과 신뢰의 상징인 로즈마리 가지하나에 축하의 글귀가 새겨진 끈으로 묶었다. 그 다음은 농부인 내가 추수한 한해의 농작물들을 선물하기로 한다. 추수한 여러 작물을 탁자에 먼저 올려 놓고 장식으로 허수아비님도 어렵게 ..
사과나무 가지들, 이틀 전에 잘랐던 것인데 게을게을 하다가 해 질녘에서야 초록 컨테이너로 갖다 버리는 중. 여전히 버릴 게 너무 많은 텃밭 열렸던 사과가 거의 다 떨어진 뒤인 이틀 전에 손 가는대로 전지를 해놨었다. 보살핀 흔적이 없음에도 가지가 비좁도록 사과가 열리는 게 감사할 뿐 . 슙카레(앞바퀴가 하나에 양쪽 손잡이가 뒷편에 있는 운반기기)에 전지한 가지를 싣고 텃밭 입구 문을 나서서 초록 컨테이너로 가는 중. 왼쪽 팻말은 내 밭 거리의 이름인데 타게테스(지금 내 마당에 한창 피어 있는 황색?? 이름 모름)길이다. 여기가 골고다 언덕, 짧지만 비탈져서 저 운반기기를 밀며 오르자면 진땀이 난다. 저 길을 오르며 아, 어느 구세주도 이런 심경에 이런 걸음을 하지 않으셨을까 생각할 때가 있다. 물론 말도..
국수 법문 /이상국 그전에 종로 어디쯤 머리가 하얗게 센 보살이 끓여주는 국숫집이 있었어. 한그릇에 오백원 더 달라면 더 주고 없으면 그냥 먹고 그걸 온 서울이 다 알았다는 거야. 그 장사 몇십년 하다가 세상 뜨자 종로 바닥에 사리 같은 소문이 남기를 젊어 그를 버리고 간 서방이 차마 집에는 못 들어오고 어디서 배곯을까봐 평생 국수를 삶아 그 많은 사람을 먹였다는 거야. - 저물어도 돌아갈 줄 모르는 사람, 창비 2021 슬픔은 헝겊이다 /문정희 몸에 둘둘 감고 산다 날줄 씨줄 촘촘한 피륙이 몸을 감싸면 어떤 화살이 와도 나를 뚫지 못하리라 아픔의 바늘로 피륙 위에 별을 새기리라 슬픔은 헝겊이다 밤하늘 같은 헝겊을 몸에 둘둘 감고 길을 나서면 은총이라 해야 할까 등줄기로 별들이 쏟아지리라 ..
고구마 좋아하는 줄 아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한 솥 고구마를 나를 위해 구워 놓곤 했었다. 군고구마 전용 냄비를 우리나라 방문시 동생이 준비했지만 짐 속에 넣는 걸 깜박했네 그랬다. 고구마가 없었던 그 당시 독일에서 군고구마 냄비는 무용지물, 일부러 슬쩍 내려놓고 가져오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독일에도 고구마가 있다, 그것도 내 밭에서 자란다. 분홍과 보라색 사이 뭐라 딱 결정내지 못할 오묘한 색상의, 마음만 먹으면 고구마도 저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니 (나는 치유불가 팔불출!, 눈에 뵈는 게 고구마 뿐이니...) 이른 봄에 다녀왔던 조지아 여행동안 이 만큼 순이 웃자라 있었고, 이들을 잘라 심었었다. 독일 슈퍼의 희끄무레한 수입 물렁고구마와는 비교도 안 될 터, 인터넷에 물어물어 찾아 낸 근사치 ..
사과를 땄지만 감을 땄다고 실언을 한다. 흔한 사과나무를 귀한 감나무로 의도적으로 오인할 때도 있다 저걸 다 곶감으로 만들면....이라고 상상하기도 하면서.... 이맘땐 나무 아래 떨어진 사과가 깔린다. 딱히 정리를 하면 또 떨어지곤 하여 흙 거름이라도 되겠지 하고 그냥 놔두는 편이다. 사실은 게을러서인데, 이즈음 지속되는 비바람 추위와도 연관이 있다. 벌써 하루 종일 우중충한 유럽의 전형적인 가을이니. 올핸 창고에 묵혔던 사과따기 주머니를 도구로 썼다. 이로써 또 감을 따던 어릴 때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런데 감을 따던 주머니도 이 만큼 무거웠었는지 모르겠다. 주머니 윗둘레 톱니로 솟은 쇠부터 묵직하다. 손잡이까지 이어진 긴 막대도 가볍지 않다. 주머니막대를 들어 올려 나무의 사과꼭지에 끼워 당기면 사..
몹쓸 팔자 백석의 팔자 /최서림 딱 한 번 여자 '란蘭'에 빠져버렸다. 조선식 여자 난의 고향까지 가서 퇴짜 맞았다. 동행한 친구한테 사모하는 여인을 뺏겨버리고 바람이 되어 조선 팔도를 떠돌아다닌 남자, 난을 못 잊어 일본, 만주, 내몽골까지 유랑했다. 난을 잊어보려고 이 여자 저 여자 품어보았다. 심장에서 창자에서 난을 몰아내려고 시로 토해낸 남자, 몰아내려 할수록 온몸 구석구석 뿌리 내린 난의 허상, 이 허상이 키운 시인 백석을 읽는 밤이다. 이 허상을 먹고서 살아 견뎌낸 시인이 사랑한 땅, 나라가 없었던 땅, 조선이란 땅의 팔자를 생각한다. /계간 시인시대 2022 가을호 ..................... 백석에 얽힌 이야기는 시대 물결에 소모된 전설이며 신화가 되었다. 백석은 소문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