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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봄비 / 배한봉당신은 새 잎사귀의 걸음으로 내게 들어왔다하늘에서 대지로 조용조용 속삭이며 노크하던당신의 발자국 소리에 맞춰 심장이 뛰고피가 돌아 세계의 상처에 살이 차올랐고구름의 눈썹 아래로 휴가 떠난 태양의 안부가 궁금했지만간절했던 것들은 간절하게 자라서척박한 페이지에 초록빛 문장을 새겨 넣었다알몸으로 거울 앞에 서면 그새 새로 출간된날개가 내 겨드랑이에서 언뜻 보였다투명한 잎사귀의 걸음으로 당신이 내게 들어올 때나뭇가지 안에 갇혀 신음하던 그 춥고 아픈,간절한 것들이 찍어놓은 푸른 바코드젖은 말들이 도처에서 재잘대며 걸어 나오고 있다당신의 아이들이 재잘대며 달려 나오고 있다- 배한봉 '주남지의 새들' 천년의시작 2017 라일락 / 허수경라일락어떡하지,이 봄을 아리게살아버리려면?신나..
벚꽃 반쯤 떨어지고 / 황인숙 한 소절 비가 내리고 바람 불고 벚꽃나무 심장이 구석구석 뛰고 두근거림이 흩날리는 공원 소롯길 환하게 열린 배경을 한 여인네가 틀어막고 있다 엉덩이 옆에 놓인 배낭만 한 온몸을 컴컴하게 웅크리고 고단하고 옅은 잠에 들어 있다 벚꽃 반쯤 떨어지고 반쯤 나뭇가지에 멈추고. - 황인숙 '자명한 산책' 문학과지성사 2003 눈빛으로 말하다 / 나호열 떠나보지 않은 사람에게 기다려 보지 않은 사람에게 손아귀에 힘을 주고 잔뜩 움켜쥐었다가 제풀에 놓아 버린 기억이 없는 사람에게 독약 같은 그리움은 찾아오지 않는다 달빛을 담아 봉한 항아리를 가슴에 묻어 놓고 평생 말문을 닫은 사람 눈빛으로 보고 눈빛으로 듣는다 그리움은 가슴 속에서 피어나는 꽃 그저 멀기만 ..
세계의 흔한 설산을 두루 보았지만 한라산은 독특하다. 내 나라의 산이어서가 그 첫째이고 유아독존 우뚝솟아 섬을 다독이고 멀리 뚫린 각 방향 대양까지도 느긋이 거느리는 아주 잘 생긴 산이기 때문이다. 서귀포? 중문? 눈을 한라산에만 고정하였으므로 저 지점이 어딘지 모름. 산 보려는데, 귤이 막아선다. 옆에 선홍빛 꽃나무마저 부채인듯 펼쳐들었다 . 초록지붕이 낮은 것인지 꽃나무가 높은 것인지, 키재기 하면서 한라산을 다 가렸다. 이번엔 전선이 한라산 배경 공간이 여러 나뉘었다. 좀 삐딱하지만, 자르기엔 풍경이 아깝다. 사심으로 삐딱이를 견디자. 한적한 어느 교차로 즈음 한라산이 온전하게 나타났다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중문 어디쯤 유명호텔 밀집지대에 유독 보석처럼 눈에 들어 온 창천슈퍼, 작은 저 체구로 한..
그래피티작가 뱅씨의 새 벽화가 런던 빈민가에 나타났다.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물론, 어디의 누구인지도 모르며 뉴욕에서는 지명수배까지 내려진 작가 뱅씨, 우리나라에선 뱅크씨 독일에선 방씨, Banksy, 이 이름이 실명일 리가 없는 그의 새 작품은 덩그렇게 전지된 나뭇가지 뒤에 그려진 초록색 벽이다. 그래피티로 웅변을 하듯, 뱅씨의 그림엔 거의 매번 확연한 메세지가 있어왔다. 그에 비해 이번 초록 나뭇잎이 연상되는 그림은 다소 애매하다. 내가 생각하는 애매한 이유는 지금이 겨울에 드는 계절, 나뭇잎이 떨어질 때도 아니고 굳이 초록으로 뒷배경을 그리지 않아도 빈 가지마다 저절로 잎이 생길 터인데..... 이걸 '자연보호' 메세지로 발표한 걸까? 영국에선 물론이고 세계의 뱅씨 애호가들이 저 그림을 보기 ..
저녁을 먹고 절친에게 전화를 했다. 지난 수년 간 마음을 나눈게 온라인이어서 목소리로 대화하는 게 생경했던 터, 번호를 누르고 첫 목소리를 들었던 지점이 저 거리였지 싶다. 심히 비 내리고 폭풍이 불어닥쳐서 반대편 목소리를 도무지 들을 수 없는 지경, 어디든 바람을 피해 찾아들어야 했다. 윗사진 큰도로 어디쯤 바람을 막아줄 듯한 좌측거리로 들었다. 무수히 많은 간판 중 연동 야시장이 보인다. 바람이 좀 멎으니 얕은 오르막 거리에 행인들이 오가고. 우산 속 전화통화를 하며 거닐고 또 거닐었지 싶다. '누웨모루 거리', 유흥 전광불빛이 바닥에 반사된 거리는 소나기가 한차례 지난 후의 풍경. 제주 해녀 상징 조각이 앞장선 곳 곳곳에 누웨마루라는 팻말이 붙었다. 근처에서 저녁 먹고, 전화통화할 바람이 느린 곳을..
비 내리는 제주의 이야기 몇장이다. 하늘 공간을 여러 조각으로 나눈 전봇대를 눈 닿는대로 자주 올려자 보았지 싶다. 이 사진엔 반대편 풍경을 축약한 둥근 거울이 있다. 오래 바라보면 눈물이 날 듯한 나무집 나무 발코니, 보살님 계신 집 톱집 공구상, 마음 같아선 저 곳에 들어가 한 몇 시간 구경하고 싶었다. 비오고 바람 많이 분 날, 서귀포. 사실은 저 앞 건널목 즈음 강풍에 우산이 뒤집혔다. 나도 날아갈 뻔. 그려진 동백은 빗길에 떨어져 흔히 누운 거리의 동백과 대조된다. 비탈진 빗길에 주차금지가 장식처럼 누눠있는 서귀포 어느 거리. 어느 것이 진정한 작품일까. 보슬비가 끊이지 않고 내림에도 빨래가 매달렸다. 푸른 청바지에 빨간 윗도리 저 옷들의 며칠 후 미래는, 누군가의 소중한 몸을 아래 위 감싸주었..
고국에 다녀온 지 한주가 지났다. 목소리에 여전히 울음이 섞여서 꼭 해야할 말 외엔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고 있다. 제주에 짐을 풀고 육지로의 비행했던 2월말 어느 날이었다. 국제면허 교환을 미처 하지 않아서 버스나 택시로만 이동해야 하는 첫 도전의 날, 제주출발 후 김해공항을 거쳐 부산 시외버스정류장 도착, 버스표를 끊고나니 9시를 갓 넘긴 10시 쯤이었다. 몇 십년 만의 귀향이므로 요동치는 내 감정과는 대조적으로 정류장은 한산했고, 멀뚱멀뚱 승차구를 찾아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사람은 더구나 나 말곤 없었다. 목적지와 승차시간 승차시간을 확인하니 내가 탈 버스 승차구 바로 앞에 용케 벤치가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커피를 쏟아놓았다. 마시려던 순간 버스가 왔을까,뜨거운 커피를 엉겁결에 대합실 의자와 나눠 ..
명자나무 곁에서 / 임영조 오랜 침묵만이 꽃을 피울까 영하에도 꼿꼿이 언 손 들고 벌서던 침묵의 가지 끝에 돋는 응어리 진홍빛 뾰루지를 보는 것도 아프다 오늘은 기어이 발설하리라 잉걸처럼 뜨겁고 위험한 자백 궁금해, 귀를 갖다 대본다 (아직 입 열때가 아니다!) 삼월의 끄덩이를 잡아채는 꽃샘바람 이미 붉어 탱탱한 입술 꼭 다문 명자꽃 망울이 뾰로통하다 해도, 그리운 명자 씨! 어서 귀엣말을 속삭여다오 그 내밀한 사랑의 불씨로 내 가슴속 외로움 다 태워다오 그게 혹 새빨간 거짓말일지라도 오늘은 다 곧이듣고 싶다 아직도 입다물고 망설이는 명자 씨! 온몸에 은근히 가시를 숨긴! - 임영조 '지도에 없는 섬 하나를 안다' 민음사 2000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는 저녁 / 문신 누가 아프다는 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가 88세의 나이로 2024년 2월 6일 수도 도쿄에 있는 자택에서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이러한 사실은 다수의 일본 언론이 오늘 일제히 보도하였고 독일 언론들도 앞다투어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2010년 식도암 진단을 받으며 심각한 건강문제로 한차례 대중의 시선에서 멀어진 적이 있었던 오자와는 2013년 세계 음악계로 복귀한 바 있다. 1961년 뉴욕 필하모닉에서 레너드 번스타인(1918-1990)의 부지휘자로 첫 국제 경력을 쌓았던 그는 1973년부터 2002년까지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전임 지휘자로 활동했는가 하면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토론토에서 객원 근무를 한 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과 파리의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등의 유럽 음악무대를 섭렵한..
기억한다 / 류시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오래된 상처까지 사랑하는 것이라고 쓴 시인을 기억한다 이 세상에 아직 희망을 간직한 사람이 많은 것이 자신이 희망하는 것이라고 말한 시인을 기억한다 상처입은 사슴이 가장 높이 뛴다고 쓴 시인을 기억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말에 자신이 미워졌다고 고백한 시인을 기억한다 눈사람에게 추워도 불 가까이 가지 말라고 충고한 시인을 기억한다 끝까지 울면 마지막 울음 속에 웃음이 숨어있다고 말한 시인을 기억한다 사람이니까 넘어져도 괜찮다고 쓴 시인을 기억한다 나는 정원사이자 꽃이라고 노래한 시인을 기억한다 언제부터 시인이 되었느냐는 질문에 언제부터 시인이기를 그만두었느냐고 되물은 시인을 기억한다 누가 나를 인간에 포함시켰느냐고 물은 시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