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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문득, /허수경 새싹은 어린 새의 부리처럼 보였다 지난 초봄이었다 그리고 겨울은 왔다 억겁 동안 새들과 여행하면서 씨앗은 새똥을 닮아갔다 새똥도 씨앗을 닮아갔다 붉어져 술이 든 겨울 열매를 쪼면서 아직, 이라는 시간 속에 걸린 잎사귀를 보면서 문득, 새들은 제 깃털을 잎사귀 모양으로 바꾸었다 그 일이 억겁의 어디쯤에서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른다 얼음 눈빛으로 하얗게 뜨겁던 겨울 숲을 걷던 어느 날 그 열매의 이름을 문득, 알고 싶었다 새들이 잎사귀를 아리게 쪼다가 잎사귀 모양을 한 깃털을 떨구고 날아간 문득, 숱이 두터운 눈바람 속, 새이던 당신에게 날개의 탄생을 붉게 알려준 그 나무 열매의 이름이 알고 싶었다 ― 시인수첩 2014. 봄 내가 생각하는 것은 /백 석 밖은 봄철날 따디기의 누굿하나 푹석한 밤..

붕어빵 아저씨 /강준철 붕어빵 아저씨가 붕어빵을 뒤집고 있어요. 오, 시시각각으로 일어나는 고소한 혁명! 세상도 뒤집어야 골고루 잘 익고 완성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뒤집을 땐 아저씨처럼 번개같이 뒤집어야 해요. 보셔요! 미의 여신이 모나리자를 뒤집고, 수련은 미의 여신을 뒤집고, 해바라기가 수련을 뒤집고, 아비뇽의 처녀들은 해바라기를 뒤집고,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는 아비뇽의 처녀들을 뒤집고 브릴로 상자가 샘을 뒤집지 않았어요? 그 때마다 새로운 꽃들이 피고 사람들이 뒤집어졌지 않아요? 그리고 플라톤이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뒤집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뒤집히고, 아우구스티누스는 베이컨에게 뒤집히고, 베이컨은 데카르트에게 뒤집히고, 데카르는 칸트에게, 칸트는마르크스에게마르크스는베르그송에게베..

무심풍경 /복효근 겨울 감나무 가지가지에 참새가 떼로 몰려와 한 마리 한 마리가 잎이 되었네요 참, 새, 잎이네요 잎도 없이 서 있는 감나무가 안쓰러워 새들은 이 가지 저 가지 옮겨 앉으며 작은 발의 온기를 건네주기도 하면서 어느 먼 데 소식을 들려주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나무야 참새가 그러든지 말든지 하는 것 같아도 안 자고 다 듣고 있다는 듯 가끔씩 잔가지를 끄덕여주기도 합니다 나무가 그러든지 말든지 참새는 참 열심히도 떠들어 댑니다 모른 체 하고 그 아래 고양이도 그냥 지나갑니다 나무는 나무대로 참새는 참새대로 모두 다 무심한 한통속입니다 최선을 다하여 제 길 갑니다 연말인데 벌써 몇 개월 전화 한 통 없는 친구에게 한 바탕 욕이나 해줄까 했다가 잊어버리고 저것들의 수작을 지켜보며 이 한나절에 낙관 ..

그레고르 잠자*에게 /이건청 요양병원 906호의 그와 영상 통화를 했다. 화면에 보이는 것은 그였는데 눈썹이 검은, 앞 머리칼이 왼쪽 이마를 스쳐 내린 그가 맞는데 목소리까지 그대로 그인데 그가 아니었다. 그는 나를 몰랐다. 이. 건. 청 들려주니 한 글자 한 글자 겨우 되짚어 뇌어본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는, 그는 그가 아니었다. 경제학 박사, 메이저 TV 고정 패널, 그 사람이 아니었다. 서울행 KTX를 타는 나를 플랫폼까지 따라와 손잡아주던 손이 따뜻하던 사람, 사람은 그 사람인데 전화기 건너편 영상 속 그의 말이 매듭 밖으로 풀려서 자꾸만 찌그러지고 부서지고 뒹굴고 있다. KTX 플랫폼에 서서 손을 흔들던 지난겨울의 사람, 여름 장맛비 속 영상 전화 화면엔 치매 전문 요양병원에서 누질러진..

안개는 힘이 세다 /우대식 안개 속에서, 사회주의 옹호자가 나온다 조금 있다가 자본주의자가 나온다 안개 속에는 많은 주의자들이 산다 안개 속에서 사회주의자인 체하는 자본주의자가 걸어 나온다 교회주의자인 체하는 완전 자본주의자가 걸어 나온다 안개가 걷히면 자본주의자만 남았다 그게 뭐 대수냐고 누군가 중얼댔다 나는 자본주의는 힘이 세냐고 물었다 자본주의자들은 슬그머니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눈이 쏟아지고 앞을 볼 수 없었다 눈도 자본으로 만들 수 있다고 안개 속에서 허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안개는 고맙다 ㅡ'애지' 2020, 가을호 취한 사람 /이나혜 취한 사람처럼 아름다운 사람은 세상에 없느니 군청색 그리스 바다 냄새가 나고 전봉건全鳳健의 시에서 낮은 트럼펫 소리가 나고 옆 테이블의 남자가 담배에 불을 붙이..

저물녘에 /위선환 한 때는 나무가 곁에 있어서 손에 짚이고 등에 닿았다. 나무 아래 서면 야위고 뒤켠은 쓸쓸하고 밑둥치 를 베고 아팠으므로 가지에다 팔짱을 얽거나 기대앉아 발을 뻗거나 땅속 그늘에다 가슴살을 묻어야 울 수 있었다. 지금은 줄줄 비가 내리고 나무는 젖어서 빗물이 흐르고 당신은 물투성이로 빗속에 서서 비 맞는 나무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지없이 기다린다. 사람과 나무가 비에 젖는 나무와 사람을 바라다보며 마주서서 비를 맞는 그리움에 대하여, 이름을 부르지도 안아들이지도 못하고 오직 젖으며 같이 어두워지는 절절함에 대하여, 언젠가는 당신이 목소리를 떨며 말해줄 것이므로. 북쪽 하늘 별 옮겨 앉듯 /장석남 하루를 탕진하고 별을 본다 후후불면 숯불처럼 살아나거라 피리를 불랴 ? 살아나거라..

분장실에서 /장석남 오늘은 사람이 되는 것으로 족해 중얼거리며 거울을 보네 분 뚜껑을 열고 조용히 나를 지우기 시작하네 오늘 하루 걷고 먹고 말한 모든 것이 나를 지워가던 일 귀가 길에서 모란의 몰락을 보았네 오늘은 아주 조금 나를 걷어낸 것으로 족해 거울 앞에서 얼룩진 부분부터 지우네 저녁은 지워지지 않네 -계간 '시로 여는 세상' 2020년 여름호 어떤 마음을 입으시겠습니까 /이대흠 한 생각에 오래 매달려 있는 사람에게서는 오랫동안 옷을 갈아입지 않은 것 같은 냄새가 납니다 슬픔이건 기쁨이건 갈아입어야 합니다 몇 달 동안 외로움을 입고 있는 여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녀의 외로움에서는 쾌쾌한 냄새가 났습니다 모든 생각은 소모됩니다 낡거나 때가 묻습니다 아침에 옷장에서 옷을 고르듯 오늘 입을 정서를 ..

머위와 여름비 나는 암사마귀처럼 /김개미 나는 암사마귀처럼 오랫동안 풀잎에 앉아 있었던 것 같아 오랫동안 여름이었던 것 같아 나는 풀잎처럼 나뭇잎처럼 바람처럼 호흡까지 맥박까지 초록이었던 것 같아 나는 암사마귀처럼 오랫동안 너를 기다렸던 것 같아 너와 헤어지고 나서도 오랫동안 나는 너를 기다렸던 것 같아 아픈 동안에는 더 기다렸던 것 같아 나는 암사마귀처럼 오랫동안 숲에 혼자 있었던 것 같아 한낮이면 햇빛에 녹아 사라지다 저녁이면 바람의 힘으로 단단해지곤 했던 것 같아 눈을 뜨고 있으면 보이지 않고 눈을 감으면 보이는 시간들이 있었던 것 같아 나는 암사마귀처럼 오랫동안 울지 않고 있었던 것 같아 이슬을 마시는 것 말고는 할 일을 생각해낼 수 없는 날도 있었던 것 같아 게으르지 않지만 일할 수 없는 날들이..

나방이 풍경을 완성한다 /정현종 넓은 창 바깥 먹구름 떼 쏟아지는 비 저녁빛에 젖어 큰바람과 함게 움직인다. 그렇게 싱싱한 바깥 그 풍경 속으로 나방 한 마리가 휙 지나간다 -. 나방이 풍경을 완성한다! 분꽃이 피었다 /장석남 분꽃이 피었다 내가 이 세상을 사랑한 바 없이 사랑을 받듯 전혀 심은 바 없는데 분꽃은 뜰에 나와서 저녁을 밝히고 나에게 이 저녁을 이해시키고, 내가 이 세상에 오기 전의 이 세상을 보여주는 건지, 이 세상에 올 때부터 가지고 왔다고 생각되는 그 悲哀보다도 화사히 분꽃은 피어서 꽃 속을 걸어나오는 이 있다 저물면서 오는 이 있다 농담 한 송이 /허수경 한 사람의 가장 서러운 곳으로 가서 농담 한 송이 따서 가져오고 싶다 그 아린 한 송이처럼 비리다가 끝끝내 서..
오월의 팝콘 /여연 팝콘이 만발입니다 남해를 몰고 경부고속도로를 몰고 윤중로의 벗나무에서, 꽃을 눈으로 먹습니다 망설이지 마세요 순식간에 5월은 바닥으로 엎어져 봉지, 빈 봉지만 바람에 날립니다 오늘은 팝콘이 터지는 날, 오븐이 달아오르듯 나무들의 체온이 올라갑니다 눈에 넣고 오물거리기 좋은 오월, 잘 익은 팝콘이 하늘로 솟구칩니다 귀가 얼어붙던 아기 돌부처가 피어납니다 지느러미를 끌고 그늘진 계곡을 흘러가던 목어가 피어납니다 산사에 들어가던 발자국에서 팝콘 향기가 피어납니다 길에서 꽃을 먹고 있으면 어느새 따뜻한 봉지에서 하얀 입김처럼 꽃잎들이 솟아오릅니다 꽃잎은 꽃잎끼리 부딪히며 우리의 입안에서 바삭 바삭 속삭입니다 고소한 사랑이 팡팡 터지는 봄날입니다 발광(發光)하겠습니다 /김선아 요란한 울음판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