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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촌부일기/한포기생명 (84)
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흰 망사블라우스를 입어 살짝 드러난 속살이 수줍은 여인을 보듯, 첫서리가 내렸다. 추석 전인 9월 하순 어느 날 이른 아침 쟈켓을 걸쳤다고는 하나 여름 옷에 헐렁한 신발차림의 나는 산골마을의 첫 서리에 기분 좋게 손이 시리고 발이 시렸다. 자주색 작은 종꽃 위에 설탕가루를 뿌린 듯 하다. 엉겅퀴 마른 꽃대도 예외가 아니다. 좁살 만한 흰꽃이다. 산딸기잎은 요 정도 서리 쯤엔 아랑곳하지 않는다. 눈이 뒤덮여도 녹을 때까지 꿋꿋하게 잎모양을 유지한다. 또 엉겅퀴? 야생 에리카, 다년생이고 흑림사람들은 몸에 이로운 약초로 쓰는 풀이다. 서리 내린 잔디 위에 햇살이 막 떠올랐다. 또또 엉겅퀴 이름 모를 들풀, 꽃대는 제 알아서 가을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떤 꽃을 피웠었는지 통 기억에 없다. 서리내린 골짜기에 첫..
참 좋아하는 과일 플라우멘(Pflaumen), 자두의 사촌 같고 매실의 조카 같은 이 과일 한 광주리를 선물로 받았다. 흑림 마당에 한 그루 심었지만 몇 해 전 꽃샘추위에 가버리셨는데 나의 아쉬움을 읽기라도 한 듯, 누군가가 텃밭 움막에 두고 갔다. 그 누군가가 누굴까? 울리케? 리햐르트 할아버지? 니콜? 브르기테? 그도 아니면 러시안 아줌씨? 윗줄이 쌍둥이들, 아랫줄이 외둥이들 과일 두개를 풀로 딱 붙여 놓은 듯 볼수록 신기한 쌍둥이들이다. 보다보다 플라우멘 쌍둥이는 또 처음 보네 하하 쌍둥이 과일의 중간을 잘라보았더니 이렇다. 좋아하는 과일인지라 숨도 안 쉬고 몇 개를 후딱 먹어치우고. 이 과일로 달콤짭짤하게 우메보시를 만들고 게워낸 즙은 소스로 쓴다. 입이 돌아갈 만큼 짭쪼롬한 일본 토종의 것보다 ..
꽃에게 말을 건다 접시꽃은 '당신'이라는 2인칭 은유로 알려져 있으니*. (시를 두번 읽지 않되, 그 은유만 고맙게 빌어 쓴다) 바야흐로 밭에는 수 많은 당신들이 피고 있어 외마디 인사로도 꽉 차게 덧칠 한다 오후라는 긴 스케치북에. -숲지기 꽃잎잎잎 한장씩 펼치며 하는 말을 듣다 보니 어느새 나는 수다장이가 되었다. 꽃밭 풍경 /오세영 "아름답게 살자" 고 쉽게 말하지 마라. 아름다움도 때로 죄가 된다는 것은 꽃밭에 가 보면 안다. 빛과 향이 지나쳐 영혼을 몽롱케 한 그 죄. 울안은 각자 수인의 명패를 달고 인신 구속된 꽃들로 만원이다 "아름답다" 고 함부로 말하지 마라. 어차피 삶은 원죄의 소산. 사랑이 죄가 되는 자들의 교도소가 거기 있다. - 시집 꽃을 길렀더니 덤으로 집식구까지 늘었다. 불꽃딱정..
볼 때마다 냄새 맡을 때마다 눈과 코를 수려하게 하는 작은 보라꽃, 그 예쁘고 그윽한 향의 라벤델*을 어제 수확하였다. 건조를 시키느라 펼쳐 놓으니, 방안에 기분 좋은 향이 가득하다. 이들을 작은 베주머니에 담아 울소재 옷들 속에 넣으면 좀약 대용으로 옷장 신발장 통로에 두면 방향을 얼마간 책임져 줄 것이다. 또한 라벤델은 식용유에 우려내면 라벤델유,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시면 라벤델차*가 된다. 차는 예로부터 숙면제, 정서불안(특히 두려울 때) 특히 머리를 맑게 해야 하는 공부하는 이들에게, 과식으로 속이 더부룩 할 때와 신경성 장염 증상에 널리 애용되어 왔다. 그런가 하면 라벤델유는 호흡기 질환과 로이마 근육통에 라벤델이 유용하다. 아주 드물게 몇가지 주의사항*만 지킨다면 버릴 게 하나 없는 고마운 라..
여름 기분이 물씬 났던 하루, 썬크림에 썬글라스에 챙이 넓은 모자까지 갖추면 햇볕 따위는 아무 문제가 아니다(, 라고 여겼다). 그런데 땡볕 농장은 너무 더웠다. 휘청 굽은 지름 3m짜리 암펠 양산의 그늘에서 간간이 휴식을 취하고 준비해간 아이스크림과 도시락도 다 까먹었는데도 30도를 웃도는 초여름 더위는 견디기 힘들었다. 더구나 브렘제라는 아주 성가신 쐬기 날벌레에게 쏘여서 그 자국이 햇볕과 땀으로 더 쓰리고 더 붓고 열도 더 나곤 했었다. 자그마치 1시간 여를 뙤약볕에서 버티다가 항복, 집으로 줄행랑을 쳤다. 서둘러 찍었던 오늘 농장 사진 몇 컷이다. 특히 흰 개양귀비, 양귀비꽃에 대해 잘 몰라서 본 적이 있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여튼 들양귀비를 몹시 아끼시는 슈누커님의 고견을 기다려야..
그 어떤 현학적인 미사여구보다 풀꽃 한포기가 눈부시다. 어디서 왔냐고 물으면 오월의 들판을 보여 주고, 누구냐고 물으면 풀꽃인 듯 미소지으리라. -숲지기 볕 좋은 오월의 주말, 집안 곳곳에 흩어 놓았던 들꽃병들을 모아 기념 사진을 찍었다. 우리나라의 큰개부랄꽃과 크기 모양이 같은 에렌프라이스(Ehrenpreis), 잔디꽃 즉 풀꽃이다. 사진 슈투디오,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만 나름 찍느라 애를 썼다 찍으면서 떨어진 꽃잎들 수채화를 그리기 위해 그림자까지 담았는데, 굳이 그릴 필요없이 이 사진으로 땜 할까봐.....(또 자화자찬 하하) 여기까지가 부엌 창가에 두었던 꽃병 욕실에 두었던 꽃병, 어두웠던지 꽃 피는 모양이 독특하다. 한 무더기씩 마치 햇볕을 더 달라는 듯. 꽃이 거느린 그늘도, 이 순간 만은..
마음을 먹으니 산을 넘어 한달음에 갈 수 있었다. 해가 지기 두어시간 남긴 시각이었고(다행히도 해가 많이 길어졌다), 불현듯 뽕나무가 보고 싶었고 조그맣게 돋기 시작했던 오디가 얼마나 컸는지 궁금했다. 먼저 푸성귀사진. 농장에서 앞다투어 기쁨으로 자라는 풀들이다. 한 바구니 풀..
겨울이 모질었고, 또 그간 기별이 없어서 어떻게 되셨는 줄 알았다. 매년 수북했었지만 올핸 딱 한 분만 허리를 꼿꼿이 세워 꽃 피우셨다. 이제는 돌아올 수도 거울을 볼 수도 없는 내 할머님 같은 꽃 명자언니, 참 곱게도 다시 오셨네. 있을 때 잘 해 드릴 걸. 어떤 나무의 잎이신지...... 허락도 없이 찍어와서는 역시 후회를 한다. 통성명이라도 할 걸. 마당의 무법자들, 소위 잡초 아가씨들. 비비추, 서로 맞대고 비빈다. 앞에 얘들은 너무 비벼서 하룻만에 훌쩍 컸나. 미라벨레 과실나무. 노란 열매가 달리는데 매실처럼 설탕에 절여 담았다가 음식 양념으로 요긴하게 쓴다. 나르치스 , 갑자기 우리말 이름을 까먹었다. 꽃 너머의 연인들을 보다가 그만..... 너무 늦게 찾았더니, 잎이 나면서 꽃을 사정없이 떨..
카셀 시내 중심가 미니 공원이다. 의자에 오래 앉아 있어야 했던 며칠 간 '뻐근뻐근, 찌끈찌끈' 무릎과 여타 근육들로부터 신경을 좀 써 달라는 신호를 보내왔었기에 잠시나마 짬을 내어 공원을 걷는다. 계절이 바뀌면서 공원 길섶에는 바지런한 봄꽃들이 나직나직 나와 피었다. 느릿느릿 거닐던 중, 등나무 가지들에 시선이 갔다. 어디 자세히 보자. 성장할 나무를 철심으로 뼈대를 가둬서, 나무는 마치 절심과 한 몸인 듯 커 버렸다. 나무는 나무이고 철은 철이어서 둘 사이엔 절대로 교감이 없음에도 말이다. 견고한 철의 폭력을 연한 나무가 당할 재간이 없지! 등나무의 거의 모든 가지들이 무언의 비명을 지르고 있다. 아프겠다...... 끝내 나는 물었다. 나랑 숲으로 갈래? 나무는 대답대신 여기저기 철심에 휘둘린 속살만..
씨앗을 심었더니, 저마다의 생명계획표대로 싹이 났다. 소록소록 돋는 싹들을 보는 일은 호머의 서사시를 읽을 때 만큼 드라마틱하다. 씨앗으로부터 나왔을 때, 흙속을 헤집으며 더듬더듬 뻗으면 뿌리가 되고, 태양을 향해 돌진을 하면 새싹이다. 고생했어, 마음으로 쓰다듬는다. 고로, 내가 싹들을 돌보기 보다는 싹들이 나를 돌본다는 게 옳다. 쑥쑥 솟아 오르는 싹들을 보며 얼마간 우울했던 머릿속을 깔끔하게 청소했으니 말이다. 내 집에서 태어나 준 초록식구들을 축하하며 음악을 들려주었다. 그래서 물방앗간 아가씨(빌헬름 밀러 시/슈베르트 곡)를 들려주었지. 수줍은 총각이 물방앗간 아가씨를 남몰래 연민하는 노래....... 그러게, 짝사랑 만큼 비인간적인 게 세상에 또 있을까. 씨앗들은 이렇게 먼저 한 곳에서 한웅큼씩..